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다라는 말 하나 믿고 닥치고 공격, 즉 닥공을 앞세워 공격축구를 하듯이 나를 몰아붙이면서 세상을 향한 선전포고를 능사로 했던 젊은 날의 치기를 뒤로하고 수습이라는 미봉책을 남발하고도 나름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우기고 있는 한심한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달력은 올해의 마지막 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태양이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면서 하늘의 일월성상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우주적 질서에 따라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섭리를 보여주는 동안 땅 위에 사는 우리 인간들은 생존 너머 탐욕으로 나아가면서 고무줄과 같은 세상의 잣대 사이에서 헤매다가, 어느 방향이 순반향인지 역방향지도 모르고 이전투구의 진흙탕 세상의 원리를 시현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구는 둥글다. 둥근 지구 안 자연의 섭리는 어느 방향으로 출발하여도 원점으로 돌아오지만 개별 인간들이 모여 만든 세상의 원리는 내가 어느 포지션에 있는가에 따라 앞과 뒤 전진과 후퇴가 정해지기 마련이며 세상 안의 모든 인간들의 관심사는 밀리지 않고 퇴각 없는 전진이며 이것을 승리 혹은 패배라 부르며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는 일희일비의 일상을 반복하고 한 생을 살아내며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평시에 한 인간은 환갑까지는 생존과 번영을 향해 자신의 몸을 갈아 넣으면서 가족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하여 중단 없는 전진을 해야 하며, 환갑을 넘어 새로운 갑자가 시작되는 진갑進甲에 들어서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리듬, 즉 섭리에 따라 질서 있는 퇴진을 해야 한다. 그러나 관성적 존재인 한 인간은 자신의 한 생에서 직면하는 세상의 원리에 취해 오직 중단 없는 전진 만을 행동양식으로 삼고 환갑 이전의 생존했고 번영했던 성공경험을 지고선의 가치로 여기는 순간 진갑이 시작되는 시점의 질서 있는 퇴진은 사라지고 온갖 탐진치로 버무려진 노욕의 파티가 열리고야 만다는 단순한 한 생의 섭리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평시에는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하는 내려놓음을 실천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반면, 전시가 되면 세상이 수시로 뒤집히고 인간의 생명이 무수히 떨어지는 전장의 비참함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탐진치를 내려놓게 만들기가 쉬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전투가 거듭됨에 따라 부대 단위의 무장이 강화되면 될수록 병사 개개인의 멘털은 무장해제 당하여 탈탈 털리기 쉬운 곳이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 이기도 하다.
그렇게 무장을 한 병사들의 멘털이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 당하는 패전을 겪은 병사들을 다른 방향으로 기동 시킨다거나 후방진격이라고 하는 정신승리를 통하여 질서 있는 퇴진을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전사에서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사례이다.
그렇게 희귀한 경우가 한국전쟁 중에 일어났다. 북진통일을 눈앞에 두고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 전멸의 위기를 겪었던 미 해병 1사단을 비롯한 유엔군은 다른 방향으로의 기동과 후방진격을 통해 장진호에서 병력을 빼내어 함흥평야를 지나 흥남부두까지 질서 있는 퇴진을 하였다. 그렇게 전멸의 수렁에서 건져낸 병력뿐만 아니라 피난민과 전투장비까지 흥남철수작전은 완벽한 철수를 지휘한 제임스 도일(James H. Doyle) 제독에 의해 1950년 11월 30일부터 12월 24일까지 작전 중, 미군과 국군 병력 105,000명, 피난민 91,000명, 화물 350,000톤, 차량 17,500대를 철수했다"라고 한다.
평시에는 우리가 한 생에서 마주치는 승리와 패배의 시기를 가늠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처신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전시에 승패가 무수히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무장하고 무장해제 당하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하는 전사의 기적을 만든 장진호 흥남철수 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한 하갈 우리 전투의 해병 제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과 제1연대장 풀러 대령, 더글러스 드라이스데일(Douglas Drysdale) 중령 그리고 흥남철수 작전에서 APA 6척, AKA 6척, T-AP 13척, MSTS 임차선 76척, LST 81척, LSD 11척을 투입하여 세계전사에서 유례가 없을 완벽한 해상철수 작전을 완수한 제임스 도일(James H. Doyle) 제독을 포함한 테스크 포스 팀이 보여주었던 기적이 없었다면 질서 있는 퇴진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쟁사에서는 물론 인생사에서도 결코 목격하지도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오르막길의 승리에 취해 내리막길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난제 앞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고, 수영장에 물이 빠졌을 때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았는가가 드러나며, 환란이 닥쳤을 때 누가 매국노이며 누가 애국자인가도 비로소 판가름 나는 것이다.
기술의 특이점, 문명의 전환점 앞에 선 나나 나라나 국제사회 모두 전쟁 중이다. 실제로 포탄과 미사일을 탑재한 드론이 전장을 누비고 배달음식을 실은 드론이 하늘을 나는 세상에서 한 치의 우위가 패권의 향방을 가늠할 패권전쟁이라는 불이 무역전쟁으로 비화되는 즉시 패권전쟁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어 나와 나라를 내리막길로 몰고갈 것이다. 역성장이라는 뉴노멀이 2026년을 강타하는 순간 역방향 기동을 통한 새로운 방향으로 진격을 받아들이면서 질서 있는 퇴진을 한 개인이나 나라 만이 그나마 생존할 수 있는 엄혹한 시대 앞에 우리는 서있다.
*약어, APA: Attack Transport, 공격수송함, AKA: Attack Cargo Ship, 공격화물함, T-AP: Troop Transport, Transport–Auxiliary, 병력수송선 보조함정, MSTS: Military Sea Transportation Service, 미 해군이 동원 선박, LST: Landing Ship, Tank, 전차상륙함, LSD : Landing Ship, Dock, 도크형 상륙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