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왜 대표적 '친일'국가가 되었을까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지만 먼 나라’지만, 핀란드에게는 반대로 ‘멀지만 가까운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두 나라는 놀라울 만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를 ’애정’한다.
핀란드의 사우나와 일본의 온천 문화는 닮아 있고, 자연과 함께하는 고요하고 단순한 삶을 소중히 여기는 라이프스타일 또한 비슷하다. 몇 년 전 일본 황실의 공주가 다른 목적이 아닌 오직 ‘새 관찰’만을 위해 핀란드를 방문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실제로 봄이 되면 마치 친구를 기다리듯 새 관찰에 몰입하는 핀란드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일본 사람들도 새 관찰에 진심인가 보다.
이 밖에도 핀란드 내에서 일본 음식과 문화의 인기가 높지만, 핀란드를 방문한 일본인들의 핀란드 사랑도 그에 못지않다. 헬싱키 거리에서 사계절 내내 보이는 아시아 관광객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다른 나라 관광객이 주로 날씨가 쾌청한 여름에 몰리는 것과 비교된다. 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무민 캐릭터에 ‘카와이(かわいい)’를 외치고 핀란드의 눈 덮인 자연을 구석구석 찾아다닌다.
이들의 여행 방식은 주마간산식 속도전이 아니라, 디테일을 깊이 파고드는 집요한 ‘현지살이’에 가깝다.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헬싱키의 노포 식당에도 그들은 귀신처럼 알고 나타난다. 한 번은 유리 공예 마을인 이딸라(Iittala)의 유리 공예 작업장을 방문했는데, 일본인 여성 두 명이 몇 시간째 유리 제작 과정을 미동도 없이 관찰하고 있었다. 그 시골 마을까지 물어물어 찾아와 제품이 만들어지는 현장 그 자체를 체험하려는 그들의 열정은 패키지여행과는 차원이 달랐다.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일하는 유리 공예가 중 한 명도 일본인이었다.
사실 일본 디자이너들이 핀란드 디자인의 주류에서 활약하는 것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핀란드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마리메꼬(Marimekko)의 전설적인 프린트를 만든 이소라 카츠지(Katsuji Wakisaka)나 후지오 이시모토(Fujio Ishimoto) 같은 거장들이 핀란드 디자인에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양국의 디자인 철학이 ‘미니멀리즘과 자연주의’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보니, 일본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이 핀란드 디자이너의 작품과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느낌이 비슷하다.
두 나라 사이의 친밀함은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핀란드어 상호명을 가진 가게들이 일본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 가게 주인은 핀란드의 열혈 팬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아니면 핀란드어와 일본어가 발음이 비슷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두 언어 모두 경음(ㄲ, ㄸ, ㅉ 등)이 많다. 예를 들어 일본어 ‘또리(とり)’는 새를 뜻하는데, 핀란드어 ‘또리(tori)’는 광장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인의 핀란드어 발음은 현지인에 가깝다. 영어 발음은 다소 ‘뚝딱’ 거리는 일본인이 핀란드어만큼은 오래 산 나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이런 양국 간의 호감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브랜드 무지(MUJI)가 유럽 최대 규모의 매장을 런던이나 파리가 아닌 헬싱키에 연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들은 소문으로는 무지(MUJI) 사장이 무지하게(?) ‘핀란드 팬’으로, 대형 매장 오픈에 직접 관여할 만큼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 매장에는 현재 유럽 최초의 무지 레스토랑까지 운영되고 있다. (무지 레스토랑에서는 가성비 훌륭한 일본 가정식을 팔고 있으며, 특히 돈가스는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중 최고다. 헬싱키 방문 시 강추한다)
핀란드의 일본에 대한 호감은 한 역사적인 사건이 단초가 되었다고 알고 있다. 이야기는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핀란드인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안겨 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실제로 당시 핀란드 언론은 일본을 “작은 나라가 제국을 이겼다"고 칭송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편, 일본인 심리 저변에 깔린 ‘탈아시아론(脫亞細亞論)’은 유럽을 이상적 모델로 삼으며 자신들을 서구와 동일시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가까운 아시아보다 먼 유럽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일본인의 심리는 묘하다. 예전에 만났던 한 일본인 친구는 일본인들이 백인 중에서도 특히 금발과 파란 눈을 가진 북유럽인을 선호한다는 속내를 들려주기도 했다. 게다가 ‘갬성’까지 비슷한 핀란드에 꽂힌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1919년 수교 이후 100년 넘게 이어진 우호 관계는 핀란드 출신 인물이 일본 국회의원이 되어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할 만큼 실제 사회·정치 영역까지 탄탄하게 확장되었다. 참고로 한국과 핀란드의 수교는 1973년으로 일본보다 훨씬 늦다.
두 나라는 닮은 점도 많지만 결정적인 차이점들이 있다. 일본 사회는 속마음을 뜻하는 ‘혼네(本心)’와 겉치레 표현인 ‘다테마에(建前)’라는 이중성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면, 핀란드인에게 빈말이란 없다. 핀란드인은 "집에 놀러 오라"거나 "식사 한번 하자"는 말을 잘하지는 않지만, 일단 내뱉었다면 그것은 100% 진심이다. 핀란드만큼 말에 무게를 두는 나라는 드물다. 심지어 핀란드 민법에서는 구두 계약도 서면 계약과 동일한 유효성을 갖는다. 그에 비해 일본 사람이 인사치레로 한 번 집에 놀러 오라고 해서 진짜 찾아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핀란드의 ’ 찐’ 진심과 일본식 ‘하얀 거짓말’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교육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관점도 상당히 다르다. 경쟁이 심하지 않은 핀란드 교육과 달리 일본은 여전히 경쟁 중심의 입시 교육이다. 성평등 지수 또한 극명하게 갈린다. 핀란드는 세계 성격차 지수(GGI)에서 늘 최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최근 일본에서도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하며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여전히 정계 내 여성 비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핀란드는 1906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했고, 현재 의석의 절반 가까이를 여성 정치인이 채우고 있는 어찌 보면 정치에 있어서는 여성 천하의 나라다.
최근 핀란드 서점가에는 이러한 차이에 주목하는 책들이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국화’로 상징되는 일본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칼’로 상징되는 그 이면의 긴장과 모순도 보기 시작한 것일까? 『일본의 미소 뒤(Japani hymyn takana)』, 『일본 문화의 이면(Japani – kulttuurin kääntöpuoli)』 같은 책들은 노동 환경, 성평등, 사회적 압박 등 일본의 어두운 면을 조망하고 있다. 핀란드 사회가 찬양 일색의 ‘친일(親日)’에서 보다 객관적인 ‘지일(知日)’로 패러다임을 조금씩 바꿔가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반가운 변화는 일본 관련 서적 옆자리에 한국의 소설과 라이프스타일을 다룬 책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핀란드인들이 오랜 ‘선망의 대상’이었던 일본을 넘어, 역동적인 한국의 K-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기분 좋은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