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outside!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

걸어 나가는 순간, 삶은 다시 시작된다

by 어나미


내가 들은 인생 최고의 조언은 짧은 두 단어의 영어였다.

"Go outside (밖으로 나가세요)"


시간은 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동의 한 고등학생이 세계에서 유명 인사들에게 직접 받은 인생 조언을 모아 두 권의 책을 냈다. 바로 《세상의 모든 아침은 깨어 있다》와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시작된다》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이여서, 그는 직접 발품을 팔아 도서관의 인명사전, 출판사, 잡지 편집부, 대사관 등을 다니며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그리고 정성 어린 손 편지를 국제우편으로 보냈다.


그 진심이 통했던 걸까.

놀랍게도 노벨상 수상자부터 종교 지도자, 예술가, 정치인까지—세계적인 명사들이 그 소년에게 (이메일 아닌) 직접 쓴 답장을 보내왔다.


스티븐 호킹은 "발밑을 보지 말고 별을 바라보라(Look up at the stars and not down at your feet)"고 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두려워하지 말라(Be not afraid)"고 했다. '스누피'로 유명한 만화가 찰스 슐츠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Do what you love)", '007' 시리즈의 배우 로저 무어는 "삶의 유머러스한 면을 잊지 말라(Always try to see the funny side of life)"고 조언했다. 전설적인 복싱 선수 무함마드 알리는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라 의견일 뿐(Impossible is just an opinion)"이라며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켜주었다.


당시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 국력이 지금같지 않았던 시절, 동양 작은 나라의 한 고등학생이 보낸 편지에 세계적인 인물들이 답장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다. 그 수많은 조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이 단 두 단어였던 "Go outside!"였다. 아마 책에 실린 조언 중 가장 짧았을 이 말은, 처음 읽은 순간부터 내 젊은 가슴에 깊이 꽂혔고 여전히 그곳에 꽂혀있다.


이 책의 저자인 당찬 고등학생이었던 권기태 군은 이 여러 조언들 덕분에 잘 자라 듯하다. 성인이 된 후 그는 기자가 되었고, 지금은 전업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조언도 ”Go outside”였던 것 같다. 20년 뒤 그는 한 글에서 " 'Go outside' 덕분에 안동과 한국을 떠나 세계를 보았고, 결국 제 마음의 틀까지 깨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기자 시절 전쟁터나 험지를 취재할 때도 늘 이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에게 '밖으로 나가라'는 메시지는 "세상을 이해하려면 직접 그 공기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실천적 철학이었다. 소설가로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지금도 그의 문학은 이 조언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이 명사들의 답장을 회상하며 그는 성공에 대한 관점도 바뀌었다고 한다. 특히 "그 바쁜 명사들이 이름 모를 동양의 소년에게 시간을 내어 직접 펜을 든 마음"에 그는 주목했다. 진정한 성공이란 찬란한 명예보다, 이름 없는 소년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그들의 여유와 품격에 있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된 지금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그의 마음을 모두 움직였던 이 촌철살인의 말을 도대체 누가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 사람이 한 말만 기억했고 누가 한 말인지는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냥 넘겼던 것 같다. 찾아보니 영국의 탐험가는 베네딕트 앨런(Benedict Allen)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탐험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유명 TV 탐험가 베어 그릴스(Bear Grylls)가 등장하기 훨씬 전, 영국을 대표했던 탐험가다. 그는 험한 곳을 마다하지 않는 용감함뿐만 아니라 탐험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갖춘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탐험의 가장 큰 특징은 GPS나 위성 전화 같은 현대 기술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낯선 오지에서 첨단 장비에 의지하는 대신, 그 지역 원주민들과 함께 먹고 자며 그들의 지혜를 배워 생존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에게 진정한 탐험은 "환경이 나를 바꾸게 하는 것"이다.


예순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는 여전히 "밖으로 나가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올 6월에 출간될 그의 어린이 모험서 《내가 거의 죽을 뻔했던 아홉 번의 순간(The Nine Times I Nearly Died)》에는 자신의 탐험 인생 40년을 담고 있다. 아마존에서 길을 잃고, 북극에서 개썰매 팀과 헤어지고, 난파를 당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아홉 번의 실화를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들려줄 예정이라고 한다. 단순히 스릴감 넘치는 모험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한의 순간 속에서 배운 생존 기술과 동료애,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에 대한 조언이 담긴 책으로 벌서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여전히 이렇게 조언한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것 자체가 탐험의 시작이니, 거창한 오지가 아니더라도 당장 집 밖으로 나가보라"

"탐험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탐험(Everyday Adventure)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변하지 않아 참 다행이다.


그래서 나도 집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산보다운 산보에 나선 것 같다. 그렇게 집 근처 호숫가까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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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은 내게 유독 '따뜻'했다. 좋은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집 안에서만 지내느라 추위를 느낄 새가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곰이었다면 겨울잠을 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몇십 년 만에 가장 긴 동면의 시간을 보냈다. 올 겨울이 유독 추웠던 탓도 있지만, 차도 고장 났고 작년 말에 하던 일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굳이 나갈 필요가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었다. 아예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 번 마트에 가는 것 외에는 거의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다.


그러다 불현듯 "Go outside!"가 내 마음을 다시 두드렸다. 마침 핀란드의 날씨도 오늘부터 영하권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예보가 떴다. 실내 홈트로 나름의 '겨울 전지훈련'을 하며 사지는 움직여왔지만, 밖에서 걷는 행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구겨져 있던 마음이 걸음마다 살살 다림질되는 기분. 어디 숨어 있었는지 아이디어들도 새싹처럼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듯했다. 원래 나는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의 8할은 이렇게 걸으며 얻곤 했었다. '풋스토밍(Foot-storming)'이 내게는 곧 ’브레인스토밍’이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집 근처의 작은 호수 '갈트라스크(Gallträsk)'에 다녀왔다. 이 호수는 내게 정말 특별하다. 작년에 뜬금없이 아이들에게 "엄마가 죽으면 이 호수에 뿌려달라"고 말했을 정도로 많은 의미를 지닌 장소다. 지난 10년간 내가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호수는 지켜봤다.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수면이 조금씩 풀리는 듯 했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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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호수 사진은 다 우리 집 근처 갈트라스크 호수 사진입니다. 우리 비글은 몇 년 전 무지개다리 건너서 하늘나라에 가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최고의 인생 조언을 댓글로 저에게 공유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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