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이 지구를 떠도는 구름을 경계로 세상은 구름 위에 태양을 보는 사람이 있고, 구름 아래 비를 맞는 인간이 있다. 구름 위에 태양은 한시도 쉬지 않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만 구름이라는 경계가 만들어내는 선계와 속계는 마치 섭리와 원리가 그러한 것처럼 비를 머금고 빗줄기를 뿌리는 구름의 조화로 희비가 엇갈리고 흥망이 교차하면서 구름 아래 세상을 뒤흔들어 희로애락 오욕칠정의 불구덩이로 우리를 몰고 가는 것이다.
이제는 일상이 된 비행기 여행을 해보면,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면서 구름을 뚫고 구름 위에 적정 비행고도에 진입하면 그야말로 운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처럼 구름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비록 간간이 구름사이로 보이는 구름 밑의 세상은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제트기류와 같은 난기류만 만나지 않는다면 구름 위를 나는 비행기는 제 갈길을 유유히 가면서 마치 성냥갑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도시의 빌딩을 조롱하고 구름 위의 선계를 만끽한다.
비행기가 착륙하려고 구름을 뚫는 하강이 시작되면 승객들은 비로소 구름 위의 선계에서 잠시 꿈꾸었던 백일몽을 뒤로하고 속계의 세상으로 진입하는 비행의식을 마감하고, 구름 위에서 보았던 성냥갑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삶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이라는 가마솥에 푹 삶기는 끝도 시작도 없는 고해의 연속이다. 구름을 사이에 두고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일종의 비행의식, 즉 비행기를 타고 이착륙하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생명을 담보로 이곳과 저곳을 넘나드는 경험은 삶겨 사라져야 할 주관적 자아뿐만 아니라 초월적이고 객관적 자아의 실체를 어렴풋이 깨닫는 지난한 과정이요 통과의례이자 의식은 아닐까?
구름이 머무는 곳 (雲住寺)이라는 의미로 알려진 전남 화순에 위치한 도량, 운주사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 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라고 한다. 도선국사의 해석에 따르면 "한반도는 배 모양인데 영남은 산이 많고 호남은 산이 적어, 이곳에 천 탑 천불을 세워 배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았다고 하여 運舟寺라고 불리기도 한다.
형식파괴, 공간파괴, 대칭파괴, 피카소가 제자들을 데리고 와 “각자 하나씩 탑과 불상을 새기되, 세상에 처음 보는 모양으로 지어 봐, 시간은 단 하루”하고 명하고, 게으른 피카소가 산꼭대기에 낮잠을 자러 간 사이에 제자들이 얼렁뚱땅 민첩한 놈은 계곡 바닥에 비대칭 7층 석탑을, 굼뜬 놈은 산기슭에 5층 석탑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온 놈은 그들이 만든 탑 밑에다 불상을 만들어 채워 놓았고, 그리고 잔꾀나 있는 놈은 스승이 잠든 둘레에 와불을 만들어 놓고 세우려는 찰나 벌써 하루가 다 되어 그냥 둔다라고 주장하며 피카소가 전생에 화순 땅에 살다가 지었다는 상상과 함께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길쭉한 빈 배가 떠나는 운주사運舟寺와 같다는 생각을 하는 글벗의 기발한 기문을 읽고 보니 운주사만큼이나 독특한 해석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구름이 머물다 가는 곳에서 바람을 타고 정처 없이 흘러가는 쪽배와 같은 운주사는 숙명과 운명의 경계, 동서양 미학의 융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돌장승 군병軍兵과 같은 전남 화순 천불산 운주사에 있는 천기의 석불이 분단된 대한민국이라는 쪽배의 균형추가 되어 도선국사의 예언처럼 동서가 화합하여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쪽배가 세계에 우뚝 서는 돛대를 세우고 격동하는 세계 패권질서의 파고를 의연하게 헤쳐가는 삿대까지 손에 넣는다면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이 깜깜한 은하수 같은 질곡과 격동의 현대사를 건너온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는 그날도 머지않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의 운주사 雲住寺는 구름 위 세상처럼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빛나는 형식파괴, 공간파괴, 대칭파괴와 같이 피카소가 제자들을 데리고 노는 개성과 번영의 선계와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름처럼 정처 없이 흘러가는 배와 같은 의미의 운주사 運舟寺는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구름 아래 세상 속에서 거친 풍랑이 치는 운해를 요리조리 균형을 잡고 헤쳐나가는 쪽배를 타고 가는 생존경쟁이 난무하는 속계일 것이다.
근현대사의 먹구름을 뚫고 80년간 비상한 대한민국 경제로 인해 우리는 구름 위의 세상을 보고 있지만 여기까지 우리를 태워준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경착륙을 시도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매섭게 휘몰아치는 먹구름 아래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구름 위 비행기에서 맛본 선계의 행복감 못지않게 구름 아래에서 쪽배를 타고 속계에서 겪어야 할 모진 비바람의 고통도 먼 내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불운하여 쪽배를 타고 비바람 속에서 모진 운해의 풍랑을 맞이하여도 도선국사가 예언 했듯이 영남의 태백 소백 준령이 구름을 뚫고 선계를 지키고 호남의 천불이 속계의 세상을 천불 터지게 하지 않고 균형을 잘 잡는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쪽배는 얼마든지 비상하는 비행기를 타고 먹구름을 뚫어 개성과 번영의 선계로 날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