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후, 딸과 함께 입원했다. 자궁이 안 좋은 딸에게 한약을 먹이기 위해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자궁이 좋지 않다.
아이 둘을 낳고 자궁출혈로 두 번 다 소파수술을 했다. 유방암에 걸리고서도 호르몬의 문제가 자궁으로 흘러 과다생리로 고생하고 있다. 딸이 나를 닮을까 봐 무섭다.이 무서운 고통을 딸에게 주고 싶지 않다.
요즘 아이들이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인한 나쁜 자세로 경추통과 허리통증도 심하게 느낀다. 우리 딸과 아들도 예외는 아니다. 딸은 특히 자궁 통과 함께 허리통증이 심하다.
2주 정도 치료 후, 집으로 갈 때 딸이
“엄마! 나 갑자기 집에 가는 게 싫어졌어.”라고 말했다. 깜짝 놀랐다.
우리 아들딸처럼 집돌이들도 없다. 나가서 놀라고 돈을 주어도 아들은 집이 최고라며 돈을 거부한다. 딸은 돈을 주면 돈 받기 위해 돌아다닐지는 몰라도 집이 싫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무슨 일 있어? 딸!”하고 놀라 물어보자, 웃으면서
“엄마! 냉장고를 어떻게 해. 아빠가 분명 많이 사다 놓았을 거야.”라는 말에 우리는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남편이 중학교부터 유학 생활을 해서 그런지 집안일은 잘 도와준다. 하지만, 음식 솜씨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몸에 좋다는 채소를 과하게 넣기 때문이다.우리 세 명은 고기를 좋아한다. 남편은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행복한 가족을 갖고 싶었던 나는 남편과 잘 지내려고 남편이 싫어하는 행동을 최대한 자제 했다. 고기 먹을 때마다 눈치 보며 먹었다. 특히 치킨이나 피자 같은 배달 음식은 거의 먹지 못했다. 1년에 몇 번 먹으면서도 먹는 도중에 남편이 오면, 먹다 말고 치울 정도였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다.
남편은 한 살림부터 친환경 음식을 사달 나른다. 먹을 정도만 사 오면 뭐라고 하지 않는다. 집에 뭐가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언제 샀는지 생각 없이 계속 사 나른다. 과일야채 통에 과일과 채소가 썩다 못해 곰팡이가 생겨도 신경 쓰지 않고 사다 나른다.
결혼하고 이런 문제로 많이 싸웠다.
“먹지도 않고 치우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사 오는 거야?”라고 나는 잔소리했다. 말이 없는 남편은 인상을 쓰면서,
“내가 다 먹을 거야. 내가 치울게.”라고 말하지만, 입 짧은 남편이 얼마나 먹겠는가? 냉장고와 부엌 청소를 해도 1주 일도 지나지 않아 무한 반복이다. 버리는 음식도 낭비하는 돈도 아까웠다.
지금은 일이 바빠 거의 집에서 식사도 안 한다. 아이들 먹으라고 매일 밀키트 음식이며 고기를 배달시킨다. 이제는 아이들도 돼지갈비, 소불고기는 어디서도 안 먹으려고 한다. 음식이 냉장고, 냉동고, 김치냉장고에서 넘쳐난다.
2년 전인가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둘 다 대형으로 바꾸었다. 후회했다. 냉장고가 커지자 더 많은 음식 쓰레기가 나왔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세 명은 모두 부담스러워한다. 일을 조금이라도 더하려는 남편은 밤 12시 이전에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다. 아침에도 7시 출근하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항상 피곤에 쪄러 있다.
우리는 당신만 알아서 먹고 가라고 말한다. 나는 남편 먹을 것을 갈 때마다 죽이랑 몇 가지 준비 해놓고 왔었다. 이제는 딸이 아무것도 못 하게 한다. 바쁜 아침에 아무것도 만들지 말라고 해도 칼국수, 떡국, 누룽지, 만두 등 한 냄비씩 해놓고 가면 아무도 먹지 않는다. 매번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내가 집에 있을 때, 나는 아이들 학교 보내기 위해 일찍 일어나도 부엌으로 나가지 않는다. 부엌에 둘이 있으면 싸울 수밖에 없다. 아들과 딸은 먹기 싫다는 표정으로 나만 쳐다본다. 난처하다. 남편의 사랑 표현이 아침부터 우리는 부담스럽다.
웃으면서 나는 “역시 아빠가 최고네. 너희들을 너무 사랑하네. 근데 자기야. 아이들 학교 가면 우유 먹고 점심 먹으려면 이렇게 많이 못 먹고 가. 내일부터는 쉬세요.”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말이 없는 충청도 남편은 묵 묵 무 답이다.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다.
이젠 나는 포기했다. 아침에 싸우는 것도 애교도 지겹다. 아이들은 미안해서 말 못 하고 먹는 시늉만 하다 시간 되면 식탁에서 일어나 학교 간다. 그때 나는 뛰어나온다. 아침 인사를 해준다.
“내 이쁘니 멋쟁이. 오늘도 행복하고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다 와. 많이 웃다 와. 싸랑해. 알지! 아들은 미소! 잊지 마!”라고 눈인사까지 해준다.
남편이 출근할 때도 최대한 이쁘게 인사해 주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식사 잘 챙기고 무리하지 말고 조심히 운전해요.”라는 정도. 예전에 비하면 가족 유지를 위한 형식만 갖추는 예의이다. 남편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나와 표현 방법이 맞지 않는 거지.
남편을 보고 사랑의 표현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아무리 내가 사랑한다고 표현해도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면 사랑이 독이 된다. 아들딸 나는 몸에 좋은 음식보다는 맛있고 입맛을 충족시켜 행복감을 주는 것을 먹고 싶다.
딸이 중3부터 고2 초까지 공부와 거의 담을 쌓았다. 그러던 딸이 고2 마지막 모의고사를 전교일 등 했다는 통지표를 나에게 카톡으로 보내왔다. 병원에 있는 나는 전화로 충분히 칭찬을 해주고 용돈도 주기로 했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했다.
“자기야. 딸보면 칭찬 많이 해 줘. ‘아빠는 딸을 믿었어. 역시 내 딸이야. 내 딸은 마음먹으면 모든 잘할 수 있어. 이쁜 내 딸 싸랑해!’라는 식으로 아낌없이 칭찬해 줘. 자식에게는 표현도 중요해! 알았지. 믿을게.”라며 몇 번을 당부했다.
다음날 딸에게 물어보았다.
“아빠가 뭐라고 했니? 엄마가 자랑했는데.”라고 말하자,
“10만 원 주었어.”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짜증이 났다.
“아무 말 없이?”라고 묻자,
“시험 잘 봤으니깐 준다고 하면서 주던데.”라며 딸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식이었다.
나와 다른 남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제는 조금씩 받아들이려고 한다. 생각과 습관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변화를 기대한 내가 얼마나 바보였는가를. 나를 위해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고.
우리 세 명이 식사 할 때 와도 좋고 안 와도 좋다. 보고 싶으면 오겠지. 가족 톡에 올려놓으면 선택은 남편의 몫으로. 우리와 다른 사랑의 표현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나의 방어기제이다.
가끔 세 명만 행복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원하면 남편이 우리 곁으로 들어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