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암 수술 후 16일 만에 집으로 왔다.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게 낯설었다. 결혼하고 2주 이상 집을 떠난 건 처음이었다. 지금은 집에 있는 시간이 더 적지만.
오랜만에 보는 거실과 부엌이 낯설었다. 10년간 내가 만들어 놓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 손길이 닿지 않는 집안 곳곳에도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모든 물건이 거실과 부엌으로 나와 있는 느낌이었다.
깔끔함을 추구하는 편은 아니지만, 제자리를 이탈한 물건들을 짐도 풀기 전에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정리부터 시작했다. 몇 시간을 정리하자, 기운이 빠졌다.
어린 자식들이 왔다. 말이 없는 아들은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나만 쳐다보았다. 저녁 먹고 아이들과 쉬는데 온몸이 아팠다. 병원에서 충분히 쉬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생각과 다른가 보다.
조용한 아들은 문제집에만 몰두하고 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느낌이 없었다. 딸 또한 학원 다녀와서 할 일을 하며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의 존재감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내 보물들의 무관심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서운함을 느끼며 어지러움을 참지 못한 나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이 학교 간 후에도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어지럽고 두통이 심했다. 놀란 남편은 병원에 가자고 했다.
아이들 때문에 하루만 참아보고 싶었다.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다음날, 퇴원하기 전에 알아본 강동 K 한방병원에 예약하고 병원 문을 두드렸다. 아이들에게 말도 못 하고 왔다.
아이들과 이틀간 있으면서, 잘 지내는 것 같아 걱정하지 않았다. 남편은 알바를 구하지 못해 혼자 키즈카페를 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다.
머리가 아프고 온몸의 통증 속에서 모든 게 귀찮았다. 집에 가서 일한 것도 무리였고, 존재감이 없어진 느낌도 서운했다. ‘나만 생각하자! 나만 아이들과 남편, 집안 걱정했지. 나를 알아주는 가족이 없구나!’라는 우울감까지 들었다.
새로운 병원은 6인실로 암 환자들만 있었다. 내가 가장 어렸고 상태도 제일 좋아 보였다. 이분들과의 교류로 위로가 되었다.
미숙 언니는 항암을 100번도 더 했다며 소변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남편분인 아저씨가 간병인으로 계셨다. 그분은 매일 같이 전자레인지에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주며 주위 분들의 음식 만족에 기뻐하셨다.
영미 언니는 오장육부를 거의 절단해서 장기가 몇 개 없다고 했다. 그래도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영미 언니도 남편분이 보호자로 계셨다. 언니네는 충청도에서 팬션을 한다며 지금은 문 닫고 언니와 병원에 계셨다.
남숙 언니는 유방암 수술 후, 요양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마치고 한방치료를 위해 온 분이셨다. 비록 언니가 치료 후라 머리카락은 없었지만, 맏며느리답게 여유로움이 몸에서 풍겨 나왔다.
면회 오신 작은 어머니 두 분은 나를 보시고
“여기는 스님도 입원해 계시네?”라며 신기해하셨다. “아니에요. 수술 후 항암 치료해서 그래요.”라고 말하면서 함께 웃었다.
그때 당시 병원의 환자복 상위는 스님 복과 비슷한 회색이었고 하의는 하얀색 바지였다. 이쁜 두상을 가진 언니의 대머리와 환자복이 스님처럼 보였다.
병원 분위기 좋았다. 요즘 병원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를 아껴주고 위로해 주었다. 친화력이 좋은 나는 바로 친해질 수 있었다. 특히 아저씨 두 분이 이쁘다며 잘해주셨다.
한방치료는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주로 뜸과 침, 부항, 맞춤 한약 등 다양한 치료 방법을 접하며 나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아갔다. 여러 가지 치료를 해본 후 나에게 맞는 마니나 뜸과 직접구 뜸을 선택했다. 그 외 부항과 침, 한약을 먹었다.
여기서 나의 무지가 또 한 번 나타났다. 보통 한방병원 하면 침을 기본으로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거부감 없이 하루에 한 번씩 침을 맞았다. 처음 유방암 수술했을 당시 만해도 머리 아픈 거 빼고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머리 아프지 말라는 침과 소화 잘되는 침 외에 특별한 침을 맞지는 않았다. 매끼 한약 먹고 뜸을 뜨고 부항 하는 게 전부였다. 다른 언니들은 나보다 많은 뜸과 침을 하루에 2-3번씩 맞았다.
치료를 받으면 몸이 좋아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모두가 침대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처음에는 암 환자라 그런다고만 생각했다. 나 또한 집에서 힘들어서 그런 줄 만 알았다. 문제는 침이었다.
침을 맞으면 통증이 줄어든다. 반면에 우리의 기를 모으는 침은 기력을 빼앗아 간다. 건강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선천적으로 약한 사람은 함부로 침을 맞으면 안 된다.
한의사 선생님께 예전에 침을 맞고 여러 번 침 몸살을 앓아서 맞지 않겠다고 하자, 맞아보고 결정하자는 의견에 내 주장만 할 수 없어 하루에 한 번 교수님한테만 맞았다. 2주 정도 맞고 퇴원하려고 준비하는 전날 어지러움이 더 심해지고 힘도 없어졌다. 병원에서는 1주일 입원을 연장하자고 했지만, 아직 어린 자녀들 때문에 퇴원했다.
처음에는 침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몸에 문제가 있어서 라고만 생각했었다. 경험을 통해 지금은 정확히 안다. 침을 함부로 맞으면 안된다는 것을. 한의사들도 안다.
결혼하고도 몸이 약했던 나는 한약을 꾸준히 먹었다. 중계동에 유명한 한의사님은 나에게 절대 침을 놓지 않았다. 금액도 싸고 효과도 좋은데 왜 나에게만 놔주지 않고 비싼 한약만 먹으라고 하냐며 불평했었다. 지금은 그분만이 나에게 솔직했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10년 동안 암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한방병원을 다녔지만, 어떤 한의사도 침의 부작용을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먼저 침은 기력을 쇠퇴시켜 못 맞겠다고 하면 인정하는 의사도 있고 침묵하는 의사도 있다.
특히 근골격인 무릎이나 허리, 목 등 치료를 위한 침은 더 많은 기를 요구한다. 침을 맞고 통증이 사라졌다고 자주 맞는 건 좋지 않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은 한번 맞으면 바로 두가지 반응이 온다. 틍증해소와 기력저하로.
통증 해소보다 기력저하가 더 무섭다는 걸 아는 나는 몇 년 전부터 침을 맞지 않는다. 한약과 마사지로 치료한다. 중계동의 한의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침 한번 맞으면 보약 한 제 먹는 거보다 더 많은 기력이 몸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침을 자주 맞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한방치료에서 침이 항상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항상 내 몸 상태를 확인한다. 어떤 약이 나에게 맞는지 부작용은 어떨 때 반응하는지 등.
유방암 투병 생활 10년은 단순히 질병과의 싸움만이 아니었다. 삶과 건강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나는 나 자신과 나의 몸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가고자 한다.
202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