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정예 암살 요원을 잡은 건 '구글 번역기'였다

러시아 최정예 암살 요원이 범한 결정적 디지털 실수

by 어나미

2026년 2월의 콜롬비아 보고타 엘도라도 국제공항, 이스탄불을 경유해 입국하는 한 러시아인 관광객 여권에는 '데니스 클리멘코프'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콜롬비아 이민국 직원들은 그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수갑을 채웠다. 인터폴 적색 수배령은 이미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진짜 이름은 데니스 알리모프, 42세. 러시아 FSB 엘리트 알파 특수부대 출신이자 러시아 최신 암살 부대의 핵심 요원이다. 그리고 그를 체포하게 만든 결정적 실수는, 놀랍게도 구글 번역기였다.


러시아 신(新)정예 부대 '센터 795'의 핵심 요원

러시아 군사정보국 GRU는 그동안 문제가 많았던 기존 암살 부대를 폐기하고 2022년 12월 새로운 극비 조직 '센터 795'를 창설했다. 이 부대의 주요 임무는 해외 반체제 인사 제거를 포함해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여러 공작들을 전담하는 것이다. 알리모프는 그 조직의 핵심 요원이었다.


'완벽한 계획'이 FBI에 실시간으로 노출

알리모프의 임무는 유럽에 거주하는 체첸 반체제 인사 두 명을 납치, 살해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더러운 일을 대신할 사람을 고용했다. 세르비아계 미국인 다르코 두로비치다. 알리모프는 그에게 선금 6만 달러(한화 약 8,100만 원)를 지급하고 납치 성공 시 1 인당 150만 달러(한화 약 20억 원)를 약속했다.


이들은 암호화된 메시지 앱을 통해 소통하고, 가명을 썼으며, 분리된 통신 채널을 사용하는 등, 센터 795의 교과서적인 보안 수칙을 다 지켰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알리모프는 러시아어만 했고, 두로비치는 러시아어를 몰랐다. 두 사람은 메시지 자체는 암호화된 앱으로 주고받았지만, 번역은 구글 번역기를 이용했다. 그 번역 데이터는 미국 기업의 서버를 거쳤고, FBI의 감청 영장 범위 안에 들어있었다. FBI는 살인 청부 계획의 상세 내용을 바로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었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결정적 실수들

정보기관의 역사에는 이런 아이러니한 실수들이 종종 등장한다.

CIA 국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내연 관계를 숨기기 위해 Gmail 초안함을 공유 편지함처럼 썼다가 스캔들로 사임했다. 발신이 없으면 추적도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디지털 흔적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은 몰랐었다.


이번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암호화 앱으로 통신 자체를 숨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번역 툴이 그들의 계획을 노출시켰다.


결국 체포된 러시아 최고의 스파이

청부업자로 고용된 두로비치가 먼저 2025년 3월 뉴욕에서 체포됐다. 알리모프는 가명 여권을 들고 이스탄불을 경유해 콜롬비아로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인터폴 적색 수배령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수갑이 채워졌다. 현재 그는 콜롬비아에 구금된 채 미국으로의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스파이에게 디지털 세계는 지뢰밭

공교롭게도 알리모프가 체포되던 같은 달, 핀란드 비밀경찰 Supo(수포)는 이례적인 채용 공고를 냈다.

러시아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휴민트(인간정보) 요원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원 방법이 흥미롭다. 지원서는 우편으로만 받는다. CV와 동기 양식, 그리고 짧은 자기소개 영상을 USB 메모리 스틱에 담아 봉투에 넣어 보내는 방식이다. 디지털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디지털 세계에서 "이 채널은 안전하다"는 믿음은 언제나 절반짜리 믿음일 수 있다. 이것은 러시아 최정예 스파이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참고: Helsingin Sanomat (2026년 3월 29일) / The Insider·Der Spiegel 공동 취재 (2026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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