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눈물 젖은 빵'을 만들며 인생을 배우다

당신은 혹시 눈물 젖은 빵을 만들어본 적이 있나요?

by 어나미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슬픈 밤을 침상에서 울며 지새운 적이 없는 자, 그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니, 하늘의 권능이시여.”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


’눈물 젖은 빵’은 괴테의 소설에 나오는 유명한 관용구다. 서양에서 빵은 자고로 우리의 밥처럼 생명을 유지하는 절대적인 기본템이다. 그래서 ‘눈물 젖은 빵을 먹는다'는 것은 생명이 위협될 정도로 극한적 상황에 몰린 것을 상징한다. 그런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제 눈물 젖은 빵을 ‘만드는’ 슬픔까지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제빵공장에서 반복된 산재로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한 산재 노동자의 장례식장에 그 회사의 ‘빵 두 박스’가 배달되어 사망자를 두 번 죽이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빵은 인류 역사에서 평등과 존엄을 상징하기도 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굶주린 민중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빵이 아니면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이후 혁명 정부는 귀족의 흰 빵과 서민의 검은 빵이라는 신분적 경계를 허물며 ‘빵 평등권(Le Pain d’Égalité)’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지금, 과연 우리가 마주하는 빵은 평등해졌는가.


핀란드에서도 빵은 내 개인적 경험으로는 불평등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핀란드에서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창업의 실패를 겪은 뒤, 공항 레스토랑 체인점의 ‘센트럴 키친’에 취직한 적이 있다. 그곳은 주방이라기보다 거대한 빵 조립 공장이었다. 공항 카페로 납품될 수천 개의 샌드위치를 정해진 시간 내에 찍어내듯 바쁘게 만들어 내야 했다. 지체되는 시간은 관리자들에게 ‘비용’이었기에 속도전이 암묵적으로 요구됐다.


그곳은 내가 알고 있던 핀란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차갑고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현장 일꾼들은 대부분 나 같은 이민자였고, 그들을 통제하는 관리자들은 핀란드인이었다. 핀란드 노동법이 보장하는 30분의 점심시간과 두 번의 커피 브레이크는 먹이사슬의 가장 밑에 있는 우리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이민자들끼리 서로 감시하게 만드는 ‘dog eats dog’ 구조였다. 관리자들은 이를 방관하며 자신들은 핀란드 노동법이 보장하는 휴식을 다 찾아 누렸다.


결국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며 나를 고용했던 인력회사에 사정을 알렸다. 나는 그만두더라도 그곳의 작업 환경이 나아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말을 경청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 변화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핀란드 언론의 탐사보도에 등장한 어느 이민 노동자의 읍소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상사는 내가 든 국자의 크기까지 트집을 잡았고, 벌칙이라며 냉동고에서 몇 시간씩 일하게 했습니다. 매일 근무가 끝나면 울었습니다.”


원래 핀란드 반타 헬싱키 공항은 나에게는 여행이 시작되는 설렘의 장소였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른 느낌이다. 지상의 여행객들이 여행의 단꿈에 젖어 있을 때, 그들의 발밑 지하에서는 그들이 먹을 빵을 만들며 눈물을 삼키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항 카페에서 빵도 잘 사 먹지 않게 됐다. 그 빵 속에는 밀가루와 버터 외에 휴식을 잃어버린 이들의 피로와 불안, 그리고 눈물의 짠맛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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