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정찬] 샘소나이트

by 온비


도서관을 애용한다. 책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남편을 기다리려던 참이다. 자주 다니는 도서관의 2층엔 8인용 원목 테이블이 있다. 진득하니 앉아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테이블은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곳에서 그를 보았다.

겉보기에 민음사 고전을 읽는 것으로 보이는 어르신은 호리호리한 몸에 알맞은 체크무늬 남방과 회색 정장 바지를 입었다. 입고 있는 바지와 비슷한 비둘기색 머리칼은 곱디곱다. 아마 해를 만나면 은빛으로 빛나겠지. 군데군데 아직 바라지 않은 검은 머리가 고집을 피우며 자리 잡고 있다. 구태여 세월을 시간을 잡아 세우지 않는다.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때로는 그것을 앞서가기도 해 왔던 흔적이 고스란히 몸에 배어 있다.

나는 금아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을 펼치고 필사 준비를 했다. 책과 노트를 꺼내고 펜 굴리는 소리는 조용한 도서관의 적막을 깨는 다부진 소음이다. 그러나 맞은편의 분주함에도 눈길 한 번 건네지 않고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동요 없는 단호함에 '역시나!' 하고 감탄했다. 오늘 이대로 필사는 몇 자 못써도 괜찮은 심정이다. 포기하고 힐끔힐끔 눈알을 굴려 본다. 민음사의 익숙한 판형과 딱 봐도 족히 500쪽은 넘을 듯한 두꺼운 책의 반 너머에 시선이 가 있다. 낡은 갱지를 넘기는 주름진 손가락이 건조하다. 마른 손가락이 부스럭거리면 기분 좋게 넘어가는 누런 종이. 일말의 미련조차 남아 있지 않은 두께와 서걱거림을 나는 좋아한다. 갱지 넘기는 소리와 나의 펜 굴러가는 소리는 몽골 어느 사막에서 모래미끄럼 타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뜨겁고 고운 모래알에 일단 앉으면 사정 봐주는 것 없이 내려오게 된다. 어찌나 푸석한지 몸 어느 곳에도 달라붙지 않았던 무미한 알맹이들. 종이와 종이 위의 문장들이 내게서 미끄러져 나가듯. 들러붙으려 하는 건 오히려 나였다.

긴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10분, 아니 20분쯤이었나. 시계를 보지 않아도 가야 할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읽을 분량을 다 채운 것인지 모르겠다. 미련 없이 책장을 덮는다. 이제야 보이는 책 제목. 『노인과 바다』, 『노르웨이의 숲』 두 권이다.

일어서며 의자 뒤에 숨어있던 가방을 꺼낸다. 빛바랜 녹색의 샘소나이트.

지퍼 여는 소리는 갱지 넘어가는 소리보다 작고 부드러웠다. 가방 앞 주머니를 에워싸는 마감과 네모 귀퉁이 모두 헐어 있었다. 실밥의 너풀거림이 정연하다. 차곡차곡 두 권의 책을 넣고 지퍼를 닫기까지 동작 하나하나 모두 가지런하다. 말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사용하여 짐을 정리한다. 갱지에 담긴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해 본다. 그 와중에 자신의 모든 걸 맡기는 샘소나이트. 얼마든지 담아도 된다는 암묵적 허락. 둘의 오랜 우정은 말이 없다.

좋은 제품들이 쏟아져도 한 눈 팔지 않았다. 그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녹색의 샘소나이트 외에는 다른 것을 품지 않았다. 샘소나이트도 그것을 알고 있다. 빛과 바람에 색이 바래져도 포기하지 않고 곁을 지켜준다. 자신의 쓰임이 다 할 때까지 쓰이길 바라면서. 충성심 강한 반려견과는 다르다. 오감 없는 물건과의 교감은 더 깊은 믿음과 충실함이 필요하다.

모든 움직임은 오랜 경험에서 온 여유를 풍겼다. 야무진 농사꾼의 손길과 어느 숙련된 장인의 모습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그러한 모습으로 나이들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좋다.

작고 이름 지을 수 없는 멋이 흘러넘친다. 보기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오늘 이런 호사를 누렸으니 열 샘소나이트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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