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도화지
2024.9.29
까만 도화지 위에
새들이 지저귄다.
빨간, 윤기 나는 털을 가진 새.
노랗고, 단단한 뿌리를 지닌 새.
푸른빛이 감도는 눈을 가진 새.
모두 까만 도화지 속에서
까맣게 물들어 있다.
그 한 장의 그림이
나를 힘들게 한다.
존재만으로도,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 도화지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까만 도화지가
나를 아프게 한다.
나는 새들만을 탓했었다.
그 새가 나를 비웃었고,
그 새가 나를 쪼아댔고,
그 새가 경멸의 눈으로 나를 노려봤기에.
지금도 새들이 밉다.
그래서 아직도
그 새들이 가진 색깔을 증오한다.
하지만 진실을
알아버렸다.
새들이 까만 도화지 속에 있기 때문에—
까맣게 보였던 거라는 걸.
나는 여전히 새들이 싫지만
진실의 화살표는
도화지를 가리킨다.
나는 시커먼,
빛이라곤 없는
그 도화지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