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생리로 약해진 몸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은 되었지만, 허리와 다리, 어깨의 통증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불청객으로 찾아온 통증은 약이 없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와중에 3일 전 남편이 가족 톡에 올린 몇 마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몸이 붓는다고 하자, “신장이라 치료를 잘 받아야 할 건데.”라는 톡이 왔다. 가만히나 있으면 밉지는 않을 텐데. 아는 척을 하면서 “몸이 붓는 거는 신장과 관련이 깊은 거야.”
거기다 “오늘은 오랜만에 최악의 날.”이라며 자신의 힘듦을 알아달라는 투정의 메시지까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나님께 물어보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어 결혼한 남편을 평생 이해하며 돌봐야 하는 내 팔자가 불쌍했다. ‘지금 이런 말을 여기에 올리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어느 병원에 왜 왔는지, 몸이 왜 붓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그러면 자신의 어려움은 혼자 해결했으면 좋겠다. ‘누가 그 일을 하라고 했나?’ 지금도 일 시작하기 전에 나한테 함부로 한 생각만 하면 욕이 올라오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다.
주식과 코인을 그만하라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아 언제부터인가 나는 큰돈을 주지 않았다. 생활비로 한 달에 몇백씩만 주었다. 집안의 모든 비용을 내가 냈고, 병원에 있는 동안 아이들과 밥해 먹는 비용 정도와 남편 용돈이었다.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생활비도 물론 내가 썼다. 가끔 병문안을 오면 장도 봐주었다. 주식 코인 못하게 큰돈만 주지 않았을 뿐이다. 생활비도 나의 몇 배를 쓰는지 낭비가 보였지만, 내 식구가 돈이 없다는 걸 용납 하지 못하는 나는 나름 넉넉히 주었다.
그러다 한번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웬만하면 싸우지 않으려고 했지만, 몇 번 참다 터지면 지랄 같은 내 성격이 상대를 코너로 몰고 간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힘들어했다. 나도 안다. 문제는 다음이다. 한번 싸우고 나면 나는 삶이 바빠서인지 성격 탓인지 금방 잊는다. 하지만 남편은 그 싸움에서 받은 상처를 몇 년 동안 가슴에 품고 산다.
그때도 남편은 자존심이 상해서 돈을 벌고 싶었단다. 자본이 필요해 나 몰래 카드 빚으로 2,500만 원이나 얻었다. 보험도 나몰래 한 개를 해약했다. 거기서도 1,500만 원 이상은 나왔을 것이다. 예전에 2,000이나 3,000만 원씩 달라고 하면, 별말 없이 주니깐 그 돈이 얼마나 큰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마지막 돈이라 생각하고 조심조심 주식을 했단다. 단타를 치면서 자기 용돈을 벌어 쓴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코인에 손을 대면서 그 돈을 모두 날렸다. 그것만 날렸어도 괜찮다. 아이들을 위해 내가 모아둔 돈도 달라고 졸라 3,000만 원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2,00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이자도 주겠다면서. 안 주려고 했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큰언니는 같이 살 거면 주라고 했다.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잡코인 몇 가지 들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 코인은 내 계좌로 받았지만, 손실이 워낙 커서 포기했다. 나는 싸우거나 화가 나면 내가 마지막에 준 2,000만 원은 갚으라고 했다. 그 돈은 코인이 오르면 준단다. 기대도 안 한다. 지금까지 가지고 간 돈이 얼마인데 그깟 2,000만 원에 내가 목매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트럭 일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힘든 일을 해보지 않는 사람이 무슨 트럭 일을 하냐?”라며 반대했다. 내 상식으론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하겠다며 번호판을 사야 한단다. 노란 번호판이 있어야 영업할 수 있단다. 금액이 3,000만 원 정도였다. 사지 못하면 번호판 빌려주는 곳에 500만 원 정도 보증금을 내고 한 달에 30만 원 이상의 수수료를 내야 한단다.
계산해 보니 1년이면 돈 천만 원이 날라 가게 생겼다. 나는 내 이름으로 사주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남편에게 많은 돈을 주었지만,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남편은 안된다며 그냥 빌려서 하겠다고 했다. 남편의 마지막 모든 돈을 투자한 것 같았지만, 말리지 않았다.
불안감에 나는 내가 들어놓은 남편 보험들의 수익자를 나에게 돌려 달라고 했다.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나는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재테크로 들어놓은 보험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한 달에 남편 보험료만 거의 70만 원 이상을 넣고 있었다. 더 많지만, 만기가 되어서 그나마 준거다.
보험 가입할 때, 자기는 병원 가지 않을 거라며 들지 못하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돈 내고 내가 받을 거니깐 본인확인만 해.”라며 기분 나쁘게 들어놓은 것들이다. 물론 보험료도 내가 10년 이상을 부었다. 지금 와서 자기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들로 수익자를 바꾸겠다는 말에 나는 황당했다. 그렇게 못 믿는 나와 왜 살며, 여태 내 돈은 왜 그리 가지고 간 건지. 상대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 때문에 큰소리 내지 않고 참았다.
며칠 후 나에게 보증을 서달라며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무슨 보증. 난 보증은 안 서.”라고 웃으며 좋게 거절하자, 남편은 별말 없이 “알았어. 그럼. 형한테 부탁하지.”라며 좋게 넘어갔다.
오후에 트럭에 집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무슨 트럭이 벌써 왔냐니깐, 친구가 넘겼단다. 그 친구는 더 큰 트럭을 사고. 기가 막혔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갔다 6시가 넘어서 들어온 남편은 트럭을 갑자기 판다며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황당한 나는
“형이 보증 안 서준데?”라며 약간 빈정대듯 말했다.
“말도 안 꺼냈어. 가족인 너도 안 해주는데 형한테 어떻게 부탁하냐?”라며 갑자기 화를 내며 나에게 모든 탓을 했다.
속으로 나는 ‘또 시작이군! 지랄한다. 누구 하랬나? 거봐라? 세상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한번 당해봐라. 지금까지 내가 아프고 아이들 때문에 싸우지 않고 살려고 달라면 돈 주고 메워주니깐 돈이 돈 같지 않았지?’라며 쌤통이라고 생각했다.
“형이 안 해준다고 했구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니라니까. 말도 안 했다니깐.”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혼자 기가 막혔다. 간 쓸게 대 빼줄 것처럼 자기 동생밖에 모르더니 보증 서달라니깐 나 몰라라 한 게 한편으론 괘씸했다. 그럴 거면 우리라도 잘살게 나 둘 것이지. 항상 모든 걸 다해주는 것처럼 하더니만.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자기 방 책상에서 머리를 숙이고 고민에 차 있었다. 나는
“차 팔았어? 그냥 정리해. 당신 형도 보증 안 서주면 못하는 거잖아.”라며 정말 그만두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했다.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재수 없게 네가 시작하기 전부터 지랄해서 일이 안 되잖아.”라며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왜 또 나 때문인데? 왜 갑자기 내 핑계 대고 난리야! 내가 뭘 어쨌는데? 만만한 게 나지?”라며 질세라 소리 질렀다.
방에서 미친 듯이 뛰어나온 남편은 내 양팔을 잡고 흔들더니 폭력은 행사하지 못하고 그냥 들어갔다. 기가 막혔다. 갑자기 일이 뜻대로 안 되자,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면서 나에게 모든 분을 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보험 수익자 돌리지 않을 거면 이혼하자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내가 내준 보험료도 달라며 지랄했다. 그러자 남편은 집을 나가버렸다. 예전 버릇이 또 나왔다.
트럭에서 잠을 잤다는데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약한 몸에 차에서 잔다는 게 신경이 쓰여 나는 바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병원에서 나는 톡으로 보험 수익자를 나로 돌리지 않을 거면, 이혼하자고 요구하자, 재산 반을 달란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혀,
“당신 줄 돈이 어디 있어? 나 돈 없어.”
“결혼해서 번 돈은 다 공동의 재산이야. 나 돈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라고.”
“공동의 재산? 웃긴다. 당신 내가 목숨값으로 받은 보험금으로 여태 살았잖아. 그리고 결혼해서 내 통장에서 당신 통장으로 넘어간 돈 다 정리해 와. 난 결혼해서 당신에게 받은 돈이 없어.”
“그걸 왜 계산해. 결혼해서 모은 돈은 공동의 재산인데?”
“공동의 재산? 내가 돈 합치자고 할 때 당신 뭐라고 했어. 네가 번 돈은 네가 쓰고, 내가 번 돈은 내가 쓴다며?”
“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우리 흙탕물 튀기지 말고 좋게 해결하자. 네가 싫다면 나도 이혼은 해줄게.”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을수록 미칠 것 같았다. 지금껏 내가 준 돈을 고맙게 받은 게 아니라 자기 몫을 다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거다. ‘이런 미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너는 끝까지 내 등골 빼 먹으려고 작정했구나! 너 같은 인간과 결혼한 내가 미친년이다. 돈도 없지만, 너 줄 돈 있으면 기부란걸 하겠다.”라며 막말을 쏟았다.
그러다 병원의 검사 결과에서 4번째 암이 나왔다. 4번째 암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은 나에게 모든 걸 포기하게 했다. 지금 남편과 이런 쓸데없는 걸로 말싸움 할 때가 아니었다. 내가 살고 봐야 했기에 우리의 이혼 문제는 여기서 또 한 번 흐지부지되었다.
남편과 끊임없는 갈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내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초에는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들이 어렸기에 내가 거절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자랐고 나는 더 이상 두려움 없이 당당히 이혼을 요구할 수 있지만, 남편의 무리한 요구로 결국 우리는 이혼하지 못했다.
나 또한 이혼녀라는 딱지를 달고 싶지는 않다. 남편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와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의 노력은 항상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4번째 암 진단 후, 나는 우리 가정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미래, 나와 남편의 관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건강. 이 모든 걸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것인가? 남편과의 관계가 힘들고 때로는 통제 불능으로 보일지라도, 우리의 가정은 여전히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