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다 세계 정세 불안으로 환율이 오르는 것을 보고 떨어지기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화로 2돈짜리 5개 10돈을 주문했다. 친구도 금 살 때 연락해 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친구는 2돈짜리는 의미 없다며, 다음 주에 같이 종로 가서 이쁜 목걸이나 팔찌를 맞추자고 했다.
이 친구는 중학교 친구로 죽마고우이다. 내 삶을 거의 알고 있는 친구이다. 나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남편 일까지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이다. 내가 병원에 있는 게 어쩌면 나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친구이다. 계속되는 암에 친구는,
“평생 너는 돈만 벌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어쩌니? 정말 화난다.”라며 자기 일처럼 말한다.
오늘도 남편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작년부터 돈을 벌면서 나에게 돈은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만도 다행이다. 내 통장에 조금씩 돈이 늘어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늘어나도 만족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줄어드는 것보단 나쁘지 않다.
나는 친구에게 "딸 대학 졸업하면 나도 마음껏 쓰고 살아야지”라고 말하자, 친구는,
“어디다 쓸 건데? 쓸데나 있어? 뭘 해야 쓰지? 골프를 치자니깐 골프도 안 치고. 사고 싶은 게 있냐?”라며 물었다.
나는 크게 웃으면서, “그러게, 하고 싶은 게 없네. 사고 싶은 것도 없고, 내가 명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평생 써본 게 없어. 다 자식과 남편한테 쓴 거지.”라고 말하자,
“남편에게 왜 그리 썼니? 자식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암튼 너니깐 가능해. 너도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았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내가 혼자 살았으면 난 상위 1% 안에 들었지. 최고의 삶을 살았지. 내가 사자는 건물 한두 개만 샀어도 지금 엄청났지. 내복이야. 남편도 어쩜 나 안 만났으면 더 잘난 여자 만나서 잘 살지 않았을까?”라고 웃으면서 말하면서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또다시 나의 한탄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내 속을 몰라. 아이들은 알아줄까? 자신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딸은 이해하는 것 같긴 해. 그래도 아빠 때문에 화내면 싫어해. 알지만 그래도 아빠잖아.”라고 말하면서 나는 더욱 흥분된 목소리로, “근데 정말 웃긴 건 뭔질 아니? 주위에서는 나에게 ”시집 잘 갔다. 어디서 저런 남편을 얻었냐?”라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아니? 같이 살아보지 않고 겉만 보면 우리 남편이야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남편이지.”라며 나는 거의 미친 듯이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친구는,
“왜 그렇게 말해?”
“당연하지, 젊잖지. 똑똑하지. 말없이 알아서 일 다하지. 술 담배 안 하지. 아이들에겐 엄청나지. 남들이 보면 깜짝 놀라지. 모임 같은 곳 가도 말없이 혼자 일 다해. 나는 가만히 있잖니? 그러면 난 나쁜 년이야. 친정을 가도 마찬가지야. 나는 놀고 있고 남편이 나 대신 일하잖니. 김장하러 가도 나는 일 못해. 알잖아? 우리 엄마도 너는 오지 말고 김 서방만 보내라고 하잖니. 남편과 있으면 어디 가나 나는 나쁜 년이야.”라며 흥분이 최고조로 치달아 말하고 있었고, 수화기 저편에선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누가 내 속을 알겠니? 해마다 날린 돈이 얼마인 줄 아니? 이제 돈 버니깐 돈 귀한 줄 알 것이다. 2~3천만 원은 돈으로도 안 봤겠지? 달라고 하면 주니깐. 돈 귀한 줄 모르고 말이야.
음식도 다 먹으면 사 놓으라는데 계속 사다 놓고, 뭐 사 놨는지도 모르고 냉장고에선 다 썩어서 냄새나고. 그거 치우는 것도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아니? 내가 미치는 일이 한두 가지 아니야. 버리는 것도 일이야. 아침도 자기만 먹고 나가라는데 왜 그렇게 많이 만들어 놓고 가는지. 그러면 그거 버리는 게 대부분이야. 요즘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 그렇게 힘들게 벌어서 그런지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멀었어. 습성인가 봐? 먹고 사라는데, 음식도 먹을 만큼만 하라는데 어쩌면 그렇게 고집이 센지 몰라. 잔소리한다고 대답도 안 해요. 처음에는 웃으면서 말했는데, 이제는 보면 짜증부터 나는 거 알아?”
나는 내 얼굴에 침 뱉고 있는 거 알면서도 계속 말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끝도 없다. 남편이 나에게 한 서운한 일을 어찌 다 글로 표현하겠는가? 이런 일들은 사소한 것이다. 아들 가졌을 때 내 마음에 맺힌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만 나온다. 내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 생각을 하면 피가 거꾸로 돈다.
남이 우리 부부를 보면 나는 항상 나쁜 년이다. 남편이 작년부터 트럭 일을 한다. 처음에 나는 무척 반대했다. 지금도 고생하는 걸 생각하면 짠하긴 하다. 만약, 이 일을 하다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큰 아주버니는 다 나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내가 오랫동안 투병해서 어쩔 수 없이 잘난 당신 동생이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옆집 아주머니도 작년에 나를 보시자, “자기야, 아빠가 일 시작 했네. 잘했다. 뭐라도 해야지. 엄마가 계속 아픈데….”라며 모두가 나 때문에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나 몰래 진 카드 값 갚기 위해서 한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고 등록금 대주고 싶어서 하는 거지 나를 위한 것은 없다.
큰 아주버니는 남편이 트럭 일을 시작한 이후로 연락조차 없다. 4번째 암 수술할 때도 연락이 없었다. 지금까지 당신 동생이 한 일은 아무것도 모른다. 오직 나와 자식들만 안다. 남편이 주식과 코인에 날린 돈이 얼마인지는 솔직히 나도 모른다. 시댁에서 부모님 돌아가시고 얼마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말도 없이 다 날린 것으로 안다.
지금 벌어서 나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는다. 나에게서 가지고 간 돈도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트럭 시작할 때, 이혼하자고 하자, 자기 몫을 달라고 했다. 너무 기가 막힌 나는 당신한테 지금까지 준 돈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통장으로 이체한 것만 뽑아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은 받은 것이 없다고 하니깐, 현금으로 준 건 나 두고, 내 통장에서 당신 통장으로 간 것만 뽑아와 달라고 했었다. 절대 가지고 오지 않는다. 항상 나만 나쁜 년이다.
나쁜 년으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이젠 이상하지도 않다. 내복이 여기까지 라고만 생각하고 살려고 한다. 그래도 나에게는 나를 믿어주는 자식들이 있다. 오늘의 흥분을 이글로 그만 버리려고 한다. 저녁에 아이들과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를 하려고 한다. 몸과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