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기대 : 자식의 독특한 성격에 대한 염려(1)

by 김인경

부모가 커가는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다. 좋은 대학의 기준이 뭐냐고 물어보면 우리는 바로 SKY를 떠올린다.




나도 두 아이의 엄마이다. 반수 하는 딸의 수능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주일도 안 남았다. 딸은 솔직히 걱정되지 않는다. 떨어져도 갈 곳이 있다. 난 경희대 디스플레이학과로도 만족한다. 더 좋은 대학이면 좋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괜찮다.




내가 만약 암이라는 병으로 투병 생활이 길어지지 않았다면, 경희대는 학교로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모든 환경을 다 만들어 주었는데 왜 여기밖에 못가냐며 아들딸을 볶았을 것이다.

투병 생활 10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죽고 싶을 때도 많았다. ‘내 아들이 어려서 아직은 죽으면 안 돼.’라며 스스로 참 많이 위로했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고, 내가 낳은 자식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지원해 주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강했다. 유난히 아들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가끔 주위 사람들은 “너는 왜 아들 걱정만 하니? 딸은 걱정 안 해? 네 자식 아니야?”라며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었다.



딸은 내가 모든 걸 의지하는 유일한 가족이다. 그 정도로 믿음이 확실하다. 딸은 아들만큼 걱정되지 않는다. 어디에 있어도 자기 몫을 충분히 할 아이이다. 공부를 못해 우리가 말하는 스카이를 못가도 걱정되지 않는다.


반면에 아들은 항상 걱정되고 모든 다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내 마음속에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다. 착하고 순하고 긍정적이며 말이 없다. 내성적인 면이 생각보다 깊다. 친구도 귀찮아한다. 욕심도 없다. 누나나 내가 달라고 하면 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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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머릿속엔 아들은 꼭 SKY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공부라도 잘해서 연구원 계통으로 빠졌으면 한다. 혼자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만족감을 얻으면 편안하게 생활할 것 같다.



내가 아이들과 창업하려는 이유도 어쩌면 아들 때문이기도 하다. 아들이 자리 잡고 잘사는 모습을 보아야 내가 편히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딸은 자신 거 잘 챙기면서 해보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모두 하며 즐겁게 살 거라는 믿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들은 없으면 안 쓰고, 안 먹고 안 할 거 같다.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그냥 굶는다. 먹을 때도 꼭 허락받고 먹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모든 조심스럽다.



학원이나 학교에 보내면 선생님들은 아들을 편하게 보지만 이상하게 보는 경우도 많다. 편하게 보는 선생님은 아이가 절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존재감이 별로 없다. 어떤 아이와도 싸우지 않는다. 공부도 그럭저럭한다. 아이들이 싫어하지도 않는다.

문제 아이와 짝이 되어도 싸우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상담 기간에 선생님을 만나면, 그 반에 가장 문제아를 우리 아들과 짝을 맺어주었다고 말했다. 나는 싫었다.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과 있으면 화를 내는 아이가 우리 아들과만 있으면 조용하다는 것이다. 이유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간단했다. 아들은 남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는다. 말도 하지 않는다. 문제 아이가 책상에 금을 긋고 “여기 넘어오지 마. 넘어오면 그거 다 가질 거야”라고 말하면, 아들은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만약 넘어가서 물건을 뺏기면 그냥 준다. 상대방 아이는 반응 없는 아들과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어떤 선생님은 아이가 느리고 말이 없어 답답하다고 한다. 사회성도 떨어진다며 부정적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아들도 상관없다며 잘 지냈다.




욕심이 없는 아들은 신발이 낡아도 가방이 찢어졌어도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 옷도 사러 가자고 하면,

“엄마! 나 벗고 다녀. 집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라며 귀찮아했다. 나는

“아들이 맨날 그 상태니? 해마다 키가 크잖아. 작년에 산 옷은 작아서 못 입어. 다시 사야지.”라고 말하면,

“그러면 아무거나 사와, 아니면 홈쇼핑에서 사던지. 내가 꼭 가야 해?”라며 귀찮다는 표현을 했다.


지금은 아빠가 아들 것은 알아서 사다 준다. 사랑이 넘치는 아빠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때만 되면 사 온다. 가끔 아빠 수준에서 산 옷과 신발들이 어울리지 않을 때가 있지만, 아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입고 신는다.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병원에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 썼다. 아들의 신발과 가방을 보고 놀라서,

“아들아! 신발과 가방이 찢어졌으면 말하지. 엄마가 못 봤잖아. 새 가방과 신발 사 왔으니깐 내일부터 새것 신고 가지고 가.”라고 말하자,

“옛날 신발은?”하고 찢어진 신발을 찾고 있었다.

“엄마가 버렸어. 우리 멋쟁이 누가 보면 불쌍하다고 하겠다.”라고 말하자,

“나는 그 신발이 편한데. 가방도 좀 더 가지고 다녀도 되는데.”라며 왜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다.




이런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입학한 지 10일도 안 되어 첫 상담을 받고 왔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우리 아들은 완전히 개 무시를 한 것이다. 내가 담임과 통화하고 분이 안 풀려서 일주일 동안 링거를 맞았다.

-계속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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