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 하나로 전과자?
핀란드의 무서운 셀프 계산대

실수도 관용 없이 처벌하는 엄중한 핀란드 법

by 어나미


며칠 전 핀란드에서 비닐봉지 하나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혔었다. 9세 아이가 마트 셀프 계산대에서 실수로 비닐봉지를 결제하지 않았는데, 마트 보안 요원이 이를 '절도 혐의'로 간주해 경찰까지 호출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곧장 핀란드 주요 미디어의 사회면을 장식했다.


게다가 보안 요원은 아이가 부모에게 전화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경찰이 오기까지 1시간 동안 아이를 마트 뒷방에 격리했기까지 했다고 한다. 다행히 출동한 경찰은 추가 형사 조치를 취하지 않고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부모는 경찰이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상황을 알게 되었고, “아이를 흉악범처럼 다뤘다”며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핀란드 법에서는 만 15세 미만은 형사 책임 연령이 아니기에, 보호자 연락 없이 아이를 구금한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이 사회 곳곳에서 쏟아졌다.


핀란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뜨거웠다.

"봉지 하나 때문에 경찰을 부르다니, 경찰 출동 비용이 훨씬 비싸겠다. 우리 세금이 이런 데 쓰이는 건가?",

"아이는 평생 마트에 갈 때마다 심장이 뛸 것이다. 그 마트는 돈 몇 푼 아끼려다 미래의 고객을 잃었다."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이제는 영수증을 열 번씩 확인한다. 이게 쇼핑인가, 시험 치는 거지"라며 셀프 계산대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단순한 해프닝은 아니다. 최근 핀란드 마트들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셀프 계산대를 대폭 늘렸지만, 동시에 검열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의도 없는 실수’가 곧바로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문제는 비닐봉지보다 9세밖에 안 된 아이를 제대로 된 절차를 지키지 않고 사실상 구금 상태로 두며 경찰까지 부른 점이다.


그 아이가 만약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15세 이상이었다면 결과는 더 참혹했을지 모른다. 이 비닐봉지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사회면에 올랐던 60대 여성이 있다. 그녀는 약 150유로어치(한화 약 21만 원)의 장을 본 후, 실수로 3유로(한화 약 4,200원)짜리 치즈 한 덩어리를 스캔하지 않았다. 보안 요원에게 적발된 후 실수였다며 즉시 결제하겠다고 했지만, 마트 측은 '무관용 원칙'을 들이대며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수입에 비례해 부과되는 핀란드 특유의 '소득 연동형 벌금제'에 따라 수백 유로(한화 약 100만 원 상당)의 벌금을 물었을 뿐만 아니라, 전과 기록까지 남게 되었다. 그녀는 "비싼 물건을 다 결제했는데 고작 3유로를 아끼려 했겠느냐"고 항변했지만 법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 남성은 유기농 토마토를 일반 토마토로 번호를 잘못 입력해 결제했다가 현장에서 '가격 사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적도 있다. 이 밖에도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사례들이 SNS에서 터져 나오고 있고, 핀란드 소비자 연맹에도 관련 민원이 답지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의 셀프 계산대는 이제 ‘잘못 밟으면 터지는 지뢰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핀란드 법은 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핀란드 형법상 절도는 크게 세 가지(중절도, 일반 절도, 경절도)로 나뉘는데, 경절도는 ‘고의성’보다 ‘행위의 결과’에 훨씬 더 무게를 둔다. 법의 공평한 집행을 위해 '의도'라는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고 결과로만 판단하겠다는 냉정한 원칙주의가 그 뒤에 깔려 있다. 심지어 이러한 경범죄 기록도 핀란드 시민권을 신청이나 영주권 갱신 시에 '사회적 적격성' 결격으로 거부 사유가 될 수도 있어 이민자들에게는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장소는 마트가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초코파이 사건'이다. 용역 경비원이 초코파이와 카스타드 한 개씩을 먹었다는 이유로 절도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건이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동료들의 증언을 들은 재판부는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명확한 고의성이 있어야 한다'는 법의 원칙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로 한국 절도법은 피고인의 의도를 판결을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본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실수라고 주장해도 처벌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한국 법원은 CCTV 정황이나 평소 행실 등을 통해 '실수였음'이 증명되면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 중에서도 핀란드 절도법은 의도 중심성 아닌 결과 중심성이 강해 훨씬 더 냉엄한 편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핀란드에 살며 자주 되뇌었던 우리나라의 속담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고기가 살기 어렵다"가 다시 떠올랐다. 공정성, 평등, 정직이라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핀란드식 원칙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게 버거울 때가 있다. 물론 이러한 철저한 원칙주의가 핀란드를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공정한 나라로 만든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예외를 두지 않는 원칙이 언제나 최선의 정의일까? 나에게 여전히 큰 물음표를 남긴다.


반면 한국의 절도법은 실수한 피의자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주는 듯하다. 우리가 '정(情)’이라 부르는 따뜻한 인간적 온기가 법문 사이에서도 느껴진다면 지나친 '국뽕'일까? 한국인과 정은 떼어놓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정 때문에 울고 정 때문에 웃으며, 때로는 정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그놈의 ’정’이라고까지 부른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매료되는 이유로 드라마나 K-팝 외에도 '한국 사람의 정'을 꼽기도 한다. K-드라마, K-팝, K-뷰티에 이어 이제는 K-정까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만약 초코파이 사건이 핀란드에서 터졌다면 유죄판결을 받았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한국의 초코파이의 겉표지에도 신기하게 情(정)이라는 한자가 크게 쓰여 있다.


앞으로는 핀란드 마트에서 셀프 계산대를 쉽게 이용하지 못할 듯하다. 무시무시한 기사를 읽고 나서 '아는 게 병'이 된 경우다. 실수가 범죄행위로 쉽게 해석될 수 있는 사회에서는 한 번 실수가 병가지상사(失手兵家之常事)가 아닐 수 있다.


핀란드법이 예외 없는 공정한 원칙을 적용시키려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도 생각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비닐봉지 하나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 9세 아이에게, 이제 마트는 즐거운 간식을 사는 곳이 아니라 차가운 뒷방과 경찰차가 떠오르는 트라우마의 공간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 아이가 잃어버린 동심과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신뢰는, 그 어떤 '공정한' 원칙도 되돌려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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