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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Jan 15. 2024

소설 속 인물을 보며 위안받는 암 환자의 행복


파주의 흰 눈이 창밖을 수놓는다함박눈이 꽃처럼 쏟아진다이번 겨울은 유난히 하얗게 물든 날이 많다. 서울은 비가 온다는데 여기 파주는 지방이라 조금 더 추운가 보다. 창가에 앉아눈 내리는 정경을 보며지난 10년간의 병원 생활을 돌아보았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하루하루 무기력해졌다병실의 창가에서 보이는 세상과 다른멈춘 듯한 시간 속에서 지난 10년을 지냈다친화력이 좋은 나는 남들과 떠들고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혼자 있을 때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환상에 잠기곤 했다.     


현재의 내 나이나 처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영화 속 뜨겁고 행복한 사랑을 꿈꿨다그러면서 현재의 내 처지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어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나는 참 많이 노력했는데세상은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주위 다른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나만 아프고 벌 받는 기분이다사회적 단절로 인간관계도 거의 무너졌다외롭고 슬프다.      




그러다 가끔 읽는 소설이나 사회부 기사들은 다른 이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겨운지를 깨닫게 해주었다왜 남과 비교하면서 나의 행복을 확인하려고 하는 걸까? 바보짓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남의 불행을 보며 안타깝고 슬퍼하면서도 내가 좀 더 나은 세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황금종이 1”을 대여해서 읽었다재미있게 읽었다. 2권을 보고 싶었다. 도서관의 예약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었다. 1권은 대여해 주는 권수가 많았지만, 2권은 두 군데밖에 없으니, 대기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사면 읽지 않는 나는 2권만 살까 말까 망설였다. 자기개발서도 아니고 소설책을 산다는 게 마음에 거슬렸다. 집에 있는 책도 버리지 못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읽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황금종이 2”가 읽고 싶다. 그 소설을 읽고 있으면, 재미도 있지만현실 세계를 느끼게 해준다나의 행복도 되새겨 준다     




주인공의 변호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검사였지만, 지금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좋은 변호사로 변해있다. 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삶을 가끔 힘들어한다.      


대기업 다니는 친한 친구는 딸이 돈을 따라 재벌의 남자친구로 전 남친을 버렸다. 배신감에 못 이긴 전 남친은 여친을 칼로 찔러 잔인하게 죽인다. 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친구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남편의 폭력과 가난이 싫어 도망쳐 혼자 힘들게 산 여성은 말기 암 환자가 되었다. 평생 모은 돈을 아들에게 주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코앞에 닥친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고인의 돈은 노동자 아들이 몰래 챙겼다. 얼마 되지 않는 집은 누이와 싸워서 반반씩 가졌다. 그렇게 챙긴 돈으로 한 방을 노리는 복권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딸은 미래가 없는 지방대 졸업을 앞에 두고 고민하면서 연애 또한 포기하려고 했다.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정마다 돈이 있어도 싸우고 없어도 싸운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있을 때는 더 많은 돈을 위해 싸웠다. 없는 지금은 싸우진 않는다. 남편이 제 작년부터 경제활동을 하면서 돈 벌기가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트럭으로는 큰돈은 벌지 못한다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으면 더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큰돈이 수시로 들어간다. 얼마 전 딸이 이를 교정한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경희대에서 하면 30% 할인이라 거기서 하려고 했는데, 딸이 동네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관리도 편하고, 비용도 비슷하다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대학병원보다 유명한 동네병원이 낫단다.     


내가 몸이 좋지 않아 몇 번 약속을 어겼다. 딸은 병원을 알아보고 혼자 가서 검사받았다. 검사 결과를 들으면서 교정 비용을 내야 했다. 교정 비용은     


검사 비 100,000원

발치 비 120,000원

교정 비 3,800,000원

교정 후 유지장치 400,000원

매달 치료비 60,000X30개월 1,800,000     


총 622만 원이었다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13% 할인받아 540만 원을 주고 왔다몇 주 전에 아이패드 230만 원 주고 사주었다끊임없이 들어가는 큰돈은 모두 나에게 온다. 딸은 만족에 만족했다. 더 이상 남편과의 다툼이 사라졌다.     


딸이 만족하는 모습에 행복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내가 만약 이렇게 해줄 돈이 없다면우리 가족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탄이 나겠지내 병원비부터 아이들 양육과 양육 비용까지나도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는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끔찍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10년째 유방암 환자로 투병 중이다언제 죽어도 이상 할 게 없다. ‘이런 내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비참했을까? 또 얼마나 외로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내가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현재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결국 아침에 당근 중고 마켓에서 5권의 소설책을 샀다. “황금종이 1권과 2권, 허수아비 춤, 뇌 1권과 2권”을 구매하면서 딸에게 엄마가 얼른 읽고 줄 테니 딸도 읽고 다시 중고 마켓에 팔라고 했다     


팔면 수익금은 아들과 반씩 나누어 가지라고 했다딸은 자기의 노력으로 판 거라 자신이 모두 같겠다고 했다. 나는 항상 딸에게 진다. 웃으면서 사정한다. 같이 나누어 가지라고. 혹시 내가 죽더라도 같이 나누는 버릇을 기르기 위해 모든 줄 때는 반반씩 준다 

    

나는 오늘 여러 권의 소설책을 사면서 내가 현재 사는 위치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했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하지만 이 작은 행동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나의 삶을 비추고, 나의 행복을 되새기게 한다. 이것이 바로 책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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