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7

바람이 스치우는 시간

by 기도집주인딸

2025.3.21

바람이 스친다.
내 발걸음이 닿는 곳 어디에서든 바람은 분다.
그것이 매서운 겨울바람이든,
싱그러운 봄바람이든 말이다.

바람은 어느 날은 내 코끝을 간질이고,
어느 날은 손끝에 닿았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내 스쳐간다.

결국 바람은
언제나 그렇게
지나간다.

날 스쳐 지나가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그 바람을 붙잡을 수도 없고,
되찾기 위해 나설 수도 없다.
바람은 나를 외면한다고,
나는 오랫동안 굳게 믿어왔다.

수없이 많은 바람들이 내게 왔다가
그만큼의 속도로 떠나갔다.
그런 반복이 어느덧
익숙함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스치는 바람 앞에서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스침에 길들여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이 순간에도
나의 바람은 나를 스쳐간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아주 굳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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