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핀란드]전남편의 재혼으로 얻은 나의 수상한 가족

마틸다가 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름, '보너스 엄마'

by 어나미

현관문을 열자 아빠 손을 꼭 잡은 어린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돌돌 말린 도화지를 내게 건넸다. 그들은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들어오라고 얘기를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정한 부녀가 떠난 뒤, 도화지를 펼쳐보니 빨주노초 무지개를 배경으로 가족처럼 보이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웃고 있다. 사람 수를 세어보니 모두 8명이다. 누군지 쉽게 구별되진 않았지만, 분명 우리 가족 그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내가 ’우리’라는 대명사를 쓸 수 있는 이유는 그 대가족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의 이름은 마틸다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돌아보면 마틸다가 초등학생이 된 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던 마틸다는 만 2세 생일을 앞두던 어느 날 밤,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우리 아이들도 늦은 밤 병원으로 모두 달려갔다. 마틸다가 그날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아빠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마틸다가 얼마나 위독한 상황인지 나도 알게 됐다. 병원으로 함께 가고 싶었지만 직계 가족 외에는 중환자실 입장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 남편과 안 좋게 헤어진 후에 그를 많이 미워했다. 그가 재혼한 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축하만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허약했던 아이였기에 신경은 쓰고 있었다. 거의 2년 동안 안 좋은 심장으로 버텨가던 아이의 생명은 그날 밤 꺼져가고 있었다. 비록 내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곧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밤늦도록 간절히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아이를 꼭 살려주세요. 만일 제가 전남편을 용서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면… 지금 그를 용서하겠습니다. 절대로 죄 없는 저 아이를 데려가시면 안 됩니다.”


그 다음날 일찍, 전남편에게 아이의 상황이 궁금해 문자를 넣었다. 그는 담당 의사가 “기적이 일어났다”며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고도 했다. 그날 밤 '기적처럼' 생사의 고비를 넘은 후, 마틸다는 심장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놀랍도록 빠르게 열렸다. 비록 평생 매일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지만,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때부터 우리는 ‘가족’이 되어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어쩌다 만나면 아이를 품에 안았고 그 아이도 순순히 나에게 안겼다. 쇼핑을 하다 예쁜 여자아이 옷을 보면 손이 갔다. 며칠 전에도 옷 하나를 사서 보냈다. 그 옷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늘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우리 집까지 직접 배달해 준 것 같다. 이 그림은 아마 내가 평생 받은 선물 중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핀란드에서는 재혼으로 새롭게 탄생한 가족을 ’새로운 가족(핀어: Uusperhe)’이라 부른다. 이 용어는 1990년대 중반경 핀란드에서 새롭게 만들어졌다. 핀란드에서는 원래는 재혼가정을 ’재활용결혼(핀어: Uusioliitto)’으로 불렸다고 한다. 부부의 결합에 ’재활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비인격적일 뿐만 아니라 과거를 리마인드 시킨다는 이유로 비판을 많이 많았었다. 또한 이 단어는 가족 구성원을 배제한 단어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하나의 팀이 된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로운’을 뜻하는 Uus와 ‘가족’을 뜻하는 Perhe를 합친 신조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단순히 예쁜 포장지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정의를 다시 내리는 작업이다. 이제 '새로운 가족'은 핀란드에서 핵가족과 한부모 가족 다음으로 가장 흔한 가족 형태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가족을 부르는 명칭이 바뀌자 그 안의 가족 구성원을 부르는 언어들도 아름답게 변했다. 핀란드에서는 전통적으로 새엄마를 '반(半) 엄마'라는 뜻의 '아이띠뿌올리(Äitipuoli)'로 불러왔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보다 훨씬 따뜻한 '보너스 엄마(Bonusäiti)' 혹은 '보너스 부모(Bonusvanhempi)'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부족한 부분을 강조하는 '절반'이 아니라, 축복처럼 더해진 '보너스' 같은 존재라는 의미다. 마틸다가 가족 그림 속에 나를 기꺼이 끼워준 것도, 자신을 아껴주는 '보너스 엄마'처럼 나에 대해서 느꼈기 때문일까? (그랬었기를 바란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마틸다 부모의 재혼과 직접 연결된 직계가족은 아니기에 ’새로운 가족’에도 포함되지 않고, 또 공식적으로 ’보너스 엄마’가 될 자격도 없다. 하지만 이런 가족법을 모르는 마틸다는 나를 자신의 가족으로 포함시켜 주었다. 이제 현대의 가족은 더 이상 형태를 기준으로 정상가족, 비정상가족으로 나눌 수 없다. 그보다 '사랑과 책임'으로 엮여 있다면 우리는 이미 ‘새로운’ 가족이다.


* 이 글은 2023년에 써 둔 글로, 마틸다는 4학년이 되었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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