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알게 되었을까? 기쁨과 슬픔, 분노와 사랑이 교차하는 가족의 모자이크 속에서 살아왔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 내일은 아들의 생일이다.
이 두 날을 위해 딸과 나는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딸은 어제 티라미수 케이크를 만들어 왔고 나는 남편을 위한 현금과 아들을 위한 금 반 돈을 선물로 준비했다. 또한 지난주 아들딸과 아웃백에 갔을 때, 오늘 남편과 함께할 시간을 예약했다.
이 모든 걸 준비하는 마음은 사랑의 표현이며 기억해야 할 순간들을 위함이다. 가족 톡에
“2월 17일 당신 생일과 18일 아들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딸이 아웃백에서 쏘겠데. 12시 예약이니깐 시간 비워놔.”라며 1주일 전에 알려주었다. 남편은 바로 “알았어.”라는 답이 왔다.
딸은 15만 원 상품권을 당근에서 할인받아 구매했고, 나는 디저트로 “말렌카 케이크”를 초콜릿과 호두 맛을 주문했다.
하지만, ‘20년간 같이 산 남편을 내가 모르겠는가?’ 일주일 전에 말한 내용을 기억할 사람이 아니다. 그랬다면 우리의 사이가 이렇게까지 나쁘진 않았겠지! 이런 남편의 모습은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오해와 갈등의 또 다른 얼굴이다.
나는 결혼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학원을 운영했다. 5~6년 동안 친구와의 연락이 두절 된 상태로 살았다. 돈을 벌어야 했고,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놀기 좋아하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는 모든 만남을 포기하며 살았다.
힐링이 필요할 때,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한 달 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흥분과 기대에 찬 나는 남편에게 약속한 날을 이야기했다. 그날은 수업을 오전만 하고 아이들 좀 봐달라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야기했을 것이다.
약속이 2~3일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때 남편의 반응은 “그날 나 수업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는데.”라며 더 이상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10년을 살면서 나의 즐거움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다.
이런 반응에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무시한다고만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야기했는데. 며칠 전에도 말했는데. 정말 미치겠네!’라며 나 혼자 어쩔 줄 몰랐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면서 우리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결혼 후 이런 말도 안 되는 싸움은 끊임없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내 말에 인상만 쓰고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이고 확인하면서 화가 날 때는,
“내가 지금 벽 보고 말해? 말하면 대답해야지? 그리고선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라며 짜증 내는 나를 강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솔직히 그 눈빛이 무서워 내가 피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었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계속되는 남편과의 갈등 속에서 미칠 것만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남편에게는 며칠 전부터 말했다. 그날도 역시나 약속 시간이 다 되어도 아무 말이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전화했다.
“언제 들어올 거야? 와서 아이들 봐야 내가 나가지?”
“나 오늘 XX 결혼식 있는데. 거기 가야 해.”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부터 말했는데? 갑자기 무슨 결혼식이야? 결혼을 말도 없이 갑자기 해?”라며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너 기다려. 오늘 가만두지 않겠어.”라며 전화를 끊었다. 느낌이 안 좋았다. 나는 나의 모든 통장을 챙기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남편을 들어오자마자 어린아이들을 놀이방으로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 나 있는 곳으로 와서 따귀를 때렸다. 이유도 모르고 깜짝 놀란 나는
“이 새끼가 미쳤나? 너 뭐 하는 거야?”라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남편은 나를 또 때리려 달려들었고 나는 최대한 피했지만, 내가 남편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안방에서 남편은 나를 끌고 이리저리 다니다 문제가 있던 허리를 침대에 부딪쳤다. 나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있는 힘을 다해 피했다.
“정신 차려 미친 새끼야.”라며 눈을 부라리며 현관문을 나왔다.
나는 바로 남편이 좋아하고 의지하는 권사님을 찾아갔다. 처음 결혼하기 전, 나에게 소개해 준 분이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더는 못 참는다며 울면서 하소연하고 나왔다.
나는 혼자 사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친구는 빨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친구는 나를 보자 내일 바로 병원 가서 진단서부터 받으라고 했다. 벌써 3번째였고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미치는 건 화낼 이유가 없다는 거다. 남편 스스로 분을 못 이겨 일어난 일이다. 아니 가장 무서운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하나? 뒤에서 미친 시누이가 조정하고 있었다. 시누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지만, 고인에게 난 아직도 “미친년”이라는 용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폭력은 이 사건 이후로 사라졌지만, 결혼하고 20년간 약속 시간에 관한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아이들이 컸고 유방암으로 엄마의 부재에 익숙한 아이들은 더 이상 나의 외출이나 외박에 구속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렇게 약속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남편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작년에 있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저녁 외식을 하면서 딸과 내가 병원에 있어 일요일 낮 아들 점심이 문제였다. 나는 외식 전에 아들이 내일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았다. 아들에게도 말해주었다.
아이들이라면 끔찍한 남편은,
“내일 점심 1시에 먹을 수 있는데 괜찮을까?”라며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아무 말 안 하고 나만 쳐다보았다.
“1시면 딱 좋아. 아들 12시까지 자야 해. 그럼. 그때 먹는 거로 하자 아들아. 아빠가 해준다네?”라고 말하자,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나와 부딪치지 않는 방법으로 내가 말할 때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다. 아니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싸우고 싶지 않아 신경 쓰지 않았다.
맛나게 밥을 먹으며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하하 호호’ 웃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은 1시에 일을 잡고 있었다. 나는 기가 막힌다는 웃음으로
“자기야. 내일 아들 1시에 밥해준다며?”라고 약속 잡는 남편에게 말했지만, 남편은 내 말이 들리지 않았다. 우리 셋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은 남편에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기야. 내일 아들 1시에 밥해준다며? 근데 약속을 잡으면 어째?”라고 말해도 내 말엔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말은 아예 듣지 않았던 거다. 나는 기막힌 웃음으로,
“아들아! 너희 아빠를 이해해라. 한두 번이냐? 난 오늘로 모든 걸 이해했다. 20년간 나만 미친년이었네. 나에게만 그런 줄 알았는데 소중한 아들과의 약속을 10분도 안 되어서 잊고 다른 약속을 잡는 아빠를. 나는 이 순간부터 이젠 너희 아빠에 대한 모든 기대가 없어졌다. 기가 막힌다. 이런 사람에게 내가 여태 목맨 거니?”라며 황당한 웃음을 짓자,
“아이고! 어쩌니? 아들아? 깜박했네.”라며 아들을 향해 물었다.
나는 기막힌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들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이나 잘하고 다녀. 아들은 내가 먹을 거 다 챙겨놨어. 아들! 엄마가 아까 말했지? 냉장고에 있는 불고기와 카레 데워서 먹어. 내 멋쟁이 이정도는 할 줄 알지?”라고 말하자, 아들은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이런 남편에게 20년을 기대하고 살았으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항상 왜 나에게 그러는 걸까?’라며 이유라고 알고 싶어했던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남편에게 난 무슨 기대를 한 걸까?’ 더 신기한 건, 남편은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만약 잘못을 안다면 남편 성품에 절대 그렇게 하진 않았겠지?
나는 딸에게 3일 전부터 아빠에게 약속 확인을 요청했다. 딸은 하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금요일 저녁에 나는 다시 한번 딸에게 확인했는지 물었다. 딸은 아까 했다며 내일은 꼭 온다고 했다. 나도 “딸이 사주는 건데 오겠지!”라며 불안 반 확신 반했다.
밤늦게 남편이 들어왔다. 딸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라고 했다. 내 성화에 딸은,
“아빠! 내일 점심 알고 있지?”라는 질문에 남편은 역시나 내 불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 2시에 시간 비워놨어.”라는 말에 우리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짜증과 ‘역시 그럼 그렇지!’라는 실망에 나는 딸에게
“딸! 톡에 12시라고 쓰지 않았어?”라며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자, 딸은 억울하다는 듯이
“했지. 아빠! 점심을 2시에 먹는다는 게 말이 돼? 12시라고도 썼잖아?”라고 말하는 딸은 황당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이제 속으로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저번 주 예약할 때도 문자 보냈고, 딸이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 안 오면 우리만 먹어. 어휴. 정말. 내가 미쵸요. 무슨 생일파티를 해준다고.”라는 나의 푸념 섞인 짜증에 남편은 묵묵부답이었고 딸은 이 모든 짜증을 받아 주었다.
결국, 우리의 점심 식사는 아들딸과 나 셋이 먹었다. 우리끼리 저번 주에 오랜만에 와서 먹고, 아빠도 함께 오고 싶은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주인공은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남편은 식사 도중 전화 와서 내일 본인이 저녁을 사겠다며 “서오릉 갈비도락”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사랑을 통해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걸어갈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또 다른 기대의 약속이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끔은 서로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하고, 약속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그 모든 순간 속에서 우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더 깊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