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경 Apr 09. 2024

퇴원 후 우울증을 뒤집은 3,000원의 응원 댓글



지난주 목요일 3주 만에 퇴원했다. 오랜만의 퇴원을 준비하는 나는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문을 열고 나서는 기분이었다. 꼼짝할 수 없어 입원했지만, 그 시간을 뒤로하고 햇살 아래 서울의 네온사인 속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우리 인생이란 예측불허의 연속이기에나의 부푼 꿈과 같은 기대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음을 곧 깨달았다. 몸이 조금 편해져 퇴원하려고 생각하니 나가서 하고 싶은 계획들을 하나둘 세우고 있었다. ‘나가서 무엇을 할까?’ 

     



이런 기대와 부푼 마음도 잠시, 퇴원하기 이틀 전, 20일 만에 생리가 또 터졌다. 갑자기 온몸의 기운이 빠지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가서 딱 일주일만 즐겁게 지내고 싶었는데. 모든 계획이 나의 부질없는 기대라는 걸 깨달았다.     


이틀간 많은 양의 피를 쏟으면서 팔과 다리 통증은 심해지고 몸의 모든 기력은 소진된 느낌이었다. 오전에 짐을 싸고 형부를 기다리는 마음이 우울했다. 오후엔 종로에서 친구들과 주문한 금 팔지와 목걸이를 찾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망설여졌다.      


하지만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와 짐을 푸니 몸은 점점 지쳐왔다. 그래도 시간이 되어 종로로 발길을 돌렸다. 금방에 도착하자, 다리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갑자기 입에서 나도 모르게 “제기랄!”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친구들 앞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고 해도 항상 건강한 모습만 본 친구들은 내가 왜 병원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게 불편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좋았다. 먼저 도착한 나는 금을 찾으러 갔다.     




오늘도 역시나 종로 상인들은 손님들을 이용할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주문해 놓은 팔찌를 저울에 달아달라고 하자, 당황해하며 적어 놓은 쪽지를 보여주었다. 주문한 중량과 다르기 때문이다.

      

주인은 금제품의 고리는 나올 때마다 조금씩 다르다며 쪽지에 적힌 차액을 그때 서야 챙겨주고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가는 곳마다 18k 장식으로 속이고 있었다이 집은 항상 거래하는 도매상 언니가 동생이라며 소개해 준 곳이다.

     

지난주 소개하는 날은 거래하는 도매상 주인 언니가 18k 장식을 0.1 돈 작은 걸로 달아주더니오늘은 동생이 0.12 돈 작은 장식으로 달아 놓은 거다. 분명 주문서에 제대로 적었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찾아갈 때, 대부분 손님은 상점 주인을 믿고 주는 대로 받아 갔다는 걸 이용해 작은 고리를 달아 놓은 거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믿었기에 주는 대로 가지고 왔다.      


하지만, 몇 달 전 금 공장 사장님이 지방에 가는 것과 서울에 납품하는 귀금속 금의 중량을 다르게 만든 걸 보고 그때부터 금을 살 때는 꼭 달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상인은 싫어할 수 있지만, 내 권리이기에 꼭 확인한다.     

연달아 2번 다 돈 수가 달랐다. 하지만 싸우고 싶지 않았고, 언니가 먼저 인정하는 모습에 웃으면서 넘어갔다. 사람들의 욕심을 보면서 인생이 뭔가돈이 뭔가?’ 정말 몇만 원으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 삶에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물건을 찾고 친구들은 나를 위해 고기를 사주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오는 나의 걸음은 거의 절름발이 모습이었다. 다리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약을 먹고 잠을 잤지만통증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을 설치며 새벽에 일어난 나는 코인 하나가 40% 이상 날아가고 있는 걸 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이 와중에도 코인을 팔아야겠다며 코인의 호가창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현실을 버리지 못하고 돈을 좇고 있었다.     


힘든 몸을 일으켜 나가보니 식탁에는 딸이 차려둔 밥상이 있었다. 감사했다. 아침을 먹고 사우나에 가는 차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떻게 운전하고 갔는지 기억이 없다사고 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게 신기했다. 정신없이 잠을 잤다. 학교 다녀온 딸이 저녁 먹자며 깨우자, 그때 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내면서 모든 게 귀찮아졌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작년 7월에 시작한 글쓰기를 5일간 아무것도 쓰지 않은 건 처음이다. 노트북조차도 찾지 않았다.  

   



여기서 모든 게 멈추는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보려고 폰을 열자, 희망의 빛이 보였다. 내 글에 낯선 이가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창작 활동비 3,000원을 보내주셨다작년 12월 쓴 글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보고 또 보고 열 번은 본듯하다.     


주신 분은 나의 구독자도 아닌 브런치 구독자분이셨다. 마냥 감사했고 황홀했다. 그분의 작은 친절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마치 오랜 겨울을 견뎌낸 뒤 맞이하는 봄날의 첫 꽃처럼우울했던 나의 마음에 따스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몸은 힘들어도 나는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나의 행보에 응원의 메시지가 되어준 그 소중한 3,000원은 내게 다시 글을 쓸 용기를 주었다그것은 마치 잃어버린 내 마음의 조각을 되찾은 듯한 기쁨이었다

     



누군가 나의 글로 인해 위안받고나아가 그 힘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면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이런 생각이 우울한 일주일을 모두 날려주었다. 나는 자신 있게 지난주에 써 놓은 마지막 글을 올렸다.      


그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적어 내려가면서, 나는 다시금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가고 있었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타이핑 하는 소리는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되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일어선 나는 몸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미용실 예약을 마친 후나는 곱슬머리로 사자가 된 머리를 가위질하는 소리가 내 마음속 무거웠던 생각들을 잘라내고 있었다단정해진 모습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이며우리는 그 여정 속에서 수많은 도전과 시련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다시 일으키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어야 한다.      


우리에게 작은 응원 하나가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나는 확실히 안다. 이제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페이지에 글을 쓰며, 내 삶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여정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2024040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