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던 소원이 드라마 속 주인공의 대사에 의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사람은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짧습니다.”라는 말에 ‘아! 그렇지. 시간은 빨리 가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지. 이 아까운 시간에 난 뭘 생각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몸이 힘들고 고단해서 그런지 자꾸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모두가 내 곁을 떠나가는 느낌. 혼자 세상에 던져져 있다는 기분이 우울증을 내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다.
‘우울증!’ 싫어하는 단어다. 어려서부터 내 맘속에 잠재해 있는 외로움과 우울증이 나의 행복을 가로막았다.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웃으려 애쓴다. 남에게 자주 듣는 말이 “너는 고민이 없는 사람 같아. 뭐가 그리 좋지?”이다. 누가 내 맘을 알까?
내가 왜 외로운가를 생각해 보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이들 사랑이 부럽다. 서로 아끼고 함께 행동하고 상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 나도 하고 싶다. 죽기 전에 뜨거운 사랑을 경험해 보고 싶다.
젊었을 때부터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인복이 없어서 그런지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내가 싫고, 내가 좋아하면 상대가 나를 원하지 않았다. 서로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는 게 힘들었다.
남편이 그런 상대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만 사랑했었던 것 같다. 오직 한 사람만 바라보던 나는 남편의 마음에 들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남편이 싫다는 건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려고 노력했다. 이게 문제였다.
사랑은 절대로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 좀 봐달라고 애교부리고, 이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남편을 즐겁게 해주려고 맛있는 음식을 하면서 남편의 웃는 모습을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화를 냈다.사랑을 갈구하는 나의 짜증이 남편을 질리게 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내가 배운 것과 사람의 마음은 달랐다. 한번 떠난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알면서도 나는 매달렸다. 바보처럼 애걸했다. 상대가 질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바보 같이.
“사람은 사주를 벗어나서 살 수가 없다.”라고 생각한다. 사주를 보면 신기하다. 어떤 분은 “너는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이 무슨 점쟁이를 찾아 기니?”라고 말한다. 나는 웃으면서,
“내가 그 시간, 그 날짜에 우리 부모 밑에서 태어나게 한 건 내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 뜻이잖아요. 왜 하나님은 우리 부모에게 나를 그때 보내셨을까요?”라며 반문한다.
얼마 전에 종로에서 딸과 사주를 볼 때, “나에게 남자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점쟁이는 “없어. 너를 맞출 상대가 있겠니? 네 눈에 웬만한 사람이 들어오겠니?”라며 나를 탓했다. 그때는 딸이 있어 웃었다.
‘무슨 뜻일까? 나에겐 남편도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도 없는 걸까? 나는 평생 외롭게 살아야 하나? 부모 복도 남편 복도 없으면 뭐가 있는 걸까? 인간이 살면서 돈보다 중요한 게 인복인데. 제일 중요한 복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아들의 지속적인 감기와 약한 몸에 척추측만증까지 있다. 도수 치료와 한약을 먹이고 싶어 입원시켰다. 여기 한의사님은 약을 지을 때, 사주를 보면서 하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서 한약을 꾸준히 먹었다. 몸이 약한 건지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아서 아픈 건지 원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항상 부실했다. 아버지의 독재가 싫었지만, 정이 많았던 아버지는 나에게 한약은 가끔 사주셨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다른 돈은 아껴도 나를 위해 가끔 약을 지어 먹었다. 암 첫 수술 후, 지금까지 한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크고 유명한 한방병원을 골라 다닌다.
많은 한의사에게 약을 지어 먹었다. 여기서 느낀 건 사주를 보며 약을 짓는 한의사가 약의 효과도 좋았다. 태어난 사주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번 병원의 한의사도 병의 증세와 사주를 같이 조절해서 약을 지어 주었다. 처음엔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효과가 좋았다. 중간에 병원의 관리가 허술해서 퇴원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들도 이분에게 약을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딸도 입원시켰고, 지금은 아들을 입원시켰다.
한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지요? 사주에 뭐라고 나와 있어요?”라고 묻자, “사주는 좋은데 남자가 없어요. 남자는 관을 말하는데 사주에 관이 없어요. 남편은 여자가 아예 없어요. 남편 때문에 매우 힘드셨겠어요?”라는 말에 나는 웃었다.
나도 이성 복이 모자라는데, 남편은 더 없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 내 소원은 사랑하는 한 남자를 만나 아들딸 낳아 평생 서로를 아껴주며 사는 거였다. 부모한테 받지 못한 사랑을 남편에게 받고 싶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남편을 원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남편에게 사랑받고 사랑 주고 싶었다.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서로에게 너무 상처를 주었다. 지금은 아이들 아빠 엄마로 만족한다.
외롭다. 이 외로움 때문에 일을 하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스마트 스토아를 해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근데 컴퓨터를 다시 배워서 한다는 게 지금 내 상태로는 무리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을 기력이 없다.
글 쓰는 시간만 봐도 어지러울 때가 많다. 스마트 스토아는 자리 잡으려면 적어도 반년에서 일 년은 열심히 해야 한다. 자신이 없다. 더 이상 몸을 혹사하고 싶지 않다.
외로움과 우울증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쫓아 버리고 싶다. 주식 코인도 그래서 시작했다. 다행히 손해를 보지 않아서 스트레스는 덜 받고 하지만, 2년 전부터 재미가 없다. 즐겁게 몇 년만 일하며 살고 싶다.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 커다란 변화가 아닌 작은 취미나 일상의 변화로 시작될지도 모른다. 글쓰기나 산책하기 등 작은 활동들이 마음에 위안을 주며, 나를 조금씩 치유해 주지 않을까?
인생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고자 한다. 외로움과 우울증의 그늘에서 벗어나, 행복을 향한 여정을 시작해 보려 한다. 내 삶의 교차로에서, 사랑과 행복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