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8

까만 도화지

by 기도집주인딸

2024.9.29

까만 도화지 위에
새들이 지저귄다.

빨간, 윤기 나는 털을 가진 새.
노랗고, 단단한 뿌리를 지닌 새.
푸른빛이 감도는 눈을 가진 새.

모두 까만 도화지 속에서
까맣게 물들어 있다.

그 한 장의 그림이
나를 힘들게 한다.

존재만으로도,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 도화지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까만 도화지가
나를 아프게 한다.

나는 새들만을 탓했었다.

그 새가 나를 비웃었고,
그 새가 나를 쪼아댔고,
그 새가 경멸의 눈으로 나를 노려봤기에.

지금도 새들이 밉다.
그래서 아직도
그 새들이 가진 색깔을 증오한다.

하지만 진실을
알아버렸다.

새들이 까만 도화지 속에 있기 때문에—
까맣게 보였던 거라는 걸.

나는 여전히 새들이 싫지만
진실의 화살표는
도화지를 가리킨다.

나는 시커먼,
빛이라곤 없는
그 도화지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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