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언니"와 "쎈 오빠"의 나라, 핀란드

Don't help me가 익숙한 핀란드인의 시수

by 어나미


겨울이면 눈은 허리까지 차올랐다. 세상은 죽은 듯 고요해졌지만, 그 정적은 생존을 더욱 잔혹하게 몰아세웠다. 식량은 바닥나 굶주림이 형제들의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필사적인 사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칼바람을 막지 못하는 허술한 집 안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웅크린 채 아득한 새벽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일곱 형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숲을 개간해 땅을 일구고,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우고, 사냥 기술을 익히며, 글을 배우기 위해 마을로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열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만들었고, 마침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바로 핀란드 최초의 핀란드어 소설인 알렉시스 키비(Aleksis Kivi)의 『일곱 형제(Seitsemän veljestä)』가 그려내는 핀란드식 해피엔딩이다.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고, 실수하고, 다시 일어서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생존기다. 핀란드 사람들은 이 일곱 형제의 혈관 속에 흐르는 불굴의 정신을 ‘시수(Sisu)’라 부른다.


시수는 핀란드인의 국민성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단어다. 핀란드 고대어로 ‘내장’을 뜻하는 이 단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로도 끈기(Grit), 회복력(Resilience), 결단력(Determination), 내면의 강인함(Inner fortitude) 등 여러 단어를 겹쳐야 겨우 의미가 닿는다.


핀란드 역사학자 테무 케스키사랴(Teemu Keskisarja)는 저서 『핀란드의 역사(Suomen historia – Ihmisten historia)』에서 시수를 “생존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던 이들의 처절한 고집”이라 표현했다. 외국인들은 처음에 핀란드의 거친 자연을 보고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 곰이나 살 법한 땅”이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핀란드인들은 그런 척박한 동토의 늪지대에 나무 기둥을 박아 기초를 세우고, 거대한 돌을 날라 울타리를 치며 마을을 일구어냈다. 영하 30~40도의 추위와 ‘카모스(Kaamos)’라 불리는 칠흑 같은 겨울 흑야를 견뎌내며 불가능해 보이던 땅을 삶의 터전으로 바꾼 힘이 바로 시수다.


이 시수는 역사적 고비마다 핀란드를 구해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39년 겨울전쟁(핀어: Talvisota)일 것이다. 압도적 병력의 소련군을 맞아 핀란드 병사들은 영하 40도의 설원에서 매복하며 화염병으로 탱크를 격파했다. 설원을 집처럼 누비던 스키부대의 활약도 유명하다. 큰 차이가 나는 전사자 수의 차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멘탈’이었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보고에 “묻을 곳이 많아 좋군”이라고 응수할 수 있는 정신. 주변국들이 소련에 합병되던 시기에도 핀란드가 독립을 지켜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시수가 있었다.


겨울전쟁의 일등공신 핀란드 스키부대 출처: 핀란드 국방부


겨울전쟁 중, 화염병으로 무장한 핀란드 군인들 출처: 핀란드 국방부


그러나 시수는 언제나 미덕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케스키사랴는 시수를 ‘강한 약’에 비유했다. 강한 약은 잘 쓰면 사람을 살리지만, 과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핀란드 역사 속에는 고통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채 안으로 삭이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술에 의지했던 남성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다. 시수 연구자 에밀리아 엘리사벳 라티(Emilia Elisabet Lahti) 역시 ‘해로운 시수(Toxic Sisu)’를 경고한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는 태도는 자신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굽혀야 할 때 굽히지 못하면 부러질 수도 있다.


핀란드에 오래 살다 보면 이런 면모를 주변에서도 종종 본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가정 내 불행이 닥쳐와도,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을 받아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핀란드 사람들은 포커페이스(poker face)에 능한 것 같다. 기쁨도 절제하지만, 고통은 더 깊이 숨긴다.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이들의 ‘독립심 과잉’은 시수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얼굴이다.


엄마가 처음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 사람들을 한참 관찰하시더니 이렇게 말했었다.

“여긴 단 한 명도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이 없구나.”

요즘 말로 하면 ‘센 언니’, ‘센 오빠’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허당이며 꽤 만만한 타입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이런 핀란드 사람들과는 다른 족속이라 구분 짔고 살았다. 그런데 최근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이들과 꼭 닮은 점 하나가 있음을 발견했다.

‘인생을 과연 잘 살아온 것인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는지...’

이 과정에서 느낀 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나 역시 핀란드 사람들처럼 지나치게 모든 일을 혼자 끙끙대며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었다. 나폴레옹의 사전에 ‘불가능’이 없듯, 내 사전에서도 “도와달라(HELP ME)”는 말이 사라져 있었다. 강해야만 한다고 믿었지만, 오히려 생존에 필요했던 SOS를 제때 외치지 못한 나는 그만큼 더 약해져 있었다.


케스키사랴는 핀란드의 역사를 “자연과 운명에 맞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쳐온 무뚝뚝한 고집쟁이들의 행진”이라 정의했다. 그런 핀란드 고집쟁이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때로는 “Help me!(도와달라)”라고 외쳐도 괜찮다고!

이 동토에서는 혼자서 얼어 죽는 고독한 늑대가 되기보다는 타인의 온기로 자신을 녹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가 진정한 생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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