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도 ‘더치페이’ 문화가 많이 일반화된 듯하다. 우리는 ‘더치페이’라는 기존의 단어 대신 수학 공식을 가미한 재미난 ’1/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쓰고 있다. 중국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AA제’라 불리는 더치페이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개별 지불 문화가 한국과 중국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자리 잡은 신문화지만,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사실 ‘더치페이(Dutch pay)’는 잘못된 콩글리시 표현이다. 정확한 영어 표현은 ‘Dutch treat’다. 17세기에 영국 사람들은 자신들과 해상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네덜란드를 조롱하기 위해 “Dutch treat = no treat(대접 없음)”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퍼뜨렸다고 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손님에게 식사나 술을 대접하는 것이 신사의 미덕이었는데, 자기 몫만 계산하는 네덜란드식 방식이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치페이의 원조국 네덜란드보다 더 ‘칼같이’ 1/N을 실천하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핀란드다. 북유럽 국가 중에서도 핀란드의 개별 지불 문화는 가장 원칙적이며 정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 헬싱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려보자. 식사 후 이들이 각자의 음식, 음료, 심지어 빵 부스러기까지도 센트 단위로 계산하고 있을 확률이 99퍼센트일 것이다. 친구 사이든 가족이든, 심지어 첫 데이트를 하는 커플도 핀란드에서는 다르지 않다. 자신의 몫을 정확히 계산해 지불하는 것이 핀란드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다.
한 번은 한국에서 온 방문객과 함께 식당에 갔다가, 이분이 ’못 볼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엄마와 성인 딸이 식사 후 각자 계산하고 나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분은 컬처 쇼크 감전돼 소스라치게 놀란 듯 보였다. 이 이야기를 핀란드를 떠날 때까지 고개를 저으며 몇 번이나 되뇌곤 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면 없던 정도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핀란드 사람 중에는 이런 1/N 지불 방식을 '배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고, 독립적으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오래 가게 한다고 이들은 믿는다.
물론 정확한 개별 지불 방식이 가진 장점도 있다. 식사 자리가 더 공정하고 편안해지며, 누가 내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 묘한 안도감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나칠 정도로 정확한 핀란드식 개별 지불 방식을 옆에서 지켜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왠지 시려올 때가 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우리나라의 속담도 같이 떠오른다. 이렇게 무 자르듯 자르는 지불 방식은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치 '싹둑' 자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사실 많다. 이런 1/N 방식을 어릴 때 조기교육을 받지 못해서 여전히 적응을 못하는 것일까?
핀란드에서 한국 교민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도 빠지지 않는 주제가 바로 이 핀란드식 1/N 문화다. 이 주제가 등장하면 '토크박스'처럼 앞다투어 누가 더 황당한 경험을 했는지 공유한다. 그중 최악의 이야기는 바로 ‘크리스마스 햄 사건’이었다. 한 교민분이 시누이 집에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시누이가 남은 햄을 싸가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놀랍게도 저울이다. 그 시누이는 햄 1kg당 자신이 산 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분은 가까운 친척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그런 가격 흥정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집으로 귀환 후, 시누이 때문에 설왕설래하며 부부는 밤새워 다투며 최악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고 한다.
각 사회마다 다른 계산 방식은 단순히 돈을 나누는 문제를 넘어, 그 사회의 문화적 언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새로운 문화적 언어도 언어여서 그런지 외국어처럼 쉽게 체득되지 않는다는 거다. 핀란드에 온 지 강산이 몇 번 지났지만 나는 쥐뿔도 없으면서 여전히 외친다.
"오늘 내가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