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미스 유니버스의 눈 찢기 논란 뒤에 숨겨진 역사
핀란드 사람들은 겉은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한, 요즘 말로 ‘츤데레’ 같은 면이 많다. 말수는 적고 표정은 딱딱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기본 성정은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은 편이다. 인생의 반을 이곳에서 살며 나는 핀란드인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불쾌한 시선이나 발언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유럽 국가를 여행할 때 현지인의 인종 차별적 언행에 기분이 언짢아진 적은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터진 일련의 사건은 내 생각에 작은 균열을 일으켰다.
2025년, 미스 핀란드로 뽑힌 여성이 SNS에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듯한 ‘눈 찢기’ 사진을 올려 세계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보다 더 큰 충격은 그다음이었다. 젊은 여성의 실수를 타일러야 할 핀란드 유명 정치인들이 줄줄이 SNS에 본인도 눈을 찢는 사진을 올리며 그녀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큰 분노를 샀다. 일본에서는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한국과 중국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핀란드 브랜드 불매 운동 조짐이 보이는 등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국가 이미지를 자랑하던 핀란드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 중, 이들이 입에 올리기를 꺼려했던 ‘국민 콤플렉스’ 하나가 떠올랐다.
시간을 오래전으로 돌려본다. 이민 초창기, 나는 핀란드인들과 사우나를 하고 시벨리우스와 원조 산타클로스 이야기(당시엔 자일리톨 껌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이라 그 이야기는 못 했다)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나갔다. 고등학교 인문사회 시간에 배운 지식까지 총동원하며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언어와 인종 면에서 핀란드는 아시아 계통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그런데 그 질문을 듣자마자 상대방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버렸다. 안 그래도 냉미남, 냉미녀인 핀란드인들이 마치 ‘아이스맨’처럼 꽁꽁 얼어붙은 듯했다. 대화는 거기서 더 이상 발전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핀란드인들이 ‘아시아’ 혹은 ‘몽골’과 연관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단어는 핀란드 사회의 거대한 '금기어'였다.
핀란드인의 ‘몽골 콤플렉스’ 뒤에는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한 우생학(優生學) 열풍이 있었다. 당시 과학의 한 분야로 여겨진 우생학은 인간의 유전적 특성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연구되었다. 훗날 히틀러는 이를 극단적으로 이용해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는 근거로 삼기도 했다.
당시 이웃 나라 스웨덴의 유명 우생학자 안데르스 아돌프 레치우스(Anders Adolf Retzius)는 두부지수(頭部指數, Cephalic Index/CI)라는 것을 고안해 핀란드인을 게르만계 ’장두형’이 아닌 ‘단두형’으로 분류했다. 이 발견은 아시아 계통 언어(핀우랄어족)를 사용해서 이미 이상한 유럽인으로 비쳐지던 핀란드인을 ‘비주류 유럽인’으로 규정하고 격하하는 결정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의 아들 구스타프 레치우스(Gustaf Retzius)는 이보다 더 큰 만행을 저질렀다. 연구라는 명목으로 핀란드인의 무덤을 몰래 파헤쳐 많은 두개골을 스웨덴으로 도굴해 간 것이다. 이 사건은 2000년대 이후 공론화되어 결국 2024년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유골 82구를 반환하며, 핀란드 땅에 재안장될 수 있었다.
유럽에서 ‘몽골’이라는 단어는 칭기즈칸이 준 트라우마로 인해 오랜 시간 비호감의 대명사였다. 야만적이고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의도적으로 ‘몽골’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지금은 ‘다운증후군’이라 부르는 병이 과거에 ‘몽고병’이라 불렸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핀란드의 몽골 연관설은 이들의 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차별은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19세기말 감자 기근을 피해 이민 간 핀란드인들은 한동안 '자격미달'로 미국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 당시 미국법은 백인과 일부 흑인에게만 시민권을 허용했는데, 미국 정부가 그들을 ‘황인종(몽골계)’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1908년 한 핀란드인이 자신이 ‘100% 백인’임을 증명하는 소송을 벌인 후에야 비로소 핀란드인도 다른 유럽인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핀란드인들이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아시아 연관설은 ‘팩트’로 증명되게 된다. DNA 분석 결과 핀란드인의 유전자는 유럽(80~90%)과 비중은 훨씬 적지만 아시아(10~20%)가 혼합된 형태임이 드러났다. 특히 유럽에서 기원한 모계 X 염색체와 달리, 부계 Y 염색체는 상당 부분 아시아에서 기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6년 네이처(Nature)지 논문은 핀란드인을 유럽 내에서 특별히 구별되는 집단으로 규정하며, 유럽인은 크게 ‘비(非) 핀란드인’과 ‘핀란드인’으로 나눌 수 있다고까지 했다. 내가 한국 교과서에서 배웠던 지식은 결국 근거 없는 정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최대 온라인 토론장인 'Suomi24'에는 여전히 이를 부정하는 댓글로 넘쳐난다. 이들의 논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세상에서 가장 하얀 피부와 금발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검은 몽골인과 연관이 있느냐"는 것이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이들의 ‘몽골 콤플렉스’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는, 그 동전 뒷면에는 바로 자신들이 차별받는 근거가 됐던 ‘백인 우월주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겨우 되찾은 ‘우월한 백인’의 지위가 위협받을까, 과학적으로 입증된 연구 결과마저 애써 부정하려는 핀란드인들의 모습은 '미안하지만' 상당히 찌질해보인다.
오히려 나는 그들이 그렇게 감추고 싶어 하는 아시아 DNA 때문에 오히려 이 긴 세월을 핀란드에서 정 붙이고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핀란드에 도착한 순간부터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 이 땅의 그 무엇이 나를 끌어당겼다. 핀란드는 처음부터 나에게 '낯선 고향'이 되어주었고, 앞으로도 내가 살아있는 한 그렇게 느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인간은 유전체(Genome)가 99.9% 이상 동일한 단일 종(種)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된다. 종(種)을 나누는 기준은 서로 교배하여 번식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인류는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등 다른 종으로 원래 구분될 수도, 구분되어서도 안된다.
유네스코에서는 1950년 인종 문제를 다룬 성명서(Statement on Race)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종에 속하며, 인종은 생물학적 실재가 아니라 신화다.”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인종'이라는 거대한 신화의 장벽을 넘어, 하나의 '인간'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