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행복 1위인데 왜 청년들은 절망할까

청년들에게 의대 입학보다 어려운 마트 알바 구하기

by 어나미

핀란드는 왜 행복 1위인데 청년들은 절망할까

핀란드가 올해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에 올랐다는 소식과 거의 동시에, 결이 완전히 다른 한 암울한 핀란드 국내 뉴스가 흘러나왔다.


핀란드 청년(15~29세)들의 삶과 가치관을 담은 청년 바로미터(핀어:Nuorisobarometri)’보고서에서,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낙관적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이 조사시작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나온 것이다.


10년 전, 핀란드 청년 10명 중 8명은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믿음이 절반 가까이 무너졌다. 삶의 만족도 역시 가파르게 떨어져, 자신의 현재의 삶에 10점 만점에 9점 이상을 준 청년의 비율도 30%로 내려앉았다. 이 비율도 10년 전과 비교하면 반토막이 났다.


이렇게 청년들에게 암울한 미래와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삶을 가져다준 몇 가지 요인으로는 기후 위기, 러시아와의 긴장 속에서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국내외 평화, 그리고 불안정한 경제가 꼽히고 있다.


"의대 입학보다 어려운 마트 알바 구하기"

특히 불안정한 경제는 그들이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는 바다. 청년 실업률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정규 직장 외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별따기다. 핀란드 경제가 흔들리면서 여름 알바 공고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알바 지원자는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요즘은 평범한 마트 아르바이트 공고가 나면 한자리를 두고 몇 백 명이 경쟁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됐다.


알바 지원자가 이전보다 늘어난 까닭은 핀란드 정부가 청년들에게 보조하던 주거지원비와 학생지원금을 많이 줄였기 때문이다. 요즘 핀란드에서 청년들이 사이에서는 "마트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는 것이 의대 진학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 핀란드에서는 의대 합격률이 평균 5~10%인데, 요즘 수도권 대형마트의 알바 합격률은 불과 1~2%이기 때문이다.


많은 청년들은 이런 자신의 처지를 청년들이 많이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호소하고 있다.

50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험담은 흔하다.


또 다른 청년은 마트 면접에서 들은 말을 잊지 못한다고 써놓았다.

매니저가 제 이력서를 보지도 않고 우리 매장에 아는 사람이 있냐고 먼저 물었습니다. 핀란드는 투명한 나라라고 믿었는데, 이제는 ‘누구를 아느냐’가 ‘무엇을 할 줄 아느냐’보다 더 중요해졌습니다.

청년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이 공정한 사회라고 믿고 자라났던 핀란드에서 실력보다 연줄이 채용 결과를 좌우하기 시작한 현실에 더 큰 절망을 느낀 듯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계층을 넘나드는 것이 용이했던 핀란드의 ‘사회적 사다리’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천에서 용 나오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서울대 학생 부모님의 80퍼센트는 월수입이 1000만 원 이상이라는 기사도 최근 읽었었다.) 핀란드에서도 확실히 예전보다 이런 사회적 계층 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을 청년들은 먼저 몸으로 감지하고 있다.


'혼자 잘 버텨라' — 독립이 고립이 될 때

그런데 이런 일자리 문제보다 핀란드 청년을 더욱 큰 고통에 몰아넣는 것은 외로움과 소외일지 모른다. 2025년 핀란드 적십자사가 발표한 ‘외로움 바로미터’(핀어:Yksinäisyysbarometri)에 따르면, 16~24세 청년 중 66%가 한 달에 수차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전년도에 비해 약 20%나 수치가 치솟았다. 외로움을 국민병이라고 부를 정도로 외로움이 만연한 핀란드에서도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위험군이 바로 청년층이다.


청년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 층위다. 정신건강 문제, 낮은 소득, 관계에서의 부정적 경험, 소속감의 부재 등이 먼저 꼽힌다. 소속감의 부재에는 지역이나 학교 공동체, 친구 관계뿐 아니라 가족 소속감의 약화도 포함된다.


핀란드에서는 아이가 만 18세가 되면 독립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부터 나와 사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독립’은 자칫 ’고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부모들도 18세가 넘은 아이들의 사생활을 ’독립심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잘 터치하지 않고, 경제적인 지원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여기게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 핀란드 특유의 ‘혼자 버티는 것이 미덕(핀란드어로 sisu)이 되는 문화다. 그렇게 길들여진 아이들은 어려움을 남에게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려워하게 된다. 비록 가족이라 하더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고립을 더 악화시킨다.

친구들이 시내에서 만나자고 할 때마다 ‘피곤하다’고 거짓말합니다. 사실은 버스비가 아까워서예요. 가난하면 인간관계는 사치가 되고, 결국 방 안이 저의 가장 안전한 감옥이 됩니다.
주거 보조금이 깎인 후, 제 식비는 하루 2유로(한화 약 3,000원)가 되었습니다. 배고프면 잠도 안 오고, 잠이 안 오면 우울한 생각만 듭니다.


정신건강 치료 초진, 4개월까지 기다려

이런 우울감이 반복되면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우울증이 심해지면 정신건강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조차 쉽지 않다. 사립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1시간에 200~300유로(한화 약 30~45만 원)까지 내야 하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지역 보건소뿐이다. 그러나 지역 보건소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은 쉽지 않다.


한 청년의 이야기다

보건소에 전화해서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내일 제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더니 돌아온 대답은 ‘4개월 뒤에 시간이 나면 연락하겠다’였습니다. 4개월 뒤에 과연 제가 살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공의사는 많지 않고 환자는 그에 비해 너무 많기 때문에 초진을 받을 때까지 보통 3~4개월이나 걸리게 된다.


핀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또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핀란드 청년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뜨거웠다. 아니 차가웠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해외 뉴스에서 핀란드가 행복 1위라고 떠들 때마다 구역질이 납니다. 우리는 행복한 게 아니라, 그저 불평하지 않도록 길들여졌을 뿐이에요. 불평하면 ‘나약한 놈’ 취급받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지금 조용히 고독사하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상처가 될 뿐이다.


핀란드 사회도 요즘 이런 청년들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신문을 보면 관련 기사, 칼럼, 독자의 소리가 눈에 많이 뜨인다. 핀란드 정부의 청년 주거·학생 보조금 삭감에 대해 “근시안적 정책”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지금의 절약으로 10년, 20년 뒤에는 정신건강 악화, 장기 실업, 생산성 하락의 역폭풍을 맞을 것이며, 청년 한 명이 사회적으로 고립될 때 발생하는 장기적 비용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내가 믿었던 핀란드는 이제 없다...

우리 집에도 걱정스러운 아이(20대 초반과 중반) 둘이 있다. 딸아이는 외국에서 유학하며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머지 두 아이는 요즘 하루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낸다. 몇 년간 제빵사로 일하던 막내가 얼마 전 일이 끊기자 상심에 빠져, 빵 반죽 대신 매일 온라인 게임 컨트롤러을 쥐고 흔들고 있다.


헬싱키시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일했던 첫째는 보다 큰 꿈을 찾아 대학에 진학했지만 지난 가을 학기부터 휴학 중이다. 이전에 앓아온 우울증이 다시 도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 나라에서 태어나 초중고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난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앞으로도 그렇게 잘 살 줄 알았다. 이혼한 뒤에도 아이들을 한국에 데려가겠다는 생각을 안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내가 겪었던 입시 지옥, 무한 경쟁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는 걱정의 8할은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이다. 지구상에 물론 완벽한 행복을 보장하는 곳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느 나라보다 행복한 삶을 살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던 핀란드란 나라는 이제 나에게 슬프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이들이 한국 국적도 가지고 있어서 요즘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가끔씩 이런 제의를 하곤 한다.

너네 삶이 10년 후에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한국에 한번 나가서 살아볼래?

혹시 아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핀란드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할까봐 숨통을 조금 튀어주고싶어 이런 이야기를 꺼내보곤 한다.


막내는 빵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니 한국에는 많지 않은 정통 핀란드 호밀빵을 구워파는 제과점을 하나 열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두 아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여전히 나와 같은 지붕 아래 산다. 나도 핀란드 부모들과는 조금 다르게 지금까지 아이들의 삶을 내 삶보다 앞에 두고 살고 있다. 핀란드 부모가 보면 '과보호'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다만 '혼자 버텨라'는 말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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