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옥상 위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이 침묵을 깨고 직접 음성으로 부르시는 순간들

by 어나미

오늘 아침 유튜브에서 고(故) 앙드레김의 아들, 김중도 님의 간증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부친을 따라 원래 불교 신자였던 그는 2년 전, 사업의 위기와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집 옥상에서 생의 벼랑 끝에 서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내게 오거라.” “내게 오거라.” “내게 오거라.” 이렇게 세 번이나 명확한 물리적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 부르심은 죽음으로 내딛던 그의 발걸음을 생명의 길로 극적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마음속에 주시는 내적 음성은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물리적 음성을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순간에 이렇게 분명한 ’음성’로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일까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생명의 브레이크로 임하시는 하나님

서사라 목사님(64세)도 간증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의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이력 뒤에는 결혼 생활의 갈등, 남편과의 불화, 어린 자녀를 홀로 키우는 외로움이 겹쳐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서른네 살이 되던 해, 삶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약을 먹으려던 바로 그 순간,

“너는 내 딸이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방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녀는 회심하게 되었고, 안정된 의사의 길을 내려놓고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자신이 경험했던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간증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도 선교의 상징이자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선다 싱(Sadhu Sundar Singh, 1889~1929)의 회심도 극적입니다. 독실한 시크교도였던 그는 기독교를 '외세의 종교'라며 증오해 성경을 불태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크교에 의지한 종교적 정진에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자, 급기야 "진정한 신이 나타나지 않으면 새벽 기차에 몸을 던지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방 안에서 죽음의 기차를 기다리며 마지막 기도를 올리던 새벽, 방 안을 가득 채운 빛과 함께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보라, 나는 너를 위해 죽었노라.”


그는 그 자리에서 곧장 거꾸러져 회심했고, 그 후 평생 황토색 가사만 입고 인도의 고산지대와 티베트를 누비는 ‘맨발의 전도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완고한 자아를 깨뜨리는 강한 목소리의 초대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고집과 완고함이 너무 단단해 부드러운 마음속 음성을 듣지 못할 때, 더 강한 방식으로 부르십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은 젊은 시절 쾌락과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수십년 동안 이런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입니다.


지적 교만이 상당했던 그는 머리로 진리를 알면서도 육신의 정욕을 끊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비참한 모순때문에 어느 날 정원에 있는 무화과나무 아래서 엎드려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담장 너머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소리가 두 번 반복되어 들렸습니다.

“들고 읽어라(Tolle, Lege)!” “들고 읽어라(Tolle, Lege)!”


그는 즉시 성경을 펼쳤고, 곧 눈에 들어온 구절이 로마서 13장 13–14절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장 13-14절)


그는 이 순간의 체험을 그의 저서 《고백록》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확신의 빛이 내 마음속에 쏟아져 들어왔고, 흑암의 모든 의심은 사라져 버렸다.

그날 이후부터 그는 어두운 과거를 떨쳐내고,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유명 축구선수 이영표 역시 회심 전에는 기독교인들을 무시하고 "신이 있다면 증명해 보라"고 말할 만큼 완고한 무신론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방 안에서 또렷하게 자신의 이름을 세 번이나 부르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영표야” “영표야” “영표야”


처음엔 환청이라 생각하며 거부하려 했으나, 그 명확한 부르심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이후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자신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겸손하고 모범적인 스포츠인이자 전도자로서 살고 있습니다.


성경 속의 '부르심의 소리'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은 성경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어린 사무엘은 잠결에 자신을 세번이나 부르던 하나님의 음성을 엘리 제사장의 소리로 착각하고 그 앞으로 매번 달려와 자신을 불렀는지 묻습니다.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3:8)

하나님은 반복해서 그를 직접적 음성으로 부르심은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과 관련된 가장 극적인 사례는 사도 바울의 회심일 것입니다. 철저한 바리새인으로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강력한 빛 속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도행전 9:4-5)

동행하던 사람들도 소리를 들었으니, 이는 확실한 물리적 음성이었습니다. 이 부르심으로 유대교의 신봉자였던 사울은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이 되어,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는 열심의 사도가 됩니다.


사랑하기에 음성을 직접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직접 소리를 내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순간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그 직접적 소리가 아니라면 우리가 절대로 깨닫지 못할 만큼 영적인 귀가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김중도 님이 들었던 “내게 오거라”라는 주님의 음성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부르심일지도 모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매거진의 이전글세계 최대 단일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여준 ‘상처의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