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동해보복법은 죄와 벌이라는 이분법적 질서확립에 근간이다.
법은 최소한의 규율이다. 이마저 무너진다면 인간이 만든 세상은 이 최소한의 규율을 지키는 자만 끊임없이 손해를 보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법 위에 군림하는 흉포하고 야비한 자들에 의해 정글화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다.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진다는 의미를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탈법을 조장하는 세력의 농간임을 간파할 수 있다. 현대는 정보를 너무 많이 줘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탈정보 사회다.
이 탈정보의 이념이 사회도처에 자리 잡아 매스미디어의 주류가 되고 무엇이든지 다다익선이라는 그릇된 가치관과 만나 산업전반을 지배하는 이념이 되고 다수 대중을 홀려 개인의 소중한 권리와 재산 그리고 정보만을 쏙 빼가고 성문을 걸어 잠그는 정보의 비대칭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 만이라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개인으로서 세상의 조직과 어느 정도의 협상력을 가지고 예술이 일상화 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는 배우고 노자는 비운다. 배움의 미학 유가의 세뇌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동양사상에서 비움의 미학을 설파한 노자도덕경은 사상의 세계에서도 배워도 배워도 허기가 져서 다다익선으로 머리를 채워 더 이상 여백이 존재하지 않아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없어 배움으로 세상을 괴롭히는 현대로 말하면 탈정보를 시연하여 세상을 혼란케 하는 자를 경계해야 함을 부단히 강조한 것이라고 말해도 큰 어폐는 없을 것이다.
배우는 행위는 스승의 가르침을 일단 받아들여 그대로 따라 하는 일련의 행위다. 즉 곡학이 아니고 직학이요 마치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해야 하는 초보 배우가 선배 배우의 연기를 따라 하며 배우는 흉내내기가 배움의 시작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우가 배움의 완성도가 높아지면 그때까지 자기를 이끌어 주었던 선배 배우로부터의 배움을 깡그리 비우고 자기만의 캐릭터를 창조해야 그 배우는 진정한 배우가 되는 것이다.
들판을 뛰어놀며 자유롭게 살던 황소의 코에 코뚜레를 끼우고 등에 멍에를 지워야 비로소 밭을 갈고 논을 뒤엎는 일꾼으로서의 황소가 탄생되듯이 한 인간으로 태어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지워진 배움이라는 코뚜레와 멍에를 진 순진하고 꽃다운 젊은 세대를 호도하고 유인하여 매몰시키려고 하는 간악한 인간들에게 내려야 할 형벌은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깨알 같은 알 수도 없는 탈정보가 아니라 고대의 함부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콜럼버스의 달걀과 알렉산더가 단칼에 베어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은 해법이 필요치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