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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Feb 06. 2024

변화의 시작 : 유방암과 함께한 내 삶의 정리


4개월 가까이 살았던 병원에서 퇴원을 위해 짐을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가 엄청났다. 이 쓰레기는 나의 생활이 뒤섞인 잔해물들이었다사람이 있는 곳엔 잔여물이 따라다닌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쓰레기들 사이에서, 내 집, 나의 삶 속에 쌓인 물질적, 정신적 짐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사한 지 20년 가까이 된 집은 정리보다는 매일 사다 놓은 짐이 넘쳐나고 있다어느 순간 나는 청소부가 아닌 수집가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의 성장, 학원 운영의 바쁜 일상 속에서 물건을 정리할 여유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결국 집은 우리 가족의 삶을 담는 커다란 저장고로 변모했다.     


시간이 흘러 내 몸에 찾아온 유방암은 가정의 공간을 더 많은 물리적정서적 잔해로 채워 버렸다. 답답함을 느낀 나는 벼란다 창고며 안방 화장실 등을 몇 번이나 비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은 내가 내 밥도 해 먹을 힘이 없으니정리보다는 내 짐까지 더하고만 있다     




얼마 전, 잡지 필사 덕에 주부 생활이란 잡지를 작년 것부터 중고로 구매하여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보고 있다. 잡지 책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구성되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본 잡지는 음담패설, 화장품 광고, 패션 광고 등 화려한 사진들로 이루어진 책자로 잡지 보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주부 생활은 하나의 주제로 한 권의 책처럼 좋은 말들과 배울 내용들이 많았다. 물론 아직도 화장품이나 패션 광고도 한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설명도 멋들어진 표현이 많았고, 지루하지 않았다.     


정리의 필요성은 몇 달 전 잡지 주제에서 다시금 내 마음에 와닿았다. 집에 있는 물건 정리뿐만 아니라우리가 항상 들고 다니는 지갑핸드백핸드폰 등의 정리도 중요하다고 했다매일 우리 자신을 정리하는 것처럼.     



정리해야 할 중요한 종목 중엔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불필요한 관계 정리이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충고였다. 작년 여름 동네 언니들에게 실망하고 많은 생각을 했었다.     


현재 나의 인간관계에 문제점이 많았다. 사람을 가려서 만나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누구나 동등하기에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도 있다.      


나는 나의 지긋지긋한 가난과 불우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지 애썼다. 기회도 몇 번 왔었다. 하지만 내 가치관에 도덕적이지 않아 모든 걸 포기했다. 결국 나만의 길을 선택했고나름 괜찮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범위가 좁아졌다. 그래도 아이들만 잘 키우면 된다는 희망이 있어 견딜만했다. 그러나 유방암이라는 무거운 짐은 내 삶을 다시금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가족들도 투병이 길어지면서 지쳐갔다친한 사이가 아니거나 공적으로 만난 인연들은 모두 끊어졌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동네 언니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벌써 몇 번의 상처를 받았는지. 나는 외로움 속에서 인간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듯이, 외로울 때, 잘해주는 사람이 생기면 나 같은 성격은 간 쓸개 다 빼준다. 매번 주의해야 한다는 거 알면서도 그냥 믿는다. 나의 애정 결핍을 엉뚱한 곳에서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내 일이 있었으면 거기에 빠져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았을 텐데, 모든 일을 잃고 오직 내 몸만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나를 더욱 외롭고 지치게 했다.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나는 글 쓰고 책 읽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오직 밖에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하지만 나의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병원 오는 횟수가 많아지고, 몸이 힘드니 어떤 단체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 만난 환우들은 사적으로 밖에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밖에 나가서 환자처럼 보이거나 행동하는 거 정말 싫었다하지만 끼리끼리 논다고 지금 내가 노는 물이 병원이니밖의 생활은 점점 낯설고 외로웠다   

  



이제는 책과 브런치 스토리를 읽고글 쓰기를 하면서 내 삶의 새로운 위안이 되었다. 아이들과 식사하고 사우나 다녀오면 하루 24시간이 얼마나 짧고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인간관계의 정리는 내면의 평화로 이어졌다이제는 내 삶의 물리적 공간도 그 평화에 맞추어 하나씩 정리될 차례이다. 먼저 집 안 정리를 해야 한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람을 부르고 싶지만, 지금은 불러도 해결이 안 된다.      


퇴원하기 전 딸에게 말하자, 딸은 정리해도 금방 돌아갈 거라며 쓸데없이 기운 빼지 말고 그냥 살자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한번 정리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빈 공간이 생기면 어느새 채워져 버린다.      


그래도 하고 싶었지만, 생각뿐이었다. 퇴원한다고 짐 싸고 옮기면서 조금 나아진 오른쪽 팔에 심한 통증이 왔다. 그런 상태에서 운전하고 집에 와 짐 정리했다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정형외과로 직행했다오전 내내 치료받고 온 나는 기운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결국집 정리는 포기했다.   

  



우리 집의 혼란과 복잡함 속에서나는 자녀들의 사랑과 지지가 나의 유일한 위안임을 깨달았다병원에서의 긴 날들과 집안의 끝없는 정리 미루기 사이에서, 식탁을 둘러싼 가족의 따뜻함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세 명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항상 마련되어 있었고, 그 작은 틈새에서 나는 평화를 찾았다. 가난한 집일수록 정리가 안된 집이라고 하는데우리 집은 언제까지 가난한 집 모양으로 살지 심히 걱정된다.     


내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나 역시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큰 집으로 옮겨 이 집의 모든 짐을 뒤로하고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     


그러나오늘도 나는 현실에 안주해야 한다딸이 차려 준 밥상 앞에 앉아아들이 치워준 설거지를 바라보며불평 한마디 없이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자녀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나의 삶은 물질적인 짐을 넘어서, 감정적인 짐까지도 점차 가벼워지는 과정에 있다. 집 안정리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며 진정한 정리는 내면에서 시작되고 있다.

     

내 삶의 이야기는마치 잡지 페이지를 넘기듯점차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글쓰기와 독서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고, 이제 나는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며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나는 삶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짐을 정리하는 것은 단지 물건을 치우는 행위가 아니라삶을 재정비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다나는 이제물질적인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내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20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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