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낳고 이틀 후, 아무도 돌봐줄 곳이 없는 나는 산후조리원으로 향했다. 산후조리원에 홀로 뚝 떨어져 버린 침묵 속에서, 새로운 엄마가 된 나는 두려움과 기대감 사이에 갈등하고 있었다.
남편도 어린 딸과 학원 수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 학원이고, 우리의 밥줄인데, 남편은 자기 수업 외에 초 & 중등부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직원인 선생님 한 분이 수업하며 들어오는 수업료와 간단한 상담만 해주었다.
한 달이 넘는 나의 부재 속에서 학원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한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나에게 불안감까지 몰려왔다. 이젠 아이도 둘인데 학원까지 잘못되면, 우리는 생계까지 어려워진다. 나는 힘든 몸을 뒤로하고 산후조리원에서 중간중간 학원에 나왔다.
결혼하고 중계동에서 남편 혼자 고등부 과외를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결혼 전에 자리 잡은 은평구를 오가며 수업했다. 그러다 초중 영어학원이 급매로 나왔고, 남편은 기회라 생각하고 인수했다.
부푼 꿈을 안고 우리는 중계동에서 연신내의 조그마한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그 꿈은 부채와 적자의 무게로 짓눌렸다. 남편이 인수한 학원은 매달 몇백만 원씩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속은 거다. 남편의 고등부 과외수업으로 초 & 중등부 적자 메우기 바빴다.
뱃속에 큰딸을 가졌던 그 시절, 나는 혼자 눈물이 났다. 이 나이에 결혼해서 임신까지 했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학원은 곧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원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계약기간도 남았고, 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만두어도 할 일이 없었다.
딸을 낳고 나는 바로 특강 수업에 들어갔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라 수업이 힘들었는지 이유 없는 하혈을 계속했다. 산부인과에서 소파수술을 했다. 갈수록 비참했다. 힘든 남편은 내가 학원에 나와서 한 명의 인건비라도 줄였으면 했다.
적자에 시달린 초 & 중등부를 남편은 나에게 맡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돈이 들어오면 남편에게 전부 가져다주었다. 나는 당연히 부부가 돈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학원을 직접 관리하고 자기에게 주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외로 받은 고등부 수업료를 모두 자기 통장으로 돌려놨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따라주었다.
적자가 심했던 학원은 내가 들어가 2달 정도 지나자, 적은 돈이나마 흑자로 돌아섰다. 나는 남는 돈으로 생활도 하고 돈도 모으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에게
“거기서 한 달에 돈 천만 원씩 벌어 장모님도 드리고 그래라. 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불가능하지. 1,000만 원은.”이라며 비꼬듯이 웃으면서 말하는데 황당했다. 내 월급도 안 주려고 알아서 하라더니,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 선생님 월급이 보통 12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한 달에 돈 천만 원 버는 데 걸린 시간은 1년도 안 걸렸다. 남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학생 수로 계산했을 때, 월세 내고 잡비용 빼고 선생님 월급 주고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수익이었다.
나는 장부를 쓰지 않았다. 나만 알면 되기에 모든 학생은 내 머릿속에 있었고, 학원비를 언제 받았는지 확인하는 엑셀 파일로 작성된 명단만 있으면 끝이었다. 나의 통장은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씩 불어났다.
몰랐던 남편은 아들 낳을 때, 병실에 아무도 없었기에 내 가방에 있는 통장을 보았다. 내가 결혼할 때, 아무도 모르게 가져온 1억과 학원에서 번 돈이 통장 여러 개에 1억 이상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초 & 중등부에서 수익이 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월급 정도라고 생각했다. 내가 돈을 합치자고 여러 번 말했을 때, 남편은
“네가 번 돈은 네가 쓰고, 내가 번 돈은 내가 쓰겠다.”라며 거절했다. 몇 번 싸우다 결국, 집안 생활비와 아이들 비용은 남편이, 나는 나의 생활비와 학원 유지비용을 책임졌다.
나중에 내 쪽의 수익이 많아지자, 자기 몫을 달라고 싸운 적이 있었다. “당신이 각자 벌어서 쓰자며, 당신 몫을 왜 나한테 달라고 해?”라고 말하자, 남편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며,
“내가 이 집에서 내 몫이 없냐?”라며 내 노트북을 거실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처럼 우리 사이의 금전적인 갈등은 가정 내 또 다른 갈등으로 확장되었다. 서로의 이해와 소통이 부족한 상태에서 감정은 점점 격화되었다.
산후조리 2주 후, 집에 온 나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매일 남편과 싸웠다. 나는 남편이 화내는 이유라도 직접 듣고 싶었다. 말이 없는 남편은 말이 아닌 표정과 행동으로 보였다. 숨이 막혔다. 서로 죽일 것만 같았다.
집에 들어오는 남편은 항상 불만에 가득 찬 화난 얼굴이었다. 내가 무슨 말 만하면 인상 쓰며 노려봤다. 어린 딸에서 “뭐 하지 말라”라고 조금만 큰소리쳐도 인상을 쓰면서 “너의 그 짜증 나는 목소리로 딸 좀 잡지 마! 집에서 톤 올라가 있는 너의 목소리만 들어도 화가 난다.”라며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면서 어떻게 큰소리가 나지 않겠는가?’ 이해할 수 없는 나는
“그럼. 당신이 키워. 일찍 들어와서 아이를 보던가? 힘들어 죽겠는데 어쩌라고.”라며 같이 큰소리쳤다. 그러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싸우고 나는 집을 나갔다.
내가 먼저 집을 나간 이유는 결혼하고 다툼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대화 도중 집을 나갔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어서 달래고 미안하다며 들어오라고 했지만, 습관이 되었다.
그때는 아이가 없었고, 있어도 딸 하나였지만, 지금은 둘이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안 된 몸이 나 하나 주체하기도 힘들었다. 남편이 나가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가버렸다. 골탕 좀 먹어보라고.
아들을 봐주러 오신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셨다. 남편과 심하게 싸우고 집을 나갔지만, 간난 아들이 걱정돼 그분과는 계속 연락했었다. 남편이 학원 갔을 때 집으로 와 아이에게 젓도 먹이고 짜놓은 젓을 놓고 나오기도 했었다.
그분은 나에게 몇 번 말씀하셨다.
“새댁. 이렇게 살면 새댁 죽어. 누구도 이렇게는 못 살아. 내가 남의 부부 일에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새댁 가족에게 말하고 그만 정리해. 새댁도 살아야지. 처음 왔을 때부터 이상했어.
이렇게 잘난 아들 낳았는데 사골국 하나 없고. 남편은 이유 없이 새댁에게 계속 화만 내고. 새댁이 밖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 죽어라 일하면 고마워해도 시원치 않은데, 계속 화만 내는 저런 남자와 왜 사는 거야? 새댁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가서 딴짓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집과 학원밖에 모르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 그러는 거야?
지금껏 나도 새댁보고 나왔지만, 새댁 계속 안 들어오면 나도 그만둘 거야. 남자 혼자 있는 집에 아이보겠다고는 못 있어. 그리고 내가 새댁 보면서 이건 아니더라고. 내 동생 같았으면 벌써 끝냈을 텐데. 잘 생각해 봐.”라며 신중하게 말씀하셨다.
“제가 의지할 곳이 없어요.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우리 아이들은 보육원 가야 해요! 그렇다고 저 혼자는 못 키워요. 남편이 아이들한테는 잘하잖아요. 아빠 없는 자식은 절대 안 돼요. 헤어져도 아이들이 커야 해요. 저 곧 돌아갈 거니깐 며칠만 아들딸 부탁드려요.”
“내가 뭐라 말하기 딱하네. 새댁만 온다면야 나야 여기가 좋지. 아기 걱정은 말고, 잘 먹고 몸조리 잘하고 있어.”라며 진심으로 말해주신 분이다.
나 또한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화가 나면 “미친놈이라든지. 너는 아빠 자격도 없다는 둥.”이라며 함부로 말했다.
둘째 낳고 계속되는 싸움에 집을 나오면서 나는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했었다.
“만약 내 딸이 너 같은 놈 만나면 그땐, 너 내가 죽이고, 나도 죽고 그 새끼도 죽일 거야. 내 자식 몸에 너의 피가 흐른다는 게 정말 날 미치게 하는구나! 너 평생 내 아들과 나한테 죄짓는 마음으로 살아. 이 새끼야.”라며 미친 듯이 악을 쓰며 욕한 적도 있었다.
항상 선비라는 소리만 듣고 살았던 남편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자기보다 어린 나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나에게 상처받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는 단순히 금전적인 성공이나 나를 이해해 달라고 말하진 않는다.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 또한 잊혀 지지 않는 생각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건들을 이렇게나마 글로 표현하며 마음의 응어리를 해소하고자 한다.
결국, 이 이야기는 희망과 회복, 그리고 끊임없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가정과 사업에서의 성공을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 '균형 잡힌 삶'을 향한 여정이 바로 우리가 모두 지향해야 할 목표라 여긴다.
2024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