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학교 성적은 대학입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성적이라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하지만, 부모라면 성적보다는 자녀들의 꿈과 가치를 먼저 존중해 주어야 한다. 성적이 사회적 평가나 자아 존중감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23년 7월10일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의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다. 시험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첫날 50점이라는 영어점수 결과에 실망감과 대학 진학에 겁먹고 막말과 소리를 질렀던 내 모습에 반성하면서,
"아들! 시험 끝났어?"라며 부드럽고 따뜻하게 평상시 말투로 물어보았다.
"응"이라며 언제나처럼 짧게 대답했다.
아빠를 닮아 내성적인 아들의 목소리를 듣기는 ‘하늘에서 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그런 아들에게 막말했으니 기분 좋게 대답할 리가 없었다.
"시험 보느라 애썼어. 내 멋쟁이 고생했어. 잘 봤어?"라며 아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응"이라며 역시나 억지 대답뿐이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물어봐야 하는 엄마는,
“몇 점 맞았어?”라며 오늘의 요지인 점수를 물어보았다.
"과학 70점, 역사 97점"이라며, 거짓말을 못 하는 아들은 솔직하게 단답형으로 말했다.
"잉! 70점이 잘 본 거야?"라며 실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들은,
"어려웠어"라며 언제나처럼 간단하게 말했다.
"다른 친구들도 못 봤데? 어려웠데?" 나는 궁금한 것을 계속 물었다.
솔직히 대화도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대화를 내가 이끌어 가야 하는 상황에서 오늘 같은 날은 부담감이 컸다.
"어"라며 역시나 한마디로 모든 걸 해결한다.
"아무튼 시험 보느라 일주일간 고생 많이 했어. 내 멋쟁이!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는 우리 다시 공부하자. 이번에는 오늘만 쉬자. 알았지. 사랑스러운 내 사랑! 내 멋쟁이!"라며 평상시처럼 애교 많은 엄마는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아들에게 최대한 이쁘게 말했다. 아들은 어떠한 말에도,
"어"라는 한 단어로 끝내버린다.
나는 자주 아들딸에게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좀 해주라. 엄만 사랑한다는 단어를 너희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어”라며 구걸하듯이 사정한다. 그러면 둘 다 아무 말이 없다. 포기한다. 그리고선 “엄마가 얼마나 우리 소중히들 사랑하는 줄 알지? 너희도 엄마 사랑하지?”라며 나 혼자 이야기하고 위안을 받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응”이라고 한마디 대답만 해준다.
결혼 초에 남편에게도 항상 나만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면 남편은 얼굴이 빨개져 좋아하면서도 아무 표현 못 하고 쑥스러워만 했다. 출근하는 아침마다 키스와 포옹으로 “사랑해 남편. 오늘도 행복하고 많이 웃는 날 보내”라며 말해주었다. 남편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뒤돌아보고 손을 흔들며 얼굴이 빨개져 웃으며 출근했다.
아이들이 어쩌면 이렇게 남편을 닮았는지 모르겠다. 아들은 남편보다 더하다. 이런 줄 알면서도 세 명에게 나 혼자 모든 사랑을 표현하려니 가끔은 지친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나은 사랑스러운 자식들인데. 잘 달래야 나도 행복한걸.
다시 한번 아들에게 다짐받았다.
"이제 공부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거 알지? 내 멋쟁이!"
"어"라는 여전히 한마디 대답뿐이다.
“평일은 3시간하고 주말은 5~6시간 할 수 있겠지?" 나는 아들의 마음을 재차 확인했다. 아들은 역시나,
"어"라며 짧게 대답했다.
"그러면 영어는 하루에 1시간 반하고 수학 1시간 국어 30분씩 괜찮아?"라며 나는 좀 더 구체적인 계획안을 제안했다.
"어"라는 한마디로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는다.
"내 멋쟁이!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지 우리 같이 고민해 보자."라고 말하자, 역시나
"응"이라고 대답한다.
멋쟁이가 유튜브에서 '공부 잘하는 법,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법' 등을 찾아서 들어보면 어떨까?"라고 말하자,
"어"라는 의무적인 대답이라도 들어야 하는 나는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알면, 공부 시간을 줄일 수 있잖아. 그렇지, 아들?"이라고 물어보자, 바로
"응"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아들의 자유시간이 더 많아지니깐 좋지 않을까?"라며 달래듯이 말했다. 역시나 아들의 대답은 간결하다.
"응"이라는 대답에 내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최대한 부드러운 말로,
“우리 아들은 현명하니깐 잘할 거로 생각해. 그렇지? 사랑해 내 멋쟁이!"라고 말하고, 아들의 언제나 짧은
"응"이라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말이 없는 아들은 나의 어떤 질문에도 언제나 짧은 대답 "응”과 “어"다. 엄마는 이런 아들에게 항상 서운하고 더 많은 대화를 이끌어 가고 싶다.
‘지금 내가 집이라면 학교에 있었던 일이며 더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병원에 올 때마다 든다. 사랑스러운 내성적인 아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고 상담자나 조력자가 되어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아들은 알까?
아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조력자가 되어주는 딸에게 전화했다. “"내 이쁜 딸! 뭐 하고 있었어? 엄마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걱정했어!”라고 말하자, 딸은 바쁘다는 듯이
"무음이라서. 엄마아들이랑 먹으려고 점심 준비해!"라고 대답했다.
"뭐 먹을 거니?" 나는 궁금증을 가지고 물었다.
"아빠가 김치찜 준비해 놓았어!"라며 당연한 듯이 말했다.
"역시 아빠네! 맛나게 먹고. 이쁘나! 아들하고 통화했어. 하루에 영어 1시간 반, 수학 1시간, 국어 30분씩 3시간 하기로 약속했어. 이쁜 딸이 시간표 짜주고 공부할 내용 정해주고, 단어 시험 봐주라. 영어 독해는 꼭 해석해서 써보게 해주고 답지와 비교해 보게 해줘. 국어는 중요 부분 체크하면서 잘할 수 있게 부탁해! 엄마는 믿을 사람이 이쁘니 밖에 없어"라며 다시 딸에게 애교작전을 피운다. 딸도 역시 대답은 간단하다.
"어"라며 부담스럽다는 듯이 짧게 대답했다.
"고마워! 싸랑해! 내 이쁘니! 맛나게 먹고 즐거운 오후 보내!"
전화를 끊고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교차하였다.
세상은 성적순으로 사는 게 아닌데 우리 사회는 성적순으로 모든 걸 평가한다. 모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좋은 성적을 요구한다.
올해 경희대에 붙은 딸이 갑작스럽게 반수를 결정했다. 다시 한번 공부해 보겠다고 결심한 딸의 의지에 감동하였다. 경희대도 경희대지만 나는 과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딸은 다니면서 좀 더 좋은 곳에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에 고마웠다.
SKY를 고집했던 나였지만 차마 재수를 강요할 순 없었다. 반수는 딸 스스로 결심했고 결정했기에 딸이라면 SKY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부모와 주위 분들의 이런 믿음은 딸에게 큰 힘이 된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낳아 주고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던 부모의 불신은 아들로선 큰 상처였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항상 내 자식을 믿어야만 한다. 그 믿음을 자식들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자식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자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식이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를 찾아주어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일과 관심사를 찾아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조력자가 되어주어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하지만 부모의 욕심과 성급함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성적순으로 몰고 가고 있지는 않은지 부모로서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깊이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