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식 의리: 과연 누구까지가 '친구'인가?
최근 유럽을 충격에 빠뜨린 비정한 등반 사고 소식을 접했다. 프랑스 국적의 한 젊은 남성이 여자친구와 함께 험준한 산을 오르다 몰아치는 추위와 저체온증으로 여자친구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녀를 차가운 눈 속에 홀로 남겨둔 채 혼자 산을 내려왔다.
구조 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고, 혼자 살아남은 남자는 프랑스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방치한 죄'로, 수사 결과에 따라 최대 살인 혐의까지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연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대로 방치하는 선택을 했다.
이 사람의 행동은 ’사랑’의 유무로 설명되기 보다는 '위기에 처한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와 관련된 ’의리’의 문제로 더 잘 설명이 될 것 같다.
만약 그 남자가 핀란드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프랑스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핀란드 문화에서는 ’위기에 처한 사람을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의리가 관계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Kaveria ei jätetä(카베리아 에이 야테태)." 직역하자면 ‘친구를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핀란드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국민 표어’다.
우리 문화도 '의리'를 매우 중시한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택시 기사들이 생업을 잠시 뒤로하고 자발적으로 차를 세워 2차 사고를 막고 구조를 돕는'길 위에서의 의리'가 먼저 떠오른다.몇 년 전, 배우 김보성 씨가 외치던 "의리, 의리!"가 전 국민의 유행어였던 적도 있었다. 이웃 나라 중국의 의리 또한 ”친구를 위해서라면 양쪽 옆구리에 칼을 꽂는다(웨이펑요 량레이차다오, 爲朋友 兩肋插刀)”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강렬하고 뜨겁다.
이러한 동양의 뜨거운 의리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 핀란드의 '카베리아 에이 야테타'다. 이 말이 처음 탄생한 장소는 피튀기는 처절한 전쟁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군은 소련과 병력에서 한참 밀리는 전쟁을 치르면서도 전우가 부상을 당하거나 전사 했을 때 그들을 그대로 전선에 버려두지 않았다. 후퇴도 어깨에 메고 함께했다. 덕분에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 전사자 중 행방불명자(MIA) 비율이 참전국 중 가장 낮다. 또, 끝까지 시신을 수습해 온 그들의 집요한 의리 덕분에, 핀란드에는 ’무명용사’의 묘도 거의 없다.
핀란드인들은 이렇게 서로를 져버리지 않는 의리를 '겨울전쟁의 정신(핀어:Talvisodan henki)'이라 부른다. 스탈린이 ’겨울 전쟁’을 시작하며 했던 큰 오판 중 하나가 바로 이 핀란드인들의 끈끈한 의리였다. 그는 핀란드인들이 과거에 내전(1918년)을 겪으며 서로 미워하고 분열되어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핀란드인들은 나라를 위해서 적백의 이념을 초월하고 서로를 지켜냈다.
이 핀란드 군인의 ’카베리아 에이 야테타’의 의리는 핀란드 교육에도 적용됐다. 영재교육보다 공부 못하는 열등생 교육에 더 신경을 많이쓰고 교육 예산을 쓰는 것도 ’단 한 명도 뒤에 남겨두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겨울전쟁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보통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그들의 '카베리(Kaveri, 친구)'가 되면 충성심은 거의 절대적이다. 자주 연락하지 않더라도, 친구가 위기 상황에 빠지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 핀란드식 우정이다.
그러니까 핀란드에서 친구는 거의 ’전우’에 가깝다. 내가 부상당하고 심지어 죽더라도 나를 들쳐업고 끝까지 전장을 빠져나갈 사람이 바로 내 친구다. 핀란드 사람들에게 "친구가 몇 명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1~2명이라 답하거나 한 명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들에게 친구란 그만큼 무게감있는 단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나는 핀란드의 이 아름다운 단어인 ’Kaveri 카베리(뜻:친구)’에 대해 조금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핀란드 사람들이 말하는 지켜주고 싶은 ‘친구’의 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나도 포함될까?
최근 핀란드 우파 정부의 행보를 보면 그들이 챙겨야하는 ’친구’의 경계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현재 EU 내 가장 높은 실업률의 원인을 일자리를 못 찾는 이민자 탓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 이민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시민권자라도 추방해버리는 기사는 특종으로 보도된다. 최근 이민자들에게 꼭 필요한 핀란드어 교육 프로그램 지원 예산도 대폭적으로 삭감했다. 핀란드 정부가 실업률이 이방인 탓이라면서, 정작 그들이 사회에 적응할 교육 프로그램 예산을 깎아버린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의 모순적인 행보라며 비난하고 있다.
원래 핀란드에서는 영주권자와 시민권자가 받는 혜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핀란드 국적자와 영주권자가 누리는 혜택에 차별을 두는 ’복지의 이원화’ 정책이나 그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도 이민자들이 주로 혜택의 대상인 '노동시장 보조금'이 삭감되었는데, 핀란드 국적자들에게는 다른 형태의 혜택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원래 북유럽 복지 국가의 핵심 이념은 보편적 복지(Universal Welfare)다. 너와 나를 편가르지 않고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것이 북유럽 복지의 궁극적 목적이다. 그러나 지금 양상은 ’친구’와 ’남’으로 갈라치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 이민자는 더 이상 ‘함께 가야 할 친구’가 아니라, ‘언제든 뒤에 버려둘 수 있는 짐’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일까? 어느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할 '보편적 의리'가 ’선별적 의리’로 변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아는 한, 선별적 의리에 가장 능한 그룹은 조폭들이다. 그들의 의리의 대상은 ‘우리 패거리’로만 한정된다. 그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수틀리면 언제든지 해칠 수 있는 대상이다. 이렇듯 의리가 특정 집단 안에서만 작동할 때, 그 의리는 '배타성'과 '잠재적 폭력성'이 교묘히 숨겨진 '악'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약간은 우울한 이야기의 마지막에 나는 핀란드 헬싱키의 한 멋진 장소를 소개하고 싶다. 그곳에서는 ‘보편적 의리’가 여전히 통하며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바로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서관으로 떠오른 헬싱키시립 오디(Oodi)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은 문턱을 엄청나게 낮췄다는 것이다.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거의 모든 서비스(음반녹음실, 영상편집기, 재봉틀, 스터디룸, 3D 프린더, 포스터 인쇄프린터, 악기 대여 등)를 무료 혹은 재료비만 받고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관광객조차 이메일 하나로 시설 예약이 가능하다. 이 공간 안에는 모두가 평등하고 보호받는 ‘카베리Kaveri(뜻:친구)’다.
핀란드가 오디 도서관이 보여주는 그 넓은 품으로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전쟁터에서 전우를 메고 오던 그들의 뜨거운 심장은 전우가 어떤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