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셴도.
점점 세지는 소리, 부풀어 오르는 감정.
모든 크레셴도는 가장 작은 숨에서 시작된다.
첫 음은 말이었다.
내게 그 시작은 ‘말’이었다.
건반보다 말이 먼저 나왔고, 연습보다 질문이 앞섰다.
피아노 수업이 아니라 대화의 장처럼 느껴지던 어린 시절,
나는 손끝보다 입이 더 바쁘게 움직이곤 했다.
“왜 이렇게 말이 많니?”
그 말은 거의 인사처럼 매번 들었다.
하지만 나는 꾸중보다 말하는 게 더 즐거웠다.
어린 마음에, 말로 음악을 풀어내는 게 마치 또 다른 연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의 레슨은 유난히 맑은 오후였다.
햇빛이 피아노 뚜껑 위로 부서져 내렸고, 교수님은 손끝으로 그 빛을 잠시 훑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자, 오늘은 어디부터 해볼까?”
하지만 나는 악보를 펼치지 않았다.
대신 입이 먼저 열렸다.
“교수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첫마디, 그는 왜 그렇게 시작했을까요?”
교수님이 눈썹을 살짝 추켜올렸다. 나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또 물었다.
“베토벤 ‘전원’ 소나타 1악장은 왜 왼손이 그런 식으로 움직이죠?”
“이 부분을 레가토로 칠 때 교수님은 어떤 기분이 드세요?”
“저는 슬픈 곡을 칠 때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건 왜 그런 걸까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교수님은 잠시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서야 교수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윤미야, 선생님은 학생의 ‘미래’를 먼저 보고 조각할 수 있어야 해. 잊지 마.”
그 말은 그날 내게 아무 대답이 되지 않았다.
무엇을 조각한다는 건지, 왜 ‘미래’를 본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내 질문이 허공에 흩어진 것 같아 조금 서운한 마음으로 피아노실을 나섰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은 이미 내 안에서 자라날 크레셴도의 첫 음을 조용히 듣고 계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학생의 ‘미래’를 먼저 보고 조각할 수 있어야 해."
시간이 흘러, 나는 또 다른 스승을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진로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던 시절이었다. 소개받고 찾아간 그날,
가을 공기가 차가웠다. 넓은 정원 한쪽에서 커다란 개가 짖어댔고, 그 소리에 내 심장은 작게 떨렸다.
‘휴...’
숨을 고르고 문을 열었다.
나무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거실을 지나 조용한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 끝에는 조명이 어둡게 내려앉은 피아노실이 있었다.
벽 한쪽에는 오래된 액자들이 걸려 있었고, 공기 속에는 약간의 먼지 냄새와 피아노의 묵은 향이 섞여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두꺼운 안경테 너머의 냉랭한 눈빛이 나를 훑었다.
“앉아요.”
그 한마디에 공기가 얼었다.
레슨은 시작되었고 그날 나는 단 한 번도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없었다.
“틀렸어요.”
“자세가 안 돼요.”
“그건 해석이 잘못됐어요.”
그분의 말은 칼처럼 짧고 나는 점점 작아졌다.
돌아와 울고, 다시 연습하고, 또 울고...
그분의 시선은 언제나 나를 통과해 악보 속 ‘오류’만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녀와의 레슨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선명한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그 경험은 나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관심 없는 가르침은 아무것도 자라게 하지 못한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저런 선생님이 되지 않겠다. 누구에게나 보석 같은 부분이 있다면, 나는 그걸 찾아주는 사람이 되자.’
‘관심 없는 가르침은 아무것도 자라게 하지 못한다.’
그 다짐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 나는 제자들을 만날 때 피아노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손가락의 모양보다 그 손을 움직이는 마음을...
그 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건반을 누르는지, 그 속에 어떤 울림이 있는지를 듣는다.
그래서 나는 레슨의 시작을 질문으로 연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니?”
“이 곡을 칠 때, 네 마음은 어디에 있었니?”
그 질문 속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웃고, 소리의 결이 달라진다.
그 순간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본다.
‘말로 피아노를 치던 아이.’
돌이켜보면, 그 두 스승은 내 인생의 크레셴도를 함께 만들어준 사람들이다.
한 분은 내 안의 질문을 키워주었고, 한 분은 내 안의 결심을 단단히 새겨주었다.
어쩌면 크레셴도의 시작은 바로 그런 것이다.
말과 침묵, 따뜻함과 냉기, 그 두 세계의 대비 속에서 내 울림은 조금씩 자라났다.
이제 나는 안다.
크레셴도의 시작은 소리가 아니다.
누군가의 눈빛, 한 마디의 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듣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 작은 숨결이 내 삶의 첫 음이었고, 지금도 나는 그 울림으로 연주한다.
첫 음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내 인생의 크레셴도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