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시험을 마친 아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팝콘으로 가득 찬 뱃속은 매운 음식으로 달래야 한다. 아들딸이 가장 좋아하는 치킨만 먹자니 갈등이 생겼다. 딸은 떡볶이와 튀김 순대까지 주문했다.
식사할 때 우리 셋은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오늘은 이번 주에 놓친 ‘티쳐스’을 보기로 했다. 아빠, 엄마, 고1 아들이 나왔다. 아빠의 출현은 교육열이 남다른 집안이라는 걸 암시한다.
아빠의 첫마디에 우리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상위 1%가 세상을 만들어 가고, 나머지는 들러리로 살아가는 느낌이기에 그분의 아들은 1% 안에 들어가야 하고, 못 들어간다면 공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라는 대단한 말씀을 해주셨다.
아들딸 나는 치킨을 먹다 서로에게 튈 정도로 웃었다. 고1 학생의 고초가 눈에 보였다. 출연진 아빠의 말에 우리 아이들이 모르는 나의 숨겨진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나의 예전 모습 같았다. 가정환경이 나빠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들을 최고로 키우겠다고 다짐했었다. 한마디로 내가 갖지 못한 권력과 명예 돈을 아이들에게서 얻고자 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나도 못 한 주제에 내 자식들에게 나의 꿈과 욕망을 투영하고 원했다니!’
가난한 가정에서 아버지 힘에 눌려 사는 가족들을 보면서 나는 늘 죽음을 생각했었다. 밑바닥 생활이 싫었다. 형편이 좋아져 중류층에 들어갈 즘에도 우리 집은 오직 아들만 자식이었다.
나는 무던히 노력했다. 다니기 싫은 직장을 다니면서 돈도 열심히 모았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 인정받고 대학원까지 가면서 내가 원하는 명예와 돈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돈 없고 배경 없는 내가 자본주의에서 살아 남는 것이 쉽지 않았다.
힘들어도 명예와 돈을 쫓아갈 건지, 아니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건지? 갈림길에 섰었다. 가정을 선택했다. 항상 꿈꾸었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내 자식은 나처럼 만들지 않을 것이고, 자식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학원 하면서 어리석은 엄마들을 보며 깨달았다. ‘나 같은 엄마가 대부분이구나!’ 아이들의 고통을 보았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으로 오는 표정을.
처음에는 아이들이 복에 겨워 그런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저렇게 해준 부모가 있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살지 않았을 텐데.’라며 아이들이 부러우면서 한심했다.
딸을 낳고 키우면서 힘들었던 결혼 생활 속에서 아들을 낳았다. 끊임없는 남편과 시댁과의 갈등 속에서 아이들 지키기에 바빴던 나에게 결혼 생활 10년 만에 유방암이란 큰 병이 찾아왔다.
유방암이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내 인생을 잡아먹을 줄은 몰랐다. 차라리 죽었다면 미련이 없었을까? 모진 목숨 죽지도 못했다. 1차, 2차, 3차, 4차 4번의 유방암 손님을 항의 한번 못해보고 받아들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인생 별거 없구나! 아이들에게 너무 공부 공부하지 말아야지. 귀한 내 자식이 스트레스로 나처럼 아프면 부와 권력 명예를 얻은 듯 무엇할까? 자신들이 원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오직 나의 욕심으로.’라는 생각에 미치자, 모든 기대를 버리게 되었다.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격려해 주기로 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유방암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1%의 삶으로 남을 지배하는 위치가 아니라, 우리의 분수를 알고 개미로 살자. 대신 개미도 상중하가 있다. 우린 개미 중에서는 상으로 살자. 현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너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기를 원했다.
내 마음이 바뀌면서 우리 집은 모이면 웃지 않는 날이 없다. 시험을 못 봐도 웃고, 잘 봐도 웃고, 가족 중 누구 하나 모자란 행동을 해도 웃으면서 알려 줄 수 있게 되었다.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다. 동생은 누나를 존경했고, 누나는 동생을 아꼈다.
아쉬운 건 성격이 아빠를 닮아서 사랑의 표현력이 없다. 지속적으로 딸에겐 여자다운 애교를, 아들에겐 남자다운 패기와 용기, 자상함을 가르치지만, 기가 센 딸과 기가 약한 아들은 반대로만 가는 듯하다.
‘티쳐스’를 보면서 “아들 저런 집안에서 오늘 너의 점수로 영화 보고 치킨과 떡볶이를 맛나게 먹으면서 지금처럼 웃을 수 있을까?”라는 내 말에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티쳐스’를 보면서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는 착각을 할 때가 많다. 부모의 생각이 자식의 일생을 좌우한다. 자식은 부모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다.
딸과 얼마 전에 입원했을 때, 병원 한의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물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웠기에 엄마 말을 이렇게 잘 들어요?”라며 얼마나 독재적으로 억압했느냐를 듣기 좋게 돌려 말했다. 웃으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해주면 돼요.”라고 말하자, 어이없다는 듯이
“아이들이 원하는 걸 안 해주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라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냐는 듯이 물었다.
“선생님! 엄마가 원하는 기준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기준이요. 우리 딸 지금 병실에서 뭐 하는 줄 아세요? 데스크 탑을 가지고 와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있어요. 고3 때도 시험 끝나면 하고. 스트레스 쌓이면 하고. 시도 때도 없이 해요. 보통 엄마들 미쳐요.”라고 웃으면서 말하자,
“난 그런 꼴 못 봐요. 그걸 어떻게 봐요?”라며 얼굴을 찌푸리며 웃었다.
“저도 보기 싫어요. 하지만, 나 둬요. 저 나이에 제가 하지 말라고 안 하겠어요? 말리면 서로의 감정만 다쳐요. 대신 식사 시간이나 대화시간에 농담 식으로 불만을 던져서 합의점을 찾아요. 답답해도 내 인생 아니잖아요. 대신 살아줄 수 없잖아요.”라고 말하자, 한의사 선생님은
“나는 반대로 꽉 잡아서 아이가 엄마 말을 잘 듣는다고 생각했지요. 다른 집하고 달라서 신기했어요. 어떻게 아이가 밝게 저럴 수 있을까?”라며 칭찬해 주자 서로 웃으며,
“저도 혼자 인내 많이 합니다. 도를 닦아요. 제가 존경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 줄 아세요?”라고 묻자, 나를 빤히 쳐다보며 궁금하다는 듯이 웃고만 있었다.
“남의 자식 키우는 사람이요. 내 자식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입양해서 정성껏 키우는 사람들 보면 존경스러워요. 난 과거로 돌아가면 자식 낳지 않을 거예요.”라며 웃었다.
그렇다. 나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허용한다.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 공부, 취미, 긴 잠자는 시간까지도 존중한다. 이것이 우리 가족의 행복한 비밀이다. 나는 끊임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그들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자유롭게 그들의 삶을 살게 하였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그들은 나의 사랑과 정성을 받아 자라는 독립된 존재이다. 남편과의 갈등, 가족과의 문제도 우리 가족의 사랑 앞에서는 작은 일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식을 사랑하고, 그들이 원하는 삶을 존중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자식은 나의 업보라는 말이 있다. 남은 밉거나 싫으면 안 보면 된다. 남편도 정말 싫으면 이혼하면 된다. 하지만 자식은 어떤 경우에도 버릴 수 없는 사랑과 정성으로 키울 책임이 있다.
내 인생의 여정은 험난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매 순간은 소중하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유방암과의 싸움에서도 자식의 사랑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는 자식들이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들의 행복을 기원해 줄 것이다.
가족은 사랑의 집합체이다. 가족과 함께라면, 인생의 어떤 도전도 함께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