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1
나무만 보면 숲이 보이지 않고, 숲만 바라보면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지구 생명체로써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갈고닦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여섯 가지 인식대상,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야만 할 인류가 시각문명에 편중되어 살아가다 보니 필연적으로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감각의 왜곡이라는 시각문명의 부작용에 다반사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리적 측면으로 바라보면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는 듯 보이지만 섭리적 관점에서 지구를 관조하면 인간은 지각 위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생존의 기로에서 어디로 튀어야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가련한 지구의 스몰보이에 불과하다.
공포는 폭력을 폭발시킨다. 지구 먹이사슬의 역사에서 호모 사피엔스만큼 잔인한 생명체는 없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맹수들도 배를 채우면 피식자들이 눈앞에 어른거려도 사냥을 멈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사냥을 하는 맹수와 달리 포식자들에 둘러싸여 수백만 년 동안 피식자로서 감내해야 했던 극강의 공포를 극복하고 불과 도구 그리고 무리의 힘으로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른 우리 인류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생존의 트라우마는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실상이든 가상이든 가리지 않고 깡그리 절멸시켜야만 살 수 있다는 유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렇게 탄생하고 생존한 전쟁기계집단 인류에게 있어 전쟁과 평화의 의미는 절멸과 공존에 가깝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를 넘어서 절멸시키지 못하면 공존할 수 없다는 공포가 더하면서 전쟁기계 집단 인류의 일상은 살기 위해 하는 전쟁을 넘어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적을 반드시 절멸시켜야 한다는 트라우마 치료법이 되어 인종청소까지 마다하지 않는 유례없는 잔인함에 인류 스스로 마저 치를 떨게 만든다.
전쟁기계집단 인류가 상대를 절멸시켜야 내가 생존할 수 있다는 오래된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은 놀랍게도 최근의 일이다.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압도적 화력에 더해 인류최초로 핵폭탄까지 사용했던 전쟁의 여파로 드디어 인류는 상대를 완벽하게 절멸시키고도 남을 절대반지 핵을 손에 넣게 되었고 이로 인해 수백만 년 동안 절멸과 생존의 공포를 극복하고 상대를 절멸시키지 않고도 내가 생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다가갔다.
그 가능성의 시험대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냉전의 라이벌들이 손에 쥔 핵카드는 소련의 소모전, 미국의 제한 전이라고 하는 희한한 전쟁에 돌입하였으며 결국 양측은 서로가 서로를 절멸시키지 않고도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공존의 지점을 발견하였고, 그 공존의 증거가 1953년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고 지나간 155마일 휴전선이었다.
이처럼 전쟁기계집단 인류가 절멸을 멈추고 공존을 도모하면서 세상은 동서냉전이라고 하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긴 휴전에 돌입하였고, 이와 같은 공존의 시간 동안 대리전과 국지전을 거치면서 군비 경쟁과 외교적 압박을 통해 소련의 재정·정치적 부담을 키우고, 이후 고르바초프와의 접촉·조약을 통해 냉전을 종식시키는 흐름을 가속화하였다. 그 핵심은 SDI(전략방위구상) 같은 군사적 압박과, 중거리핵전력조약(INF) 같은 군비축소를 병행한 ‘이중적 전략’을 병행하여 레이건은 팍스아메리카나의 서막을 열었다.
세상은 돌고 돌아 유례없는 공존과 평화의 시대를 지나 2026년 기술적 특이점인 AI 시대에 진입하였으나, 기술적 특이점은 역설적이게도 평화와 공존이라고 하는 인류사의 희박한 실험을 뒤로하고 세상은 또다시 전쟁이라는 트리거를 당기면서 절멸의 시나리오로 회귀하고 있다.
림랜드 전략을 추구하는 해양세력들이 하트랜드의 핵심지역 이란을 맹폭함으로써 세상은 또다시 오래된 공포의 트라우마에 노출되었고, 인류는 절멸과 공존 사이에서 오래된 본능인 전쟁기계집단으로 위험한 한 발자국을 내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대의 특이점 앞에서 우려가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