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두 번 살게 해주는 글쓰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데카르트는 남겼다. 브런치에 입문한 지 1주일 된 나는 글쓰기가 마치 내 존재를 확인해 주는 듯,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막 하고 싶어졌다.
미국의 시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두 번 사는 방법이다"라고 얘기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첫 번째 삶이 사건을 겪고 반응하는 '물리적인 체험'의 시간이라면, 두 번째 삶은 그 일을 글로 쓰며 다시 만나는 '재발견'의 시간이다. 정신없이 지나갈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공기, 냄새, 마음의 떨림을 복기하다 보면, "아, 그때 내가 그랬구나" 혹은 "그 풍경이 이렇게나 아름다웠구나"라며 그 순간을 온전히 다시 누리게 된다. 어쩌면 이 두 번째의 삶이 첫 번째보다 더 깊고 풍요로울지도 모른다. 글로 쓰여지지 않는 과거는 그저 '사라진 것'일지 모르지만, 글로 다시 꺼내면 '생생한 현재'가 될 수 있다.
일주일 동안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방도 기웃거렸다. 한국에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이 많다니.. 하며 내심 놀랐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며 우리나라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 민족이 글쓰기도 노래만큼 뛰어난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필력이라는 게 단기간에 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골방에서 그들의 문장과 1대 1로 씨름하고 때로는 놀기도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1주일 차 이렇게 주변을 둘러본 내 모습은 그만큼 겸손해졌다. 이런 깨달음만으로도 브런치에서 보낸 1주일은 의미가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내 안에 두 가지 글쓰기 동기가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글'과 '사람들이 좋아할 방향을 의식하며 쓰는 글'이다. 요식업에 종사할 때 ”네가 팔고 싶은 음식보다 사람들이 사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마도 내가 요식업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사람들의 취향을 생각하기보다 내 주관적 음식에 집착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브런치에서도 (마침 이 포털 이름도 음식과 관련된 이름!) 이런 조언에 맞춰 글을 쓰는 게 맞을 듯싶지만, 글과 음식은 엄연히 다르다.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글은 훨씬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작업이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쓰기는 기교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는 정직함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나도 믿는다.
결국, 주변을 너무 두리번거리기보다는 내 좁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게 맞는 해법 같다. 다만 김 훈 작가의 글쓰기 원칙인 ”글이 수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은 기억하려 한다. 수다는 듣는 사람보다는 말하는 사람에게 더 득이 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다는 ’ 말한다’고 하지 않고, ’ 떤다’는 좀 더 낮은 급의 동사를 쓸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쓴다고 쓰는 글이 수다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이 두 번 살 수 있으면서 남의 시간도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