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방금 세수를 마친 꼬마의 말간 얼굴이다. 청초하고 수줍은 새색시이다. 활짝 웃으면 그 누구도 따라 웃지 않을 수 없다. 초록 잎이 넓고 짙어지는 한 여름엔 그늘 곁에 숨어들고 싶다. 겨울의 낙엽조차 쓸쓸히 모아 태우면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기 좋으니 그야말로 초록에는 사계가 담겨 있다.
그러한 초록에도 사활을 걸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나의 초록은 애잔하다. 초록의 소리는 통곡과 고통의 울음,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몸부림이다. 초록에는 한 가족의 행불이, 희비가 포개져 있다. 먹고사는 것을 초록에 기대 해결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온 가족이 그것에만 매달려야만 했던. 웃음과 슬픔이 뒤섞여 있던 기억을.
초록이 자신의 몫을 다 해낼 때면 힘이 난다. 엄마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했다. 너희들 덕분에 먹고 산다며 초록에게 말을 건넨다. 한없이 고맙고 고맙다는 엄마의 음성에 살랑임으로 응해주는 초록이다. 때때로, 아니 자주 초록이 제 힘을 못다 하면 오랜 연인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모조리 뒤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다 뒤집어엎어버리고 싶은 초록. 너 때문에 못 산다. 입에 풀칠도 못한다.
초록의 입장에선 이만큼 무자비하게 일방적인 것도 없다. 너희들이 씨 뿌려놓고, 제대로 거두지 못한 것을 왜 나를 탓할까. 난 열심히 했어. 최선을 다했다고. 계속해서 성적을 갈구하는 1등 아이의 엄마처럼 그에게 생채기 냈다. 못난 것을 말 없는 초록에게 뒤집어 씌웠다.
여름이고 장마철이다. 아빠는 항시 일기예보를 틀어놓고 예의주시 한다. 많은 비가 예보된 날이다. 아빠 얼굴은 근심걱정으로 가득 찼다.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양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하늘을 쳐다본다. 언제쯤 빗방울이 떨어질지 가늠해 보다가 퍼뜩 무언가 떠올랐는지 부리나케 삽을 챙긴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은 뭉툭하고 두꺼운 핏줄이 솟아있다. 밭둑 옆으로 고랑을 파내 물길을 낸다. 이번엔 삽을 들고 논으로 달려간다.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키가 자라고 있는 벼가 잠기지 않도록 더 높게 둑 흙을 쌓는다. 물길을 터주고 잠그는 수렁을 단도리 한다. 오랜 농사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지만 검어진 하늘은 저 얕은 고랑쯤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고 비웃는다.
어느 여름엔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이 내렸다. 아빤 다시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찬 얼굴이다. 장화를 벗어던진 그는 이번엔 작업화를 신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논으로 밭으로 물을 대주러 다니느라 손이 퉁퉁 불었다. 먼지 이는 논밭을 뛰어다니느라 바지를 털면 탑새기가 한가득. 부은 양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입을 벌리고 멍하니 하늘을 본다. 근심과 걱정 원망 섞인 얼굴이다. 아, 오늘도 비가 안 오면 어쩌나. 초록이 원망스럽다. 까맣게 타버린 초록.
우리 가족에겐 애증의 대상인 것이 초록이다. 대체 무엇이길래, 먹고사는 일에 관여를 하는가. 하늘이 무엇이길래 초록을 까맣게 태우나. 일 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초록과 한 몸이던 나는 이제 도시에 살고 있다. 초록이 그리워 찾아 떠나지만 정작 초록을 키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애시당초 그것을 키우며 즐거움을 얻는 것은 딴 세상 이야기다고 선을 그었더랬다. 진짜 땀 흘려 얻는 초록의 숭고함이 무언지 모르는 한심한 사람들의 유희라고 여겨질 만큼 나의 초록에는 아픔의 역사가 크다.
하늘을 보고, 초록을 그리며 아빠의 허리춤에 얹은 양손을 떠올린다. 세월의 훈장인가. 새끼손가락의 끊어진 인대와 수시로 몰려오는 손가락 통증쯤 별 것 아니라 여기고 만다. 요즘 같은 장마철이 되면, 또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고 있을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