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기나긴 병원 생활을 마치고 어제 ‘큰나무 암 요양병원’에서 퇴원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들을 만나 저녁으로 숯불구이를 먹었다. 암 환자에게 숯불고기는 좋지 않다는 의학적 권고를 넘어서, 나는 음식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암에 걸린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와 식습관이다. 이처럼 식습관이 암 환자에게 중요하다는 거 인정한다. 그래서 암에 걸린 환자들은 제일 먼저 술 담배를 끊고 익히지 않은 야채나 생선, 즉 회 같은 음식을 피한다. 고기양도 줄이고 숯불구이는 거의 먹지 않는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몸에 좋은 음식은 쓰다’라는 말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는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도 많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몸에 좋은 음식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선택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음식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암 환자의 경우, 식욕이 없다며 음식을 거부한다. 특히 항암치료를 할 때는 임신할 때처럼 음식 냄새도 싫을 수 있다고 한다. 그건 당연한 말이다.
약에 민감한 나는 감기약만 먹어도 입이 마르고 입 맛이 쓴 느낌이 올라와 식욕이 떨어진다. 변비도 생긴다. 기운이 떨어져 계속 잠만 잔다.
항암치료를 받는 암 환자, 특히 생식기 암인 유방암이나 자궁암, 난소암, 남자 생식기 암에 사용되는 항암치료 약은 오장육부에 사용하는 항암제와는 다르다. 뼈에 전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뼈에 있는 세포까지 죽이는 독한 항암제이다.
생식기 암 환자가 항암을 하면 몸에 있는 모든 털이 빠지기 때문에 항암치료 전에 머리를 스님처럼 이쁘게 민다.
몇 년 전, 요양병원에 젊은 여성이 유방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앞두고 입원했다. 그 친구는 웃으며 머리 자르러 가야 하는데 병원에서 많이 가는 곳이 있냐며 물었다.
그런 곳은 없다며 아무 곳에서 자르면 된다고 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머리 자르러 갈 때 같이 가줄 수 있는지 물어 흔쾌히 승낙하고 같이 갔었다.
뒤에 앉아 머리 자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울면 안 되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내 두 볼에서 멈추질 않았다. 나의 눈물은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지만, 그 순간조차도 삶의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다.
울고 싶었던 그 친구는 나 때문에 울지도 못하고 도리어 나를 위로했다. 얼마나 미안했는지 그 뒤로는 누가 머리 밀러 미용실 같이 가자고 하면 절대 가지 않았다.
암 환자들은 음식에 엄청 민감하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좋아하던 음식들을 금하고 몸에 좋다는 채소만 먹기 시작한다. 항암치료 할 때 어떤 의사는 채소조차도 익혀 먹으라고 했다며 생야채도 먹지 않는 분이 계셨다.
나는 새로운 음식이나 숯불고기, 회 등 암 환자에게 좋지 않다는 것들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나도 음식을 가려서 먹었다. 좋아하는 피자, 치킨, 라면, 숯불고기, 회 등 가능한 한 피했다. 그러자 몸에 힘이 더 없어졌다.
‘아니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겠다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살아야 하지?’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몸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기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약에 더 의존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단백질과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으니 먹는 양도 줄면서 없던 변비까지 생겼다. 삶의 재미도 없어졌다. 사람은 먹으면서 정도 쌓고, 즐거운 이야기도 하는 건데 가족들도 나 때문에 먹는 거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나의 눈치만 보았다.
‘이렇게 몇 년 더 사는 것보단 행복하고 만족하며 조금 덜 살자.’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가치관을 바꾸었다.
‘먹는 즐거움을 버리지 말자.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는데, 그리고 나는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사람인데 무슨 채소만 먹고 산다는 건지?’라는 생각이 들자, 그때부터 먹고 싶은 건 가리지 않고 먹었다.
식습관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주었지만, 나는 음식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대신 좋아하는 치킨, 피자, 라면 등은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줄이고 단백질인 고기는 매끼 먹되, 삼겹살이나 숯불고기는 한 달에 2~3번 정도로 줄이기로 결심했다.
술도 맥주 대신 와인으로 바꾸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맥주지만, 맥주는 찬 음식이라 암 환자에겐 치명적이다. 하지만, 와인은 먹으면 먹을수록 내 취향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술도 횟수를 줄였다. 가족 중에 나밖에 마시지 않기에 한 두 달에 1병 정도로.
아이들과 같이 마시고 싶어 계속 아이들에게 권했지만, 대학생인 딸도, 고등학생인 아들도 아빠 닮아서 술은 먹을수록 매력이 없단다. 나는 우리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을 닮아서 그런지 웬만큼 먹어도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마실 사람이 없으니 한 병이면 족하다. 그러면 혈압도 올라가고 잠도 그날은 잘 잔다.
이렇게 음식을 조절하는 건 몰라도 의사가 먹지 말라는 걸 다 먹지 않으면 체력 유지가 힘들다. 거기다 암 환자들의 특징이 건강 염려증들을 가지고 있어 몸에 좋다는 비싼 영양제나 다단계 식품들을 과하게 섭취한다.
문제는 비싼 영양제들이 물에 타서 먹는 약이 많다. 예전 병원에서 만난 언니는 하루에 6리터의 물을 마셨다. 나는 언니에게 붕어냐고 놀린 적도 있었다. 6리터의 물에 많은 영양제를 타서 먹고 나면 음식 맛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카페 가서 고구마 라떼 한 잔만 마셔도 한 끼 식사가 된다. 그런데 6리터 물에 타 먹는 양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암 환자에게 어떤 음식을 해준들 무엇이 맛있겠는가?
나는 친한 암 환자들에게 말한다. 음식 가리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행복을 만끽하라고. 우리 삶에서 음식이 주는 만족감은 엄청난 거라고.
어제 아들딸이 유튜브를 보면서 “파인다이닝”이란 새로운 식사 경험을 이야기하며 여긴 부잣집만 간다고 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이게 무슨 뜻이야?”라며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코스요리 식당을 말하는 거였다.
웃으면서, “내가 이런 곳 너희 안 데리고 갔니?”라고 묻자, 딸이 “나는 데리고 다녔는데 엄마 아들은 못 가봤을걸?”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웃으면서,
“엊그제 뮤지컬 보고, 간 인도 식당도 이런 곳이야. 좀 싼 곳이긴 하지만. 아들은 3년 전 생일날 스테이크 전문점 가자니깐, 치킨 사달라며 안 갔잖아? 내가 그렇게 가자고 하면 안 가고선. 엄마 좋아하는 곳으로 다음 주에 예약하고 갈까?”라고 웃으며 말하자, 딸은 바로 예약하자고 하지만, 아들은 거절했다.
나가기 귀찮아하는 아들이 치킨만도 못한 음식을 차 타고 멀리까지 가서 먹고 싶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대우받고 먹으면서 스트레스 해소하는 걸 즐긴다.
몸에 좋은 음식만 찾아 물에 타서 먹는 것보단 그 돈으로 분위기 좋고 전망 좋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대우받으며 힐링하는 내가 좋다.
이 글을 통해, 나는 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의 삶에서 음식이 주는 만족감과 기쁨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어떤 음식이든,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준다면 그 선택은 옳다.
암과의 싸움 속에서도, 나는 음식을 통해 삶의 진정한 맛을 발견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에서 음식이 주는 작은 기쁨을 찾아 행복을 만끽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암을 겪는 과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도전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과 위안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고, 매일 매일이 예측 불가능한 도전으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맛있는 한 끼,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식사, 새로운 맛을 탐험하는 모험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순간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힘을 주며, 삶의 질을 높여 줄 수 있다.
나는 암 환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삶에서 음식이 주는 만족과 행복을 찾으세요. 병과의 싸움 속에서도, 혹은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작은 기쁨들이 있다. 이는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음식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되찾고, 매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길 희망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작은 것들이 주는 기쁨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