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기 쉽게.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가수 전영록 님의 노래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나온 노래인데 요새 이 노래의 가사가 들리더라.
처음엔 그냥 신나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가사를 보니 지우기가 너무 어렵다는 가사가 공감이 되더라.
생각보다 되게 현실적인 노래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늘 굵은 펜으로 적어버리기 쉽다.
짙고 선명하게, 도저히 지워지지 않게.
지워질 리 없다는 확신과 함께,
영원할 거라는 근자감 위에.
그래서 끝났을 때 문제가 된다.
너무 짙게 써버려서,
남은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게 된다.
덧칠도 안 되고, 뜯어낼 수도 없고,
손대면 종이부터 찢어져버린다.
나는 늘 그런 방식으로 사랑을 썼던 것 같다.
조심성 없이, 감정에 취해,
펜 심이 닳도록 눌러쓰던 사람.
그러다 보니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이 남았다.
사라지지 않는 이름,
도려내도 남는 문장,
그리고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빈칸만 한 장.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랑은 정말 연필로 쓰는 게 맞았을까.
연필로 썼다면
덜 아팠을까.
지우개로 쓱쓱 지우고,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르겠고,
또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남아버린 흔적 위에
새로운 글을 쓸 만큼 단단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한 줄 정도만 적어둔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지우기 쉽게.
나는 아직,
지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