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사망이 자연의 섭리라고 한다면 선악과 흑백은 세상의 원리이다. 귀를 세 개나 쫑긋 세우고 미동도 없이 기다리다가 질주와 도주, 대결과 회피를 결정하고 생사와 존망이 걸린 행동을 하는 야생의 섭리에 비해 일종의 가상세계인 글로 밝힌 문명의 특징은 보다 모호하고 다소 추상적인 착함과 악함, 그리고 어둠과 밝음을 생각과 색깔로 치환하고 비빌 언덕인 원리를 구축하면서 호 불호와 사리판별 그리고 계산을 통하여 우리는 섭리를 행하는 자연 안의 사람에서 원리에 지배받는 세상 속의 인간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섭리와 원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과 인간은 여전히 섭리가 작동하는 미시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지만, 원리가 춤추는 거시계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원리가 주는 고정관념과 세뇌에 순응해야 하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할 운명적 존재로서 세상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뇌정보를 갈고닦으면 닦을수록 우리 몸 안에 섭리가 만들어낸 유전정보가 지워져 가는 이중구속의 함정과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버린 숙명적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세상의 원리는 운명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바삐 부리고 재촉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숙명적 존재로서의 사람을 자연리듬에 맞추어 더디 가라 속삭이는 것이다.
여말선초의 꿈틀거리는 원명교체기에 조선을 설계하고 원대한 요동정벌을 도모했던 정도전이 이방원에 의해 제거된 후 한반도에 갇힌 조선은 세종, 문종에 이어 삼대도 못 가 어린 단종을 몰아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의 여파로 재상정치는 실종되고 왕도정치에 이은 패도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삼봉이 설계한 조선의 건국이념은 워낙 탁월한 섭리로써 기능하면서 조선은 패도정치를 추구하는 원리와 재상정치를 실현시키려는 섭리가 치열하게 부딪히면서 왕도정치는 때로는 성군의 인자함으로 때로는 폭군의 광폭함으로 유가의 선비들을 덮쳤고 수많은 정난과 사화 사이에서 그들은 유가와 도가를 섭렵한 삼봉의 전철을 어김없이 밟아가며 허무하게 스러져 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패자는 말이 없고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원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패도정치의 틈바구니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반정의 아수라장 속에서 추대된 진성대군, 중종의 처지야말로 섭리와 원리가 충돌하고 패도와 왕도가 교차되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정국 속에서 살기 위해 패도로 무장한 반정공신들과 왕도를 드 높이려 했던 사림세력 사이에서 위험한 줄달리기를 하면서 우유부단한 처신으로 유가와 도가를 섭렵하고 조선을 개혁할 적임자 천재 조광조를 발탁하고도 역모로 몰아 죽이면서 재상정치 와 왕도정치는 종언을 고하고 패도정치가 판을 치면서 조선의 인재들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담양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그의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년)로 화순군 능주면에서 37세의 나이로 죽자 현실 정치에 뜻을 접고 고향 담양으로 내려와 호를 ‘소쇄(瀟灑)’로 짓고 은둔하면서 삶을 마감한 시린 사연을 간직한 조선의 대표적 원림이라고 한다. 논어 위정 편에 “吾十有五而志於學”(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유가의 가르침에 따라 15세에 조광조에게 소학을 익혀 학문의 길로 들어선 소년이 불과 이년 뒤 17세 때 스승 조광조의 죽음을 바라보며 낙향하여 만든 원림 소쇄원瀟灑園은 자신의 호를 따서 만든 의미만큼이나 독특하다.
피 끓는 10대를 보내기도 전에 유가의 원리와 도가의 섭리를 현실정치 속에서 겪고 맑고 깊은 물로써 세상을 정화할 세찬 비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인간의 손길이 탄 정원이 아닌 꾸미듯 꾸미지 않은 듯 만든 원림, 소쇄원瀟灑園은 패도정치라고 하는 세상의 원리가 만든 폐해로 인해 내부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던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수십 년 전 소쇄공 양산보가 세상을 향해 소쇄원瀟灑園으로 소제원掃除願 하고자 했던 치열한 몸부림의 현장은 아니었을까 막연하게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