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0년의 숙제, 마침내 크레셴도를 쓰다

by 조윤미

‘들어가며...’


마침내 열 해묵은 숙제를 시작했다.

관객의 숨결을 나누던 공연장 대신, 고요한 모니터 앞에서 청중과 글로 마주하는 첫 방송을 마쳤다.

생각보다 이 작업은 꽤나 고독했다.

글을 쓰는 동안 냉장고 문을 몇 번이나 열고 닫았다.

정수기에서 물을 들이켜고, 괜히 인스타그램을 열었다가 다시 모니터 앞에 돌아왔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또다시 내 ‘반짝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무도 시킨 적 없는데, 왜 나는 이 책을 쓰려는 걸까.”

반짝이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마음 주머니 속 어딘가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빛이 느껴진다.

‘빤짝, 빤짝.’

그래, 분명 어딘가에는 내가 듣는 음악 이야기를 함께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누고 싶은 사랑과 열정이 있다.

앞뒤를 재며 계산하는 순간, 그 빛은 금세 사라진다.

그러니 그냥 쓰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빛이 번져 있을 것이다.

나는 해설을 중심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공연장과 학교, 기업, 공공기관 등 다양한 무대에서 대중을 만나며, 온라인에서는 클래식 해설 라이브를 진행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두 시간짜리 생방송을 진행하지만, 늘 시간이 모자라다.

돌이켜보면, 참 묘하다.

자기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게다가 많은 이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클래식을 말로 전하고 있다니.

그 시간은 음악과 공연의 분위기, 그리고 감정을 생생하게 전하는 또 하나의 무대다.

이런 방송을 위해 소소하게나마 원고를 직접 쓰고, 말로 풀어내는 연습을 이어왔다.

그 덕분에 청중과 호흡하며 이야기를 전하는 감각을 조금씩 키울 수 있었다.

구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고 도움이 된다” 고,

또는 “사랑방 같은 분위기”라고 말할 때마다,

‘아, 내 마음이 닿았구나’ 하는 기쁨이 밀려온다.

책을 쓰라는 권유를 받은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한결같이 다그쳐온 지인들의 성실함도 놀랍지만, 그 말을 버텨온 내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다.

공연 해설은 관객의 심정을 바로 느낄 수 있지만, 글쓰기는 반응이 없다는 점에서 낯설고 막막했다.

게다가 글은 구조적이고 정밀해야 하니 모든 것을 꼼꼼히 챙겨야 했다.

그게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확신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내가 10년 만에 마침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였다.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흐르던 순간,

내 마음 주머니 속 빛이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오래된 숙제를 시작할 때구나.’


이 책에는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여러 연주에서 받은 감상, 내 러시아 유학 시절의 소박한 기억, 그리고 음악과 삶 속에서 만들어낸 ‘크레셴도’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 나는 이 오래된 숙제를 시작하려 한다.

해설가로 살아가는 시간 동안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해설가는 무엇을 듣는가.

그리고 음악은 언제 비로소 살아나는가.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작은 기록이다.



8월

조윤미의 크레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