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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Dec 20. 2023

영화와 우리 가족 : 아들에 대한 엄마의 소망

   


시간이 물처럼 흘렀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순간순간 긴박감이 장난 아니네딴생각할 뜸을 안주네.”라며 “서울의 봄” 영화가 끝나자, 큰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치재밌지?”라며 딸이 옆에서 자신의 탁월한 선택을 확인받고 싶은 기대감이 가득 찬 눈으로 말했다.

 “역시 내 딸이야!”라고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최고라는 표시를 했다. 아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 화장실!”이라고 말하며 나갔다.     


“엄마는 저 이야기를 말로만 들었는데, 영화로 보니깐 실감 나네. 전두환이 대단했지!”라고 말하자 딸은 독재에 무서워했다.     




아들 시험이 끝나고 우리 셋은 오랜만에 영화 보러 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었다. ‘시험 끝난 학생들은 어디로 간 걸까?’     


시험이 끝나면 며칠간은 공부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만 하라고 한다. 예전 같으면 이번 주 내내 놀라고 했겠지만,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내일까지로 정했다.      




운전하면서 “영화에 나오는 전두환 멋있지 않니?”라고 묻자, 딸은 엄마를 이상한 빨갱이 취급하며 기겁했다. 웃으면서,     


“딸! 엄마가 말하는 건 전두환의 남자다운 패기를 말하는 거야우리 아들도 저렇게 남자다웠으면 좋겠다는 거지. 사상은 미쳤지만, 추진력과 빠른 판단력과 결단력여유로움 등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야. 엄마는 아들도 저렇게 박력이 넘쳤으면 좋겠다! 아들!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자, 아들은 역시나 무반응이다.     


“내 멋쟁이 아들! 아들은 최고야거기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목소리까지 크면 더 박력 있어 보이겠지? 어째, 우리 집은 모녀가 모든 기를 다 가지고 있나 봐? 아빠도 목소리 작고 젊잖잖아. 패기도 없고. 아들은 아빠보다 더하네.”라며 나는 과거의 회상에 빠졌다.     


내가 왜 아빠와 결혼했을까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아남자는 남자다운 면이 있어야 하는데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너무 질렸나 봐외할아버지가 분에 넘치게 남자 다우 셨잖니힘도 얼마나 센지 웬만한 남자 3~4명이 덤벼도 다 이겼어     


그 힘으로 밤마다 술 먹고 집에 와서 식구들 괴롭히고. 엄마가 또 딸이라고 얼마나 구박을 받았니그거 피해 미국으로 유학 같다 아빠 만났지만. 정말 지금 생각해도 엄마의 어린 시절은 끔찍했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엄마는 꿈이 있었어멋진 내 가정을 가지고 싶었지아들딸 2를 낳아 4식구가 행복하게 사는 꿈. 무던히 노력했다. 아빠가 조금만 남자다웠어도 엄마 꿈이 이루어졌을 거야. 엄마의 착각이 술 담배를 안 한다고 좋은 게 아니더라고.     


술을 안 마시니 모임에 나가질 않아내가 왜 화내는지도 몰라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화를 혼자 속으로 참더라고밖으로 표출을 못 해그 화가 몇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더라고     


가끔 엄마가 왜 아빠에게 황당해하는지 알지? 언제 적 이야기인지도 모르는 데, 마음 상한 걸 갑자기 말하면서 마음 문을 닫고 있잖니?”라고 말하자,    

 

엄마처럼 금방 잊는 사람도 많지는 않지.”라며 딸은 웃으면서 칭찬 아닌 진실을 말했다.    

 

“엄마도 금방 잊지는 못해. 왜 엄마가 계속 아프겠니?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그래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해서.”라고 말하자, 아들딸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이젠 엄마 기대 안 해. 얼마 전에 저녁 먹으면서 알았어. 너희도 봤잖아. 아들 점심 1시에 준다고 약속하고 10분도 안 지나 다른 사람과 약속하는 거?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야. 사랑하는 너희에게 그럴 정도면 엄마에게 한 것도 생각이 없었던 거지.     

 

그걸 모르고 아빠가 엄마를 무시한다고만 생각했지. 그래서 참다가 터지면 미친 듯이 난리 치고. 너희도 알지? 내가 몇 번은 참는 거? 그러다 한번 터지면 나도 나를 컨트롤 하지 못하더라고정신이 완전 돈 사람 같더라고     


아빠도 힘들었을 거야아들처럼 연약한 사람이 엄마처럼 센 여자가 미친 듯 난리 치니. 엄마 만나기 전엔 선비라는 둥, 점잖고 마음 넓은 사람이라는 둥, 좋은 소리는 다 듣고 살았는데.”라고 씁쓸히 웃으며 말하자, 아이들도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외할아버지에 질린 엄마는 술 담배 안 하고점잖고 자식 사랑할 줄 알면서 집안에 충실한 사람 구한다는 게 아빠였잖니? 이 조건은 다 맞지? 술 담배 안 하지? 너희 사랑하는 마음은 전 세계에서 1등이라고 말할 수 있지! 나에게 그렇게 하는 사람을 구했어야 했는데내가 바보지   

  

아들아! 너는 젊잖은 것도 좋고, 착한 것도 좋은데 남자다운 면을 키워야 해안 그러면 사회에 나가도 이번 너희 담임 같은 사람 또 만날 수 있어지금은 엄마가 막았지만, 대학부터는 못 막아줘. 아들이 다 이겨 내야 해.     

사람은 첫인상이 50%를 먹고 들어가거기에는 외모목소리몸가짐 등이야. 아들이 외모는 잘 생겼지만, 웃는 걸 잘 못해. 엄마가 볼 때마다 ‘아들 웃어!’라고 말하는 게 그거야. 미소 짓는 걸 습관화해야 해. 우리 멋쟁이 행복하지 않아?”라고 묻자, 아들은 고개만 끄덕이며 이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들! 바로 그 모습이다. 아들이 웃으면 정말 잘생기고 멋있어누나 얼굴을 봐봐. 아주 이쁘지는 않지만웃는 모습이 친근감 있잖아사람들이 누나 인상 좋다고 하잖아얼굴이 밝기 때문이야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야 해. 무표정한 얼굴에 무뚝뚝하면 어두워 보여. 거기다 목소리에 힘이 없잖아. 아들이 복싱할 때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목소리를 크게 하면서 항상 만족스러운 미소 짓는 모습이 중요해.   

  



이번 담임이 인정했잖아. 우리 멋진 아들이 말도 없고 어두워 보이니깐가난한 집안에서 아무도 신경 써 쓰지 않는 외롭게 버려진 아이로거기다 아들이 친구도 사귀지 않지. 학원도 못 다니는 것 같지. ‘오죽하면 취업 잘 되는 전기 전자에 간다고 했을까?’라고 생각했다잖아.     


이런 인상은 그만해야지. 내 멋쟁이? 우리 아들이 뭐가 부족해머리도 좋고외모도 좋고공부 방법은 이제 조금씩 터득해 가면서 고2부터는 아들의 진가를 보여주면 되고. 안되면 살길은 많아. 항상 자신감 있고 웃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해.     


아들아. 한 번에 바뀌지 않으니깐, 우선 목소리부터 키워보자. 그리고 항상 미소 짓는 거 잊지 말고. 말할 때는 천천히 말해야 하는 거 알지아들이 인강이나유튜브를 2배속으로 듣는다고 말도 2배속으로 하면 안 돼 

    

엄마가 아들이 하는 말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크게 또박또박 말하자!”라고 웃으며 말하자, 아들은 미소 지으며 “응”이라고 대답했지만, 역시나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다. 딸과 내가 크게 웃자, 아들도 무안한 듯이 따라 웃기만 한다.     




어떻게 하면 아들이 좀 더 남자 다워지고 자신감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딸은 아들이 기가 부족하다고만 한다. 그 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파 죽겠어도 나는 에너지가 넘쳐난다. 넘쳐나야 하는 아들의 에너지는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나의 성격을 나 자신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들이 젊잖은 아빠와 나를 반씩만 닮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아니 딸의 성격을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 미련한 엄마의 소망일까?     




차장 너머로 흐르는 서울의 불빛들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반짝인다. 가족과 함께한 이 밤은, 영화처럼 긴박하고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각자의 생각과 감정이 얽히고설킨 시간이었다. 나의 쓸쓸한 회상과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감까지 서울의 밤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흘려보내고 있다.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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