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늙은 점바치 좋은 날 오기를 학수고대 한다

by 윤해


2026.03.15

1971년 3월 8일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인파이터 복서 조프레이즈는 아웃 파이터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의 경기에서 15라운드까지 간 혈투 끝에 판정승으로 알리에게 첫 패배를 안겼다.

세기의 대결(Fight of the Century)이라고 불리던 이 경기가 흑백텔레비전 수상기를 통해 전 세계에 위성중계 되면서 학교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에 황급히 집으로 뛰어온 나는 헐레벌떡 자세를 고쳐 잡고 티브이 앞에 앉았다.

인파이터 복서의 전형이었던 챔피언 조 프레이즈는 헤비급 선수로서는 작은 체구를 가졌음에도 저돌적인 공격권투로 전쟁징집에 불응하여 챔피언벨트를 박탈당하고 수년만에 링에 오른 아웃 파이터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15회전 내내 시종일관 몰아붙인 끝에 승리하였고, 이 경기를 시작으로 조 프레이즈, 알리, 조지 포먼으로 이어지는 1970년대 헤비급 권투의 황금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사각의 링 안에서 글러브를 끼고 경기규칙에 따라 인파이팅과 아웃파이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상대를 때려눕혀야 하는 복싱과 시공간을 무시하고 육해공 삼면에서 가능한 한 상대에게 궤멸적 피해를 주고자 온갖 기만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전쟁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복싱과 전쟁의 공통점은 상대가 있고 나는 상대를 향해 인파이팅과 아웃파이팅을 병행하면서 상대가 패배할 때까지 밀어붙인다는 공통점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들어갈 때보다는 나올 때가 어렵고 싸울 때보다는 싸움을 피하면서 지켜보기가 훨씬 어렵다. 더구나 힘이 없어 할 수 없이 싸움을 회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힘이 있음에도 참고 또 참으며 인내하고 자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1971년 3월 8일, 6 스퀘어 미터 남짓한 사각의 링에서 지치지 않는 들소처럼 인 파이팅을 구사하며 15라운드 내내 알리를 몰아붙였던 조 프레이즈와 알리의 대결이 세기의 대결(Fight of the Century)이었다면 1973년 1월 22일, 자메이카에서 열린 선샤인 쇼다운(The Sunshine Showdown)이라고 불리는 조지 포먼과 조 프레이즈와의 대결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프레이저가 다운됩니다!(Down goes Frazier!)"라고 하는 중계 아나운서의 긴박한 멘트를 뒤로 하고 인파이터 조 프레이즈는 KO 머신 포먼에게 2라운드 TKO 패로 챔피언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빅 조지의 KO 퍼레이드를 막아선 선수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라는 무하마드 알리였다. 나비의 유연한 아웃복싱과 벌떼의 무자비한 인파이터를 더한 알리는 은인자중 하면서 로프 어 도프 rope a dope전략으로 포먼의 힘을 뺀 다음 8회 카운터 원투 스트레이트로 1974년 10월 30일 전 세계 복싱팬들을 경악케 한 킨샤사의 기적을 완성시켰다.

이처럼 1970년대 알리와 프레이즈 포먼 간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전은 서로가 물고 물리면서 권투팬들의 흥미를 배가시켰으며 인파이팅과 아웃파이팅 그리고 KO 펀치가 작렬하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세계는 사각의 링이 아닌 지구라고 하는 둥근 링 위에서 인파이팅과 아웃 파이팅을 구사하면서 KO 한 방을 노리면서 그야말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 알리의 위대함이 사각 링안에서 카운터 펀치를 날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못지않게 링 밖의 트래시 토크 trash talk를 통해 상대의 약을 올려 이미 이기고 링 위에 오르는 것처럼 연일 전쟁 당사국들이 쏟아내고 있는 아무 말 대잔치가 현란하다 못해 어지럽기까지 하다.

전장에서 죽어가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보다는 트럼프와 네타냐후,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내뱉는 트래시 토크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바다 건너 불구경이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각의 링 또는 역사책에서나 등장할법한 인파이터 독재자들이 펼치는 전쟁놀이에 세계인들의 일상은 파국을 맞고 있다.

2026년이 7만 년 만에 맞이하는 인지혁명의 전환점이 될 거라고 부푼 희망을 품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복리와 일상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기술적 특이점을 통과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은 미시계의 세포자살 메커니즘으로 신구세포를 교체하듯이 전쟁을 통해 신구질서를 교체하겠다는 일념으로 연일 인공지능을 탑재한 미사일과 드론으로 서로가 서로를 향해 가공할 만한 인파이팅을 구사하고 있으니 도대체 언제쯤 아웃파이팅을 통한 출구전략을 세울 수 있을지 은인자중 기다리기에는 세상은 위태롭고 우리의 선택지는 갈수록 옹색해지는 형국이다.

메마르기 이를 데 없는 삭막한 강남 빌딩 숲 속에 떡 버티고 앉아 천하를 호령하는 듯하며 피어난 봉은사의 홍매화를 바라보는 꽃샘추위의 절정에서 중동의 대결이 세기의 대결 Fight of the Century과 선샤인 쇼다운 The Sunshine Showdown을 거치면서 킨샤사의 기적처럼 정리가 될 것인지, 반세기 전 사각링 위 열광의 도가니를 뒤로하고 지금 지구촌 둥근 링 위의 승부가 우려의 도가니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때이다.

오십 년 전 사각의 링에서 펼쳐졌던 인파이팅 아웃파이팅 KO 펀치가 복싱의 황금시대를 열었듯이 칠만 년 만에 맞이하는 두 번째 인지혁명인 인공지능 혁명이 킨샤사의 기적처럼 중동의 전쟁을 잠재우고 인류의 황금시대가 올 것임을 피어나는 봉은사의 홍매화를 바라보는 글벗의 심정과도 같이 나는 오늘도 늙은 점쟁이 좋은 날 오기를 학수고대하듯 은인자중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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