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민들레 씨앗의 여행
2024.9.27
이 씨앗의 여행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늘을 떠다니는 하얀 솜털의 여정이겠지
그러나 너만은 이 여행을 들어줬으면 해
자, 얘기 시작한다
씨앗은 눈을 뜨자마자
주변의 촉촉한 흙으로 향했어
몸을 묻으려던 찰나
"야, 여긴 너 같은 애가 있을 곳이 아니야"
노랗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해바라기씨가 말했어
씨앗은 할 수 없이 바람에 몸을 실었지
그렇게 또 다른 흙을 찾아 떠돌기 시작했어
하지만 씨앗은 가는 곳마다
다른 씨앗들에게 상처를 입고
또 떠나야 했어
그렇게 민들레 씨앗은 점점 지쳐갔고
바람은 그런 씨앗을 보고도 계속 움직였어
씨앗은 바람이 야속했지만,
믿을 건 바람뿐이었거든
그러다 바람은 멈췄어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골목길이었지
씨앗은 바닥으로 툭 떨어졌고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어
차가운 시멘트 위에서
조용히 식어가고 있을 때였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어
터벅터벅터벅
씨앗은 그게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
그리고 그 사람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이 작은 민들레 씨앗을 조심스레 주웠어
씨앗은 거의 사라졌던 생명력을
그 사람의 따뜻한 손길 덕분에 되찾았어
그 사람은 말없이 씨앗을 흙에 묻어주고 갔어
씨앗은 놀랐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이렇게 촉촉하고 기름진 흙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씨앗은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아
무럭무럭 자라 예쁜 민들레가 되었어
그제서야 바람이 고마워졌지
이제 바람은
또 민들레가 낳은 씨앗들을 데려가겠지
어디로 갈진 아무도 몰라
하지만 민들레는
그냥 바람을 믿었어
이게 민들레의 여정이야
안 믿겨?
안 믿어도 돼
근데 말야
이 민들레의 여행, 꽤 멋지지 않니
민들레가 저 정도인데
넌 어떻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