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멋진 목조 건물이 흉물로 변한 이유는

유럽 상위권, 핀란드 청소년 자살률의 현실

by 어나미



헬싱키의 뉴타운, 야까사리(Jätkäsaari)에는 목조로 외관을 감싼 멋진 주차 건물이 들어서있다. 8층 높이의 이 건물은 수려한 디자인 덕분에 마치 하나의 거대한 목공 조각품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한 때 이 건물을 보며 핀란드 사람들은 주차장 건물까지 북유럽 디자인에 맞게 멋지게 짓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건물에서 최근 4 명이 연달아 자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4명 중 3명은 안타깝게도 10대 청소년이었다. 매번 이곳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핀란드 언론은 이 죽음을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가장 최근의 사고는 며칠 전에 벌어졌다. 이 지역 주민은 이제 이 건물을 지날 때마다 무섭다고 했다. 한때 이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자랑거리였던 아름다운 '목조 주차장'은 이제는 지역주민에게 PTSD를 일으키는 두려운 장소로 변해버렸다.


핀란드는 이전에는 자살 현장이 일반 대중에게 목격된 적은 드물었다. 자살률이 낮아서라기보다는 높은 빌딩이 별로 없는 핀란드의 도시 구조상 투신할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야심 차게 많은 예산을 들여 세워진 이 주차 건물이 들어서며 핀란드의 청소년들에게 치명적인 장소를 제공하게 된 셈이다. 현재 헬싱키시 정부는 건물 폐쇄나 안전망 설치 등의 긴급 대책을 마련 중이다.


외부에는 ‘가장 행복한 나라’에 사는 핀란드 사람들이지만, 자살은 이들에게도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꽤 ‘아픈’ 단어일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대화 중 상대방이 죽은 가족이나 친구를 언급할 때 사인을 묻지 않는 것이 암묵적 약속이다. 소중한 사람을 자살로 잃은 가족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본인도 심한 우울증 앓았던 젊은 의사 욘네 윤트라(Jonne Juntura) 씨는 ‘가장 행복한 나라’의 이미지가 핀란드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1990년대, 핀란드는 한때 세계 2위의 자살률을 기록했다. 그 후 자살 예방 정책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며 전체 자살률은 반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15~24세 청소년의 사인 중1/3 이상이 자살일 정도로 젊은 층의 위기는 끝난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비통한 소식을 접한 적이 있는데, 핀란드 청소년 자살률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0년 보고서(Health at a Glance)에 따르면 핀란드 남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세계 5위, 여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세계 2위로 유럽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사교육과 학력 경쟁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는 핀란드 청소년들이 뭐가 고민일까 싶지만, 깊이 파보면 이들도 많은 아픔이 있다. 자살 청소년 중 90%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75%는 우울증에 시달렸었다. 학교 내 따돌림, 높은 이혼율로 인한 불안정한 가정환경, 부모의 알코올 중독 등이 아이들을 우울증에 빠뜨리는 요소로 지적됐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로움이다. 2026년 설문 조사를 보면 16~24세 청소년 중 66%가 심각한 정도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의 수치보다 20% 늘었다. 실제로 핀란드 16~24세 청소년에게 속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몇 명인지 물어봤을 때, 10% 이상이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들이 말하는 외로움은 순간적 기분이 아니라 만성적이며 치명적일 수도 있는 그런 외로움이다.


커피를 마시며 한가하게 무심코 기사 하나를 클릭했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나는 그 기사를 보고서야 그날이 '세계 자살 예방의 날(9월 10일)'인 것을 알았다. 언론에서는 특집 기사로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소개됐다. 기사를 읽으며 처음에는 눈물이 핑 돌더니, 급기야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울음보를 멈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내 가슴을 무너뜨린 여성은 헬싱키에 사는 한 중년 여성, 사리 핀네(Sari Finne) 씨의 이야기다. 그녀는 4년 전 첫째 아이 알리사를 자살로 잃었다. 알리사는 죽기 1년 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려 심할 때는 자해를 하기도 했다. 응급실에도 여러 번 실려 가고 정신과 치료와 입원을 반복했지만, 끝내 그 아이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이를 잃고 난 후, 숨 쉬는 일조차 고통이었다고 한다.


몇 년 후 더 큰 충격이 찾아왔다. 화창한 어느 봄날, 둘째 이삭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엄마! 엄마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는 않은데… 어쩔 수가 없어요. 엄마는 최고의 엄마였어요.” 이 불길한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이미 15세 이삭은 이 세상에 없었다. 그는 누나와 같은 나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모든 부모가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 같은 현실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자살은 가까운 6명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때로는 그 주변 공동체까지 흔들 수 있다. 알리사의 죽음은 동생과 그 지역에 살던 두 명의 소녀까지 같은 방식으로 삶을 포기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지역 주민들은 이제 기차역 비상 벨소리만 들리면 공포에 떨게 됐다. 지역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선로변에 울타리를 세워 같은 장소에서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았다.


핀테 씨는 둘째가 죽은 후 벌어진 몇 주간의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엄청난 쇼크에 빠진 그녀를 위해 주변에는 손을 잡아주며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핀란드 자살자 가족 협회(Surunauha ry)에서 만난 자살자 부모들과의 만남은 회복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드디어 자신에게 가했던 모진 채찍질도 멈출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삶에 맞서 지지 않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찾아서 하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다.


핀란드에서는 전 세대만 해도 자살자들이 교회 공동묘지에 묻히지 못했다고 한다. 자살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고 자살자 가족들도 수치심에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고 핀네 씨는 말했다. 특히 자살자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없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의 자살에 대해 숨기지 않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불편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믿는다.


현재 그녀는 핀란드 자살자 가족 협회에서 유가족을 돕는 상담가로 일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 아이들이 생각나지만, 남을 도우며 자신도 살아낼 용기를 내고 있다. 이제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줄 줄도 안다.


핀란드 정부에서도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자살 예방 매뉴얼을 보급 중이다. 청소년과 청년의 자살 예방을 특히 강조한 이 매뉴얼은 청소년의 우울증이 성인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기에 아이들의 작은 신호에도 즉각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특히 자살을 언급하던 아이가 갑자기 밝아지는 것은 결심을 굳힌 후에 안도감 일 수으며, 친구의 자살 징후를 어른에게 알리는 것이 배신 아닌 구조 활동임을 알려줘야 한다고 이 메뉴얼은 쓰여 있다.


이 매뉴얼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맺음한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자기 파괴적인 선택을 하려 하는 청소년일지라도 그들을 보호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 절대로 이들은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 핀란드 자살자 협회(Surunauha ry)는 1997년 처음 만들어졌다. 현재, 핀란드 전역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운영하는 상담모임이 활발히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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