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6일 수능시험 날이다. ‘수능!’ 그 단어만으로도 수험생이 있는 많은 가정이 숨죽이며 산다. 우리 집도 반수 하는 딸이 오늘을 향해 1년을 달려왔다. 노력과 기대, 불안이 교차 되는 날이다.
수능 날 아침에 챙겨주고 싶었지만, 딸이 혼자 할 수 있다며 퇴원하지 말라고 했다. 정말 중요했던 작년 수능 일에도 4번째 유방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하지 못해 병원에서 인사만 했다. 그때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딸에게 미안하고 감사했었다. 이번에는 그런 감정을 벗고 싶어 퇴원하려고 했지만, 결국 병원에서 아침에 시험 보러 가는 딸과 통화로 잘 보라는 인사만 했다.
불안한 나는 딸이 집에 오기 전에 집으로 갔다. 비까지 오는데 걱정되었다. 집에 도착해 딸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걱정스러운 나는 딸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시험 못 봐도 되는데, 왜 연락이 안 되지?’라며 전화기만 보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딸에게 전화가 왔다.
“이쁜 딸! 어디야?”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집에 가는 중이야. 엄마! 나 어떻게? 나 멸망했어”라며 웃음 반 걱정 반 섞인 목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흘러나왔다.
“왜? 망쳤어? 아니면 잘 봤다는 말이야?”라며 나는 말한 의도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폭망했다구! 그냥 경희대 가야 해!”라며 흥분되고 실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비 오는 데 우산은 있니?”라며 딸이 비를 맞을까 걱정이 앞섰다. 나는 시험 점수는 솔직히 별 관심이 없었다.
딸은 연대나 서강대, 한양대라도 가고 싶다며 반수를 선택했지만, 주위에서 성공하는 사례를 본 적이 별로 없다. 많은 재수생이나 삼수생들을 보면, 첫 번째 간 학교보다 잘 간 학생이 20%도 안 된다. 처음부터 딸을 말리고 싶었지만, 나중에 원망을 들을 수 있어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한 것이다.
경희대에서 연대로 상승하려면 수능을 거의 만점을 받아야 한다. 작년 수능은 공부한 거에 비해 점수가 잘 나왔다. 연대를 바라보는 찰나에 수시로 경희대에 붙었다. 딸은 억울해했지만, 나는 감사했었다.
연대나 서강대 문과 가느니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 학과가 더 낫다고 보았다. 하지만 학교에 가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딸에게 그냥 다니라고 할 수가 없어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했다.
공부하는 내내 자신감이 붙었다. 딸의 기세는 점점 연대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다행이다 싶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더없이 좋겠다’라는 희망을 품으면서도 ‘만만치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많았다.
동네 친구 아들이 제 작년에 서울대를 목표로 했다가 못 가고 중앙대 장학생으로 붙었지만, 포기하고 재수했다. 나는 입학하고 다시 공부하면 어떠냐고 권유했지만, 중앙대는 안 간다며 재수했다. 마지막 모의고사까지 서울대는 당연히 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본 시험은 첫 시험보다 훨씬 못 봤다. 중앙대도 못 가는 수준이었다. 결국은 반년 더 있다가 미국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사촌도 서울대 간다며 1년 재수했지만, 결국은 성균관대 수학과밖에 못 갔다. 주위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물론 재수해서 성공한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재수해서 성공하는 확률은 20%도 안 된다. 그 20%도 안 되는 확률에 내 딸이 들어가 주면 좋겠지만, 실패했다.
나는 재수는 반대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공부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재수를 정말 하고 싶으면, 어디든 처음 점수로 갈 수 있는 최적의 학교에 들어간 후, 반수를 하라고 한다. 반수 해서 성공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 공부할 때, 긴장감이 적을 수 있지만, 부담감도 덜 가지고 편하게 할 수 있다.
모든 일을 결정할 때는 최악을 생각해야 한다.최상은 10%의 성공률도 어렵다. 모든 사업이나, 주식, 재테크 등 성공 확률을 3~5%로 본다. 그래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게 부모 입장이다.
딸은 작년보다 수학을 망쳤다며 점수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아들은 누나 방에 따라 들어가 같이 채점해 주었다. 국어와 수학 점수를 확인한 아들은, “엄마, 누나 수학만이 아니라 국어도 틀렸어.”라며 자기 방으로 갔다.
나는 딸 방으로 들어갔다. 딸은 벌써 포기하고 계절학기 수강을 알아보고 있었다. 나는 크게 웃으면서,
“벌써, 경희대 홈페이지를 열었네.”라며, “1년이 아깝당. 재수가 쉬운 게 아니지”라고 놀렸다. 그러자 딸이 울기 시작했다.
“딸! 왜 울어? 이런 일로. 경희대가 있잖아. 괜찮아. 남들은 경희대도 재수는 기본이고 삼수 오수도 해서 오는데, 너는 그래봤자 재수야. 울지마!”라고 위로하며 말하자,
“엄마 때문에 그러잖아.”라는 것이다.
나는 기가 막혀 웃으면서 “왜 엄마 탓을 하니?”라고 말하자,
“왜 괜히 내 방에 들어와서 그래?”라며 짜증을 냈다.
나는 웃으면서 “저녁에 피자나 먹자. 엄마 폰에 피자 할인 쿠폰이 왔더라. 콜라도 무료 쿠폰이 있고.”라고 말하자,
딸은 언제 그랬냔 듯이, “그래. 나 7시에 머리 자르기로 예약했어. 갔다 와서 시키자.”라며 머리 자르러 갔다.
피자를 즐겁게 먹으면서, 나는
“재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주위를 봐라. 재수해서 좋은 학교 간 사람 있나. 간혹 있어도 힘들어. 그러니깐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잘하자 이쁘나!”라며 위로를 해주자,
갑자기 말이 없던 아들이 “엄마는 만약에 누나가 시험 잘 봐서 연대 갔으면, 내가 너 연대 갈 줄 알았다. 내 딸인데 당연하지!했을 거야. 지금은 못 간다니깐, 재수해도 떨어질 줄 알았다고 하고.”라며 나를 놀렸다. 그러자 딸이
“나도 아까부터 그 말 하고 싶었다. 잘 돼도 당연하고 떨어져도 당연하고.”라며 크게 웃었다.
“당연하지. 엄마는 그렇게 말하지.딸이 잘하면 내 딸이니깐 난 믿었다면서 잘했다고 칭찬했을 거고. 떨어졌다고 하니깐 누구에게나 힘든 거였으니깐 괜찮다고 하지. 엄마는 그래. 내 자식이 잘하면 자랑스럽고 못하면 누구든 그럴 수 있는 거니깐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라고 말하면서 엄마는 줏대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부모는 무조건 자식을 응원해 주어야 한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녀는 어디 가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못하면 잘하는 다른 장점을 찾아서라도 칭찬하며 자식의 자존감을 살려 주어야 하는 게 부모이다.
다음 날 아침 딸은 자신의 방을 청소하고 이불 빨래를 했단다. 그리고 1년간 푼 문제지와 수능에 관련된 모든 책을 고물상에 가져다주고 3,700원을 받았단다. 점심 먹고 에그타르트 만들러 간다며 신나서 전화가 왔다. 나는 훌륭하다고 했다. 아닌 건 빨리 잊고 새로운 시작을 즐겁게 준비하는 딸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