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북극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빛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관용구가 '상처뿐인 영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피로스 왕이 승리 직후 처참히 쓰러진 아군을 보며 “이런 승리가 한 번 더 있다면 우리는 망한다”고 탄식한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적 세계관에서 이 말은 ’ 영광 뿐인 상처’로 180도 뒤집힐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광스러운 상처의 기원은 구약 시대의 할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며 그 언약을 잊지 않도록 몸에 흔적을 남기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 17:11)
인간의 생명력과 힘을 상징하는 부위에 스스로 상처를 내는 행위는 “나의 미래는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고백을 몸에 새기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인간이 드리는 ‘자발적 상처’뿐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새기시는 상처도 보여줍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야곱의 얍복강 사건입니다. 형 에서와의 만남으로 극도의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은 먼저 씨름을 거십니다. 그동안 거짓으로 살아온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밤새 이어진 씨름 끝에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고, 그는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야 하는 큰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상처 입어 가장 약해진 순간에도 야곱은 하나님을 놓지 않습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세기 32:26)라고 필사적으로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옷자락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세기 32:28)
어떻게 일개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야곱의 손을 들어주신 것은 그가 힘의 우위를 점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힘이 꺾인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절박하고 끈질기게 간구하는 그 태도 자체를 하나님은 '승리'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이때부터 새 이름도 얻습니다. 더 이상 “속이는 자”라는 뜻의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갖게 됩니다.
성경의 모든 상처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상처에서 완성됩니다. 어떤 비신자가 저에게 왜 기독교는 고통의 상징인 십자가를 교회 지붕 위에 세워놓는지 모르겠다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 가득한 상처의 표시며 그가 어떻게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며 얻은 박해의 상처를 ‘예수의 흔적(Stigma)’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그 상처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께 속한 자임을 드러내는 가장 명예로운 표식으로 여겼습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 6:17)
교회사를 봐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t. Francesco d'Assisi, 1181~1226)와 성 피오 신부(St. Pio of Pietrelcina, 1887~1968) 같은 이들은 기도 중에 예수님의 상처가 몸에 나타나는 '성흔(Stigmata)'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도 이 신비로운 상처를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일치를 뜻하는 가장 고귀한 선물로 여겼습니다.
노르웨이 트롬쇠의 북극교회(Arctic Cathedral)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스테인드글라스인 <그리스도의 재림(The Return of Christ)>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작가 빅토르 스파레(Victor Sparre)는 처음에 예수님의 손의 못 자국을 강조할 계획이 없었다고 합니다. 오직 부활의 영광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 부분의 유리는 가마에서 구워낼 때마다 정확히 못이 박힌 자리처럼 갈라져 깨졌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영광만을 표현하고 싶어 상처를 지우려 했으나, 유리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듯 깨져 나갔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상처를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유리가 먼저 알고 있었다." (작가의 일기 중)
신기하게도 제가 북극교회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도 못에 박힌 예수님의 손바닥이었습니다. 못 자국과 창 자국은 지워야 할 흔적이 아니라, 구원의 빛이 흘러나오는 원천이었습니다.
우리의 상처가 아무리 크더라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옷자락을 끝까지 놓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자로 선언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상처는 우리를 평생 PTSD로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아닌 '영광 뿐인 상처' 혹은 '하나님의 흔적'으로 바꿔주십니다.
하나님, 우리 마음에 난 못 자국과 창 자국이 은혜의 찬란한 빛이 스며드는 통로로 변하게 해 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