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8
바다에서 시작한 생명체의 뭍 상륙은 약 4억 7천만 년 전 식물에서 시작되어, 약 3억 3천만 년 전 파충류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고 한다.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에게 있어 억 단위의 시간은 아득하다 못해 아련하다. 그러나 우주공간의 한낱 먼지에서 시작한 생명이 바다를 거쳐 뭍에 상륙한 사건이야말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고 하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단서는 아닐까?
이처럼 생명의 역사는 이동의 역사다. 장구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이동하는 생명이 있고 짧은 세월 동안 빠르게 이동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이 이동의 역사 속에는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이 있고 시간 속에서 명멸하면서 생명체는 주연과 조연 엑스트라를 연기하면서 바다와 뭍과 섬이라는 지구환경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받아준다는 의미의 바다에서 섬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 뭍에 상륙하였고, 뭍이라고 하는 이질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분투노력 하는 도정에서 수많은 멸종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생존하였다.
생존의 부산물로 획득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갈고닦아 마침내 인류는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생물학적 사슬에서 해방되었으며, 1만 년 전 농업혁명을 통한 정주문명을 이루어 살면서 이동을 멈추고 육체정보적 수렵문명에서부터 뇌정보적 정주문명으로 급속히 이행하게 된 것이다.
바다로부터 섬을 거쳐 뭍에 상륙하여 수많은 멸종의 위기 속에서도 돌연변이 진화를 통해 살아남아 수렵하고 채집하다가 7만 년 전 인지혁명을 거치면서 육체정보라고 하는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뇌정보라고 하는 일종의 가상세계를 상상해 내면서 필요에 의하여 말과 문자 그리고 음악과 숫자까지 만들어 상상이라는 가정을 언어라는 관계로써 구현해 내면서 마침내 농업혁명과 가축혁명이라는 생산기반을 바탕으로 가상의 화폐경제를 발명해 내었다.
화폐경제 안에서도 자본이라는 알곡을 선점하기 위하여 정주문명들은 가라지가 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대를 이어 치열하게 쟁패한 일만이천 년의 역사의 결과가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은 아닐까? 나름대로 의심해 본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으로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거대한 뭍에 갇혀 이전투구하던 구세계 질서는 오스만 튀르크라는 장벽에 막혀 유라시아 대륙이 막히자 눈을 서쪽으로 돌려 인류의 시원과도 같은 바다, 대서양을 주목한 한 돌연변이 몽상가에 의하여 기어이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뭍에 상륙함으로써 인류사는 획기적 전기를 맞았다.
이로써 해양세력은 대서양이라는 바다를 거쳐 아메리카라고 하는 거대한 뭍을 징검다리 삼아 유라시아 대륙세력을 극복하고 해양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서세동점의 대장정을 시작하였다.
바다에서 섬이라는 징검다리를 거쳐 뭍이라는 대륙에 상륙한 생명체는 인류로 진화하여 상륙의 역순으로 바다로 돌아가 해양문명이라고 하는 문명사의 터닝포인트를 찍고 화폐경제의 알곡인 자본이라는 헤게모니를 마침내 손에 넣고 세계패권질서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 선단의 아메리카 상륙, 1592년 임진왜란 일본군 선단의 부산진 유라시아 대륙 상륙, 1944년 연합군 노르망디 유라시아 대륙 상륙, 1950년 유엔군 인천 유라시아 대륙 상륙과 같은 바다에서 섬을 거쳐 뭍으로 상륙하는 서세동점의 역사는 세계패권질서의 헤게모니가 해양세력에 있음을 선언한 뚜렷한 증거로 기록된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바다에서 섬을 징검다리 삼아 뭍으로 상륙한 원시 생명체가 뭍에서 수많은 멸종과 돌연변이 끝에서 인류가 되어 문명을 일으키고 문명의 부침에 따라 막다른 길 끝의 뭍에서 섬을 디딤돌 삼아 도로 바다로 돌아가는 5억 년에 걸친 대서사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보여주는 생명과 문명의 대서사라고 부를 만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