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나아져도 왜 여전히 힘든지 — 핀란드 신경과학자가 찾은 답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가라앉는 병이 아니다.
알토대학교 신경과학 교수 마티아스 팔바(Matias Palva)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상당수는 집중력·작업 기억·실행 기능 같은 인지 기능도 실질적으로 저하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문제는 진단도, 치료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팔바 교수는 우울증 상태에서 뇌의 세 가지 시스템이 균형을 잃는다고 설명한다. 주의력과 지적 기능을 담당하는 인지 시스템, 감정 경험을 조절하는 정서 시스템,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같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자아 성찰 시스템이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정서 시스템이 과부하 상태가 되어 중립적인 상황이나 기억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자아 성찰 시스템도 감정에 장악되고,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반추(rumination)가 나타난다. 동시에 인지 시스템도 약화돼, 집 청소나 양치질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우울증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노동 불능의 원인인데, 팔바 교수는 이것이 상당 부분이 인지 기능 저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현재 우울증의 주된 치료법은 항우울제와 심리치료다. 항우울제는 환자의 약 50%, 심리치료는 약 40% 정도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팔바 교수는 이 두 가지 치료법 모두 인지 기능 저하에는 효과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현재의 모든 치료법은 기분을 상승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인지 시스템 강화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기분이 좀 나아져도 인지적 문제는 계속 지속되는 환자가 많다."고 설명한다.
팔바 교수가 현재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멜리오라(Meliora)'라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버려진 '리조트 행성'을 배경으로 3D 세계를 탐험하며 치료사 캐릭터 '에이미(Amy)'와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이 게임의 내용이다.
팔바 교수는 뇌를 훈련시키는 원리가 피아노나 테니스를 훈련하는 원리와 같며,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연습이 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종이와 펜으로 하는 인지 재활 훈련도 원리는 같을 수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무엇보다 지루해서 원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게임은 플레이어의 수준에 맞게 난이도를 자동으로 조정해, 항상 사용자에 맞는 적절한 수준에서 훈련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
그냥 기존의 재미있는 게임을 해도 같은 효과를 걷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1인칭 슈팅 게임이 주의력 향상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팔바 교수는 그 효과가 생각보다 너무 미미하다고 설명한다. 기타를 잘 친다고 바이올린 실력이 느는 건 아닌 것처럼, 특정 게임에서 쌓은 기술도 전반적인 인지 향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이에 비해 그가 게임은 우울증 환자에게 특히 부족한 집중력, 주의력, 작업 기억을 폭넓게 훈련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심리치료 요소까지도 함께 담겨 있다.
디지털 치료제의 고질적인 문제는 낮은 순응도다. 처방받은 디지털 치료 앱을 제대로 사용하는 환자는 10~20%에 불과하고, 절반은 앱 자체를 다운로드하지 않는다. 멜리오라 초기 버전 연구에서는 약 34%의 참가자가 지침대로 게임을 이용했다. 기존 디지털 치료보다 눈에 띄게 높은 수치다.
팔바 교수는 우울증 환자 중 여성이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1인칭 슈팅 게임 형식이 모든 환자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인정한다. 향후에는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해 환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멜리오라의 상업 버전은 이르면 2027년 초 출시될 예정이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치료 효과까지 갖춘 게임을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팔바 교수는 그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Helsingin Sanomat (hs.fi), 2026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