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크레셴도의 시작’
2024년 9월 28일 워싱턴 케네디 센터.
무대 위에 임윤찬이 앉았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내 속에 있는 '반짝이'가 원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나의 인생에 다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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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미: 안녕하세요, 조윤미의 크레셴도, 피아니스트 조윤미입니다.
휴가철 한창인데, 다들 어디로 떠나셨나요? 저는 이렇게 무더위 속에서 갑자기 바다가 떠올랐어요.
발을 시원한 파도에 담그고, 바람이 살짝 피부를 스치는 순간... 아, 상상만 해도 좋네요.
여러분도 느끼시죠?
혹시 더위에 지치고 마음이 무거웠다면, 오늘은 여름바다 같은 음악으로 잠시나마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바닷바람처럼 뜨거운 열기를 훅 날려 보내고,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시간입니다.
오늘 함께할 곡은,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2024년 9월 28일, 워싱턴 케네디 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NSO 시즌 오프닝 갈라 콘서트였죠.
지아난드레아 노세다 지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였습니다.
오늘도 실시간 댓글과 함께, 방구석 1열에서 현장의 감동을 그대로 느껴보는 시간!
자, 그럼 '조윤미의 크레셴도', 지금 시작합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조윤미: 드디어 이 곡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설렙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중 하나죠.
게다가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협연이라니,
그야말로 황금 조합입니다.
저는 새벽에 악보를 펴 놓고 이 음원을 처음 듣다가 눈을 감는 순간,
연주가 바다의 바람처럼 공기를 가르며 밀려왔어요.
그 신선함과 충격은 짧게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연주자들의 2번 협주곡을 들어봤지만, 이런 울림은 처음이었죠.
수현: 선생님이 ‘신선하다’고 느낀 이유가 궁금해요. 그리고 이 곡이 바다와 연관된다는 것도요.
보통은 우울증 극복 이야기나 종소리 얘기로 설명하잖아요?
조윤미: 중요한 질문이에요. 바로 오늘의 주제이기도 하죠.
왜 바다를 떠올렸는지 알려면, 먼저 이 곡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부터 볼까요?
민애: 그 부분은 제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요.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에서 회복하며 만든 곡이죠?
조윤미: 오! 민애님 맞아요.
수현: 그 이야기가 유명해서 뮤지컬에도 나오더라고요.
조윤미: 그렇죠. 그런데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아세요?
민애: 그건 잘 모르겠어요.
조윤미: 1897년, 24살의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 1번을 작곡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초연에서 지휘자 글라주노프가 술에 취한 채 지휘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리허설처럼 흘러간 공연은 참패로 끝났고, 라흐마니노프는 가혹한 비난을 받았죠.
지훈: 자신의 첫 교향곡 작품이 실패로 돌아가다니.. 우울증에 걸릴만하네요.
그때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탄생한 거죠?
조윤미: 네, 맞아요. 달 박사의 최면 심리치료를 4개월간 받은 뒤, 1901년 마침내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왔어요.
수현: 회복의 첫 곡이라 그런지 감정이 더 묵직하게 담겼겠네요.
그동안 라흐마니노프의 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조윤미: 그러니까요. 이 곡은 시작부터 라흐마니노프가 영감을 받은 소리로부터 출발해요.
자, 이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왜 새롭게 들렸는지 살펴볼까요?
이건 1악장 시작 부분 악보입니다.
<테크닉은 가고 진심만 남는다>
https://youtu.be/YiBFZ2 xYfZM? si=eljxehoLhlVxD1 hH
조윤미: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첫 코드는 속도부터 눈에 띕니다. 보통보다 빠르게 시작해서 저는 새벽에 들으면서 입을 틀어막았어요.
그때 그 희열이란.. 제가 원하던 그 속도감이어서 그랬을지도 몰라요.
지훈: 악보를 보니 거의 비슷한 음표들이 계속 나오네요?
조윤미: 이 음표들은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 정교회의 종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그가 어린 시절 매일 들었던 소리입니다.
민애: 아하 그래서 아까 선생님께서 라흐마니노프가 영감을 받은 소리 이야기를 말씀하셨군요.
설명을 듣고 보니 진짜 종이 여러 개 울리는 것 같아요.
조윤미: 라흐마니노프는 이 종소리를 곡의 첫 모티브(motive, 짧지만 음악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작은 음악적 단위)로 삼았는데 이런 고백이 들려오는 것 같죠.
“내가 다시 일어났다”
선언이자, 새로운 운명의 신호탄 같은.
수현: 꼭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같아요. 저기 별표로 표시하신 마지막 마디의 rit. 표시는 뭐예요?
조윤미: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 하라는 지시어입니다.
대부분 이곳에서 속도를 확 늦추지만,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절제된 속도로 다음 마디로 곧장 달려갔어요.
마치 물결이 갑자기 몰아치는 순간처럼 긴장감이 느껴졌죠.
지훈: 물결 이야기 하셔서 생각났어요.
선생님은 아까 이 부분에서 바다가 생각난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조윤미: 오른손 소프라노의 계이름 ‘도’ 보이시죠?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 ‘도’가 반복돼서 나올 때마다 점점 커지는 크레셴도를 표현했어요.
그때 마치 바다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또 왼손 베이스의 ‘파’는 그 위를 단단히 떠받치며 깊고 묵직한 울림을 내고 있죠.
그것 때문인지. 끝을 알 수 없는 심해처럼...
저는 마치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진동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지훈: 그래서 바다를 떠올리셨군요?
종소리를 말씀하실 때는 소리가 상상이 되었는데, 바닷속 심해와 파도의 느낌을 이야기하시니 눈으로 그려지고 연상이 돼요. 꼭 음악을 보는 느낌이네요. 신기해요.
“왼손 베이스 저음부의 ‘파’.. 심해의 깊고 묵직한 울림..!
꼭 음악을 눈으로 보는 느낌이에요!”
수현: 그나저나 선생님은 이 부분을 연주하실 때 어려움은 없었어요?
조윤미: 왜 없었겠어요.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진땀이 납니다.
보이시나요? 빽빽하게 쌓여 있는 음표들 사이에서, 중심에는 오른손 소프라노의 ‘도’, 왼손 베이스의 ‘파’가 버티고 있지요.
겹겹이 쌓인 음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누르다 보니, 정작 제가 듣고 싶었던 소프라노 ‘도’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어요.
마음은 굴뚝인데 소리가 따라주지 않으니 속상할 수밖에요.
그러다 보니 옆으로 이어지는 선율에서 꾸준히 커지는 표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죠.
즉, 내성(화성 안에서 중간에 자리한 성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음악이 자연스럽게 커져야 하는 부분인데 참 어려웠어요.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이 페달링(pedalling, 피아노에서 페달을 사용하는 연주 기법과 그 방식)이에요.
속도와 강약이 살아 있는 소리를 내려면, 페달을 마치 한 올의 실처럼 섬세하게 조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조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피아니스트의 영원한 스승,
바로 ‘귀’입니다.
민애: 설명만 들어도 몇 가지 단계들이 있고 복잡하네요.
피아니스트들은 이 모든 기술들을 연마하고 난 후, 자기의 마음을 담아서 연주하는 거잖아요.
조윤미: 그렇죠. 그래서 결국 테크닉은 없어지고 진심만 남게 되는 것 같아요.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음악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답니다.
계속 볼까요?
“테크닉은 없어지고 진심만 남게 되는 것 같아요.”
<연주자가 아니라, 파도가 부딪치는 바다>
https://youtu.be/YiBFZ2 xYfZM? si=eljxehoLhlVxD1 hH
수현: 음악과 함께 들어보니,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힘찬 포효 같은 소리를 내네요.
마치 단단히 땅을 딛고 서서, 그 울림으로 무게를 지탱하는 느낌이에요.
조윤미: 시작 악보에 con passione라는 지시어가 보이시죠.
‘열정적으로’, ‘격정을 담아’라는 뜻입니다.
임윤찬은 이 지시어를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선에 깊이 녹여냈어요.
오케스트라가 제1주제를 시작하기 직전, 왼손 베이스의 ‘도’와 ‘솔’을 축으로, 음표들이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죠.
그 안에서 열정이 소용돌이칩니다.
민애: 그 강렬함에 저도 마음이 활활 타는 것 같아요. 하하.
게다가 선생님께서 음표를 따라 물결표시를 해 놓으신 걸 보니 더욱 파도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런데 선생님, 악보를 보니까 음표들이 정말 빽빽하네요.
피아니스트는 이걸 다 치는 거잖아요? 손가락이 아플 것 같아요.
조윤미: 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작품은 특히 음표 밀도가 높습니다.
건반 위에서 음이 서로 밀려드는 듯한 촘촘함이죠.
다른 작곡가의 곡도 어렵지만, 특히 라흐마니노프는 넓은 손가락 간격과 강한 타건을 요구해서, 연습 과정 자체가 연주자에게 큰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제1주제를 시작하는 부분을 보세요.
피아니스트는 오케스트라의 노래와 호흡을 맞추어 연주해야 합니다.
주제 선율이 ‘도–레–도–레–도–시♭’로 흐르는 동안, 피아노는 왼손 베이스를 중심축으로 삼아 촘촘한 화음을 펼칩니다.
눈을 감고 음원을 들어보세요.
꼭 울림이 파도처럼 번져가는 것 같지 않으세요?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소리에서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장면이 그려져요.
지훈: 아, 그 느낌 뭔지 알 것 같아요. 휴가 때 동해바다에 갔었는데,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정말 크더라고요.
큰 파도일수록 소리도 더 크고, 부서진 뒤에 사라져 가는 잔향도 들었어요.
바다 냄새랑 그 소리를 같이 떠올리니까 훨씬 생생하게 느껴져요.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소리에서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장면이 그려져요.”
조윤미: 맞아요. 부서진 파도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면, 바다 위에는 새로운 빛이 번집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제1주제의 격정이 물러난 자리에, 제2주제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등장해요.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제1 주제의 거친 파도에 이어지는 숨 고르기이자 절절한 감정의 여운이 시작되는 곳이랄까.
이 부분에는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낭만스러운 해석이 돋보였어요!
저는 음원을 들으면서 ‘이거지!’ 입이 귀에 걸렸었다니까요. 하하
어디에 두드러지는지 함께 보실까요?
<내 심장의 지시가 음악을 빛나게 할 때>
https://youtu.be/YiBFZ2 xYfZM? si=eljxehoLhlVxD1 hH
조윤미: 자! 제가 음원을 들으면서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았습니다.
2 주제 중에서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특히 멋지게 연주한 부분이에요.
수현: 와, 역시. 이 부분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음표가 많네요.
선생님께서 적어놓으신 문구 중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입체적 소리 드러낸다’라는 표현, 정말 신선했어요.
조윤미: 맞아요. 제가 집중해서 들었는데,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저 부분에서 왼손 계이름들을 강조하더군요.
비교적 빠른 박자였지만, 찰나의 순간 들리는 왼손 소리가 기분 좋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제2 주제에서는 악보와 달리 연주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오히려 음악을 더 빛나게 만들었어요.
민애: 저는 놓쳤는데, 선생님 말씀 듣고 다시 들어보니 정말 왼손 소리가 들렸어요!
‘어머, 웬일이야!’했습니다.
수현: 혹시 ‘작은 울림으로 강한 여운 남긴다’라고 표시된 마디 말씀하시는 거죠?
조윤미: 네 맞아요.
지훈: 선생님께서 적으신 걸 보면, 별표가 있는 음표를 가장 작게 친 뒤, 그다음은 서서히 느리게 치도록 되어 있더군요.
조윤미: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주의 깊게 들으니, 원래 악보에서는 작게 시작해 점점 커지는 크레셴도를 표현해야 하는데 그는 조금 다르게 해석했더라고요.
수현: 악보와 반대로 연주했네요. 저는 오히려 더 애절하게 들렸어요.
“작은 울림으로 강한 여운을 남긴다”
조윤미: 맞아요. ‘강한 베이스 소리’로 표시해 둔 부분에서는 박자의 변화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연주자는 이 마디에서 베이스의 시 b을 중심으로 오른손 멜로디를 굴곡 있게 표현하죠.
그런데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소리가 커지고 음표가 상승하는 부분까지 거침없이 나아갔습니다.
마지막, 제일 높은음을 강조해 크게 쳐야 할 부분에서도 오히려 소리를 작게 표현했어요.
아마 이 순간, 관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며 함께 공감했을 겁니다.
민애: 선생님 설명을 듣고 나니 악보를 보면서도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조윤미: 그렇죠? 예를 들어 악보를 여행지도라고 한다면, 그 출발점은 연주자의 심장이 아닐까요.
오선지 위의 음표들은 연주자의 정서와 신체의 리듬을 통과해 음악으로 나타나고, 결국 빛나는 음악으로 완성될 테니까요.
“악보는 여행지도, 출발점은 연주자의 심장..!”
<고통,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시작>
https://youtu.be/YiBFZ2 xYfZM? si=eljxehoLhlVxD1 hH
조윤미: 이 부분은 1악장의 클라이맥스예요. 방금 전까지 우리는 2 주제를 살펴보았어요.
이 정점에 해당되는 부분은 2 주제 후 발전되고 재현의 과정을 거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한 몸처럼 합쳐지는 구간이에요.
여기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우리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실로 짜릿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어요.
악보 위에 보이시는 Alla marcia 표기는 이탈리아어 음악용어로 ‘행진곡처럼’이라는 뜻입니다.
러시아식 군악 행진은 대부분 군중이 쉽게 발맞추도록 리듬패턴이 반복되어서 1박과 3박에 강조를 하는 경향이 있어요.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이 뜻에 맞게 리듬감 있는 연주를 해 주었는데요.
제가 보기에 아무래도 페달을 적시 적소에 가볍고 짧게 밟아 그 느낌이 한층 더 살아나게 해 주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소리가 정확하고 단단해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쾌감을 주었어요.
지훈: 와! 여기는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 버릴 정도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의 음악이에요. 반복해서 들을수록 강렬해서 빨간색이 생각날 정도라니까요.
어깨춤이 절로 나네요.
수현: 저는 연주자들 마다 이 부분의 음악이 조금씩 달리 들렸습니다.
박자의 다름 말고는 정확히 어떤 차이인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요.
조윤미: 연주자 본인이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아무래도 클라이맥스 음악이 다르게 나타나게 되겠죠.
수현 님께서 말씀하신 박자도 있고요.
여러 요소들이 많겠지만 저는 여기서 페달링의 차이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페달을 민감하면서도 길게 밟으면 두터운 화성과 멜로디가 그 울림 안에서 어우러지는 효과가 나타나죠.
반대로 이 부분의 행진곡 풍의 리듬을 좀 더 강조하려면 짧고 긴밀히 밟으면 좋겠어요.
민애: 오 그러니까 페달의 울림을 강조한다면 길게, 리듬을 강조한다면 짧게.
수현: 민애님 아주 딱 정리해 주셨네요.
저는 길고 웅장하게 밟아 큰 종소리 같은 효과의 느낌도 좋은 것 같아요.
지훈: 전 두 가지 다 잘 어우러지게 전부 느끼고 싶어요.
연주자분들에게 너무 어려운 부탁일까요?
조윤미: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본보기로 연주해 주었으니 지훈 님께서는 더욱 생생하게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고 느껴져 이 부분이 어려웠어요.
피아노 솔로 부분을 연습할 때는 악보에 나온 대로 옥타브와 화음을 스타카토 주법으로 단호하게 끊어내야 하고, 동시에 악센트로 힘 있는 강조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연주해 보니 가장 힘든 점은 바로 ‘힘의 무게 중심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에 있었어요.
“힘의 무게 중심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지훈: 힘의 무게중심 조절이요?
조윤미: 네. 악보를 보시면 스타카토 주법(음 하나하나를 짧고 끊어서 연주하는 방법)이 포함된 옥타브(음악에서 한 음과 그보다 8도 위 또는 아래의 같은 이름의 음 사이의 거리)와 코드(세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려 화음)에 반복해서 악센트(특정한 음이나 박자에 특별히 힘을 주어 강조하는 것)가 빨간색 표시로 나타나 있는 것 보이시죠?
그리고 제가 빨간색으로 크게 표시해 둔 체크표시도 보이실 거예요.
이렇게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형태는 음악에 강한 리듬의 추진력을 주게 되지요.
그런데 음표도 촘촘히 있어 밀도가 높아 화음이 두터워요.
여러 개의 음표를 양손으로 동시에 눌러야 하고,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스타카토와 인터벌(두 음 사이의 거리)의 대비를 명확히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피아니스트가 손가락뿐 아니라 팔 전체를 빠른 속도로 건반에 진입시킨 뒤, 민첩하게 다음 음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순간적으로 매우 강한 타건이 필요하지요.
이때 핵심은 힘의 무게를 얼마나 빠르고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조절만 잘할 수 있다면, 큰 울림 속에서도 리듬감이 살아 있는 연주가 얼마든지 가능하겠지요. 저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요. 하하.
민애: 설명만 들어도 숨이 막힐 만큼 어렵게 느껴지네요.
음악을 들을 때는 마치 규칙적인 스텝을 밟는 듯한 리듬을 느꼈는데, 연주 과정이 이렇게 까다로운 줄은 몰랐어요.
지훈: 그러게요. 저는 감상할 때 어깨춤이 절로 나올 정도였는데, 그 안에 이런 세밀한 기교가 숨어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멜로디 자체는 단순하고 힘 있게 뻗어나가서 흥얼거리기도 쉬웠거든요.
조윤미: 맞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제1 주제 선율이 처음에 등장했을 때와는 달리, 이후에는 행진곡풍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더욱 귀에 익숙하게 들리지요.
피아노 솔로 부분에서는 마치 교향곡 속 오케스트라의 건반 파트처럼 거대한 음향이 나타나는데요.
그렇게 피아노 솔리스트의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에너지가 어우러져서 러시아 협주곡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러시아 협주곡의 전형”
수현: 와! 제가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면 이 부분 음악을 듣고 단번에 회복될 것 같은 기분이에요.
민애: 저도요, 수현 님. 실제로 우울증으로 무너졌던 라흐마니노프가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지훈: 라흐마니노프에게 실패와 우울증이라는 위기가 오히려 강한 아름다움의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어요.
조윤미: 네 지훈 님 말씀대로입니다. 러시아어로 ‘아름답다’는 красивый-‘끄라시뷔’라고 하는데요.
이와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가 바로 красный-‘끄라스뉘’, 즉 ‘빨갛다’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아름답다’와 ‘빨갛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실제로 서로 가까워요.
아까 지훈 님께서 이 부분을 감상하시면서 빨간색이 떠올랐다고 하셨는데, 빨간색은 아름다움과 바로 연결됩니다.
붉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고통,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시작이 아닐까요.
“위기가 오히려 강한 아름다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