[ 윤 해 록 ] 피노키오들이 만든 세상

by 윤해


어릴 때 읽은 가벼운 동화가 살면서 수없이 접한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고전을 능가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말이 글이 되고 글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일련의 문명과정에서 말과 글 그리고 행동의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말과 글 행동 사이에서 일어나는 실수에 대해 부지불식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생각보다도 자주 발생한다.

행동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화씨지벽이라는 완벽의 잣대를 들이대다가도 말과 글, 특히 말실수에 대해서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현대는 아무 말 대잔치처럼 화려한 수사와 거짓말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말과 글 행동 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어쩌면 화자의 내면을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는 잣대라고 봐도 틀림이 없다. 즉 우리가 말실수로 치부하는 수많은 설화들이 기실 나름대로 화자의 내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유일한 창이라는 사실 앞에 서보면 그저 당혹스럽고 신기하기도 할 뿐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이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거짓말이 참말처럼 느껴지는 때가 순식간에 찾아온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처럼 내 코가 석자인 인간들로 세상은 만원이다. 그 수많은 피노키오들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면서 거짓을 지혜로 오해하고 거짓의 성을 높게 쌓고 있다.

비록 가상의 문명세상을 만들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가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변곡점, 터닝 포인트가 다가올 때면 역설적이게도 가상의 틈 사이로 실상이 빼꼼히 얼굴을 드러내며 거짓의 성이 무너지고 진짜가 기적적으로 등장하며 세상은 균형을 잡고 굴러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피노키오의 코는 계속 자라 석자가 아니라 열자 스무자가 되지 못하란 법도 없지 않을까? 희한한 상상 한 번 해본다.

거짓으로 진짜를 덮는데 발군인 피노키오들이 직면한 가장 큰 난제가 BATNA(the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찾기가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패권질서가 요동치면서 세상은 더 이상 거짓을 용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박한 특이점을 지나고 있으며, 패권전쟁이라는 벼랑 끝 단두대 매치에서 거짓이 끼어들 공간은 태부족해 보인다.

아무리 제 코가 석자라도 실을 바늘허리에 끼울 수는 없다. 해양으로 패권을 거머쥔 미국의 전함 수리사업, 미 해군 유지·보수·정비사업 MRO은 군함수리이므로 엄격한 시설보안(FCL), 인원보안(PCL), 사이버보안(CMMC), 공급망보안(DFARS)을 거치는 패권국의 사활이 걸린 사업이라 종북을 넘어 종중까지 넘나드는 피노키오들에게 맡기기 어려운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패권전쟁의 양상이 적전 내부단속으로 돌아선 건지 적국에 대한 손발 자르기에 돌입한 건지 패권질서는 좌충우돌하면서 질서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혼돈의 아수라장을 경험하고 있다.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세상을 비추는 가치관은 오로지 실력이라는 진실의 거울에 의해 실체가 드러난다.

이념과 이즘 ism이라는 상상의 영역에서 마음껏 거짓과 기만을 휘둘렀던 현실의 피노키오들이 방산과 조선을 협상의 지렛대 삼아 순간을 모면하고 피노키오처럼 코가 점점 길어져 가는 동안에 원전 건설과 관세카드를 앞세운 패권국 코쟁이들의 날 선 콧대는 당해내지 못하고 쩔쩔매면서 일천한 실력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공동체 내에서 조차 사라진 선한 의지와 견고한 이성이 자취를 감추는 이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오면 새지 않을 리 없는 동화 속 교훈 그대로 대한민국의 앞날은 대박보다는 쪽박을 차는 방향으로 급격히 변침 중이지는 않는지 만감이 그저 교차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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