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의 가족이 꼭 알아야 할 '감정의 뇌과학'
치매가 깊어진 가족을 둔 사람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다. 그들의 아픔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 말 뒤에는 하나의 오해가 숨어 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기억은 잃어도 감정은 남는다. 뇌과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와 감정을 처리하는 부위는 서로 다르다. 이름, 날짜, 사건을 저장하는 것은 주로 해마(hippocampus)의 역할이다. 그에 반해, 두려움, 안도, 따뜻함 같은 감정의 반응을 처리하는 것은 편도체(amygdala)라는 뇌의 다른 기관이 맡는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대부분의 치매는 해마가 손상되며 시작된다. 그래서 아는 이름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더 진행되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편도체는 상대적으로 오래 기능을 유지한다. 그래서 감정의 자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 연구노트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저스틴 파인스타인(Justin Feinstein) 연구팀은 해마가 완전히 손상되어 새로운 기억을 전혀 형성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환자들에게 슬픈 영상을 보여준 뒤, 영상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도 슬픈 감정 상태는 상당 시간 지속됐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감정의 여운은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 "감정을 만든 원인은 잊혀도, 감정 그 자체는 남는다."
또한 치매 전문가들은 감정 기억(emotional memory)이 서술 기억보다 훨씬 오래, 훨씬 깊게 보존된다는 것을 임상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의 체온, 목소리의 톤, 특정 냄새 — 이런 것들이 몸 안에 새겨진 감정의 흔적으로 남는다.
치매 환자가 익숙한 얼굴이 방에 들어오면 표정이 달라지는 것, 손을 잡으면 긴장했던 어깨가 풀어지는 것, 눈을 맞추면 희미하게 웃는 것.
이것은 인지적 기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몸에는 감정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고, 또 실시간으로도 감정을 느낀다는 증거다.
갓 태어난 아기를 생각해 보자. 아기는 엄마의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엄마 품에 안기면 울음을 멈춘다. 그 따뜻함이 안전하다는 것을, 설명 없이 안다.
치매도 삶의 끝자락에서 다시 아기와 비슷한 상태로 돌아가는 여정과 닮아 있다. 언어와 서사는 점차 사라지지만, 관계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남는다. 누가 나를 두렵게 했고, 누가 나를 편안하게 했는지 — 그 몸 안의 기록은 인지적 기억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치매 환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오늘 누군가 손을 잡아주었다면, 그 온기를 느낀다. 오늘 누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면, 안도감을 느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중에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감정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살아 있다.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도 사람은 남아 있다. 감각이 있고, 온기가 있고, 느낌이 있다. 우리가 그 옆에 앉아 손을 잡을 때, 그들은 무언가를 느낀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 설명하지 못할지라도.
핀란드의 한 신문에 실린 독자 편지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참고·
Kari Ylikylä, "Muistisairas voi muistaa läheisyyden, vaikka nimet unohtuisivat", Helsingin Sanomat / HS.fi (20.3.2026)
Feinstein et al., "The Human Amygdala and the Induction and Experience of Fear"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